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부모님 세대에는 아들을 갖지 못해 한이었는데, 지금 세대는 다들 딸을 원하는 분위기다. 나 역시 딸을 원했다. 엄마와 내가 둘도 없는 친구이듯이 나도 딸과 세상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싶었고, 남편은 본인 중학생 때부터 훗날의 딸 이름을 지어 놓기까지했으니 정말이지 딸을 낳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이라고 했을 때 약간의 아쉬움이 스치는건 손쓸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든 딸이든 우리 부부에게 선물처럼 찾아와준 아기에게 성별 따위로 아쉬운 마음을 갖는 것은 안될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니 아기가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 내년 이 무렵이면 남편과 나 사이에 아기까지 셋이 되겠지. 음료를 홀짝이면서 여유롭게 글을 쓰거나, 데이트 하러 나가서 남편과 둘이 오붓하게 외식하는 지금과 같은 생활을 몇 년 간은 기대할 수 없을테지만, 이전에는 없던 또 한 명의 존재를 길러낸다는 것은 무엇보다 값지고 멋진 일이라는생각을 한다.
반복되는 육아가 고되고 지쳐 현타가 오거나 남편과 나 사이에 양육 방식의 차이로 갈등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자녀 양육이나 교육에 관해서라면 남편도 나도 고집이 있는 편이니까. 그런 때는 누가 되었든(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한 발짝 물러섰으면 한다. 아기를 위하는 마음이야 똑같을거고, 다른 어떤 양육 방식보다 부부가 화목해야 아기도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거니까.
무엇보다 지난 2년 여의 신혼생활이 남편과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지 않았나. 그 2년의 신혼생활에 대해 한줄로 줄여 보자면 '단짝 친구와 함께 간 수련회와 같다'고 표현하고 싶다. 혼자 수련회에 간다면 두려운 마음이 크지만, 제일 좋아하는 단짝 친구 한 명만 같이 가도 마음이 든든하고 수련회 기간이 즐거워지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지난 2년의 결혼생활이 꼭 그랬다. 남편과 함께라서 든든하고 즐거웠다. 하필이면 수련회인 까닭은, 마음을 수련할 일이 수시로 생기기 때문이다. 그건 피차일반일텐데 나로 인해 수시로 수련했을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기가 남편을 닮아 눈매나 콧대가 뚜렷할지, 나의 이목구비를 닮아 두부같을지, 우리 둘을 닮아 차분하고 조용조용할지, 우리 둘과는 영 다르게 활발하고 에너지 넘칠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아기가 성장하는걸 지켜보면서 우리 둘 중 누구를 닮았을까 가늠해 보는 일도 무척 행복한 일이겠지. 둘이서 지내왔던 날들을 갈피 삼아 셋이서 지낼 날들도 기대해본다.
여기까지 [그 중에 그대를 만나]는 15편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연재에는 저와 남편이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기까지의 내용을 다뤄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남편과의 만남부터 신혼생활까지의 감회를 언젠가는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평범하디 평범한 저와 남편의 스토리에 흥미를 갖고 꾸준히 읽어주신 분들께 특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