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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신 Jun 01. 2024

삼십 대에 느낀 원영적 사고의 힘

Wonyoung's mindset  

최근 테오(TEO) 유튜브 채널에서 우연히 아이브 장원영이 개그우먼 장도연과 다양한 주제로 프리토킹을 나누는 영상을 봤다. 무려 38분짜리 인터뷰 영상이었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원영적 사고'를 주제로 한 밈들이 돌아다녀서 그녀인지하고 있던 참에, 마침 영상이 뜨길래 장원영은 무슨 얘기를 하려나 싶어 호기심에 한번 본 거였다.


처음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갓 스무살된 아이돌 장원영이 38분간 뭘 그리 대단한 얘기를 하려나 싶었. 짜여진 각본대로 얘기를 나눌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영상을 본 건 완전 럭키였다

출처: 테오 유튜브 <원영적 사고를 배우다니 완전 럭키 비키잔앙 � | EP.39 IVE 장원영 | 살롱드립2>

전반적으로 장원영의 근황, 여행, 가족 등에 대한 스몰토크 위주였지만, 영상의 중간과 마지막 부분에서는 장원영의 태도, 성격, 관점이 드러나는 대화가 이어졌다.


근데 뭔가 이색적이었다. 장원영은 흔한 여자 아이돌과는 결이 달랐다. 외모나 끼를 보면 천상 아이돌인데, 얘길 들어보면 아이돌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내면에 단단함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 있는  같았다.


먼저 내 눈을 사로잡았던 부분은 영상의 11분 20초였다. 장원영은 쉴 때는 독서를 한다면서, 최근에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책을 읽었다고 얘기했다.


쇼펜하우어는 염세 철학으로 유명한 철학자인데 '삶은 원래 고통이다'라는 cloudy한 입장을 피력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장원영이, 쇼펜하우어의 염세적인 세계관을 통해 위로  때가 있다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사실 처음엔 의아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진자와 같다", "고통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여라"와 같은 쇼펜하우어의 사상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말하려면 인생의 온갖 고초를 다 겪어본 40대 정도는 돼야 할 거 같은데, 장원영은 이제 갓 스무살밖에 안 된 친구이지 않나. 이 어린 친구가 살면서 무슨 인생의 어려움을 겪어 봤겠나 싶었다.


그런데 이건 나의 편견이었다. 아래의 영상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장원영은 그 나이대의 평범한 이들이 겪기 어려운 산전수전을 이미 수년 전에 다 겪 상태였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적 세계관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을 법도 했겠다 싶을 정도로 인생의 나이테가 두껍게 쌓여 있는 느낌이랄까. 예쁘고 러블리하고 통통 튀는 아이돌의 모습 그런 사연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위 영상은 장원영이 엠넷 <프로듀스 101>의 잔혹한 경쟁 시스템을 견뎌내며 살아내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프로듀스 101은 여러 기획사에서 차출된 아이돌 연습생들을 경쟁시켜 최종 12명을 데뷔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영상을 보면 장원영은 초반에 주목을 받긴 했지만 순위 하락과 탈락의 위기를 겪기도 하고, 트레이너로부터 혹평을 받기도 하며 자존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그녀는 최종 12명에 선발되어 '아이즈원'으로 데뷔한다. 그러나 데뷔 직후 안티팬들의 엄청난 악플 공세가 이어졌고, 프로듀스101 문자 투표 조작 사건이 벌어지며 관계자들이 구속되고 아이즈원의 이미지망가진다. 동 계획 불투명해졌다.



아이즈원은 가까스로 활동을 재개했지만 또다시 안티팬들의 악플 공격과 루머성 콘텐츠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유명 여자 아이돌 설리와 구하라가 도를 넘는 악플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후 아이즈원 계약 만료되고, 장원영은 다시 스타쉽의 연습생 신분으로 되돌아간다.


장원영은 아이돌 데뷔 전후 열심히 동하며 인지도 쌓았지만, 자신이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걸 숱하게 목격한다. 그것도 스무살이 되기 이전에.


아마 장원영은 또래 연습생들처럼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돌이 되어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쇼펜하우어의 용어로는 욕망)을 품고 열심히 살았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와 어긋나는 일들이 자꾸 벌어고 만다.


사실 장원영이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관찰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늘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람들, 익명성 뒤에서 타인을 험담하는 이들, 목적 달성을 위해 눈속임을 일삼는 모습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관찰된다. 어쩌면 장원영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접하기도 전에 삶은 원래 고통스럽다는 점을 몸소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다. 본질적으로 고통인 삶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원래 쉽게 달성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새로운 인식의 차원이 열리게 된다. 내 앞에 주어진 고통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때부터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감 얻을 수 있게 된다. 행복의 역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오늘 건강하게 달릴 수 있고,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고, 만날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내 앞에서 빵이 다 팔려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갓 구운 새 빵을 받을 수 있으니 럭키하다는 '원영적 사고'를 할 수 있다.


원영적 사고

원영적 사고로 대변되는 초긍정적 사고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위에서 풀어낸 생각들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에 기반한 생각일 뿐이니까.


다만 장원영이 너무나 힘든 시절을 보냈음에도 풀죽기는 커녕 더욱 긍정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삶은 원래 고통'이라는 점을 그녀가 일찍히 깨닫고 수용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얼마 전 글에서도 썼듯이 난 최근 힘든 일들을 연속으로 겪는 바람에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장원영 인터뷰 영상을 봤고, 생각지 못하게 위로를 얻다.


아마 앞으로 내가 살아내야 할 날들은 언제나처럼 쉽게 풀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원래 고통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나에게 주어진, 주어질 고통에 불평하는 대신 잠잠히 살아갈 힘을 또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럭키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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