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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시련

유산이라고?

by 우스갯소리

남편은 결혼하고 아기를 빨리 갖고 싶어 했다.

서른 넷에 결혼한 남편은, 이미 젊은 아빠가 되기는 물건너 갔지만 일년이라도 일찍 아빠가 되고싶다고 했다.

반면에 나는 적어도 1년은 신혼생활을 하자고 했다.

어차피 아기를 가질거라면 둘만 지내는 결혼생활 역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인지 결혼하고 1년 후 쯤에 아기가 생겼다. 아기가 생겼다는 놀라움과 기쁨도 잠시, 열 달 가까이 품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몸에 신경이 곤두서서 '좀더 나중에 생겼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 나이가 이미 서른 셋이었지만 아직 하고싶은 것도 많았고 엄마가 되기에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던듯 하다. 그러던 어느날 화장실에서 왈칵, 피를 쏟았다. 임신 6주를 넘기지 못하고 태낭이 자연적으로 배출된 것이다. 황급히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니 임신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있었다. 이걸 화학적 유산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로부터 두 번의 임신을 확인했고, 두 번의 유산을 경험했다. 유산이 3회 이상이면 습관성 유산으로 분류되어 병원 검사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화학적 유산은 유산으로 쳐주지 않기 때문에 나는 습관성 유산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일을 세 번 겪으니 다음 임신도 유지되리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웠다. 보험이 안되어 적지 않은 금액을 전액 개인 부담해야 했지만, 난임 병원에서 산전 정밀 검사를 받아 보기로 했다.


검사는 남편과 내가 둘다 받아야 했는데, 아무래도 모체의 영향이 더 많을 수 밖에 없어서 내 피를 왕창 뽑아야 했다. 어느 날은 나팔관이 제기능을 잘 하는지 보기 위한 나팔관 조영술을 했고, 어느 날은 자궁을 정밀하게 보기도 했다. 이 모든 검사는 생리 주기에 영향을 받아 날짜를 맞춰 병원에 방문해야 했고, 그에 따라 검사 결과도 첫 검사로부터 꽤 시간이 지나고서야 받아볼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은 검사 결과는 다행히도 '양호'였다.

다음 임신을 위해 갑상선 수치나 혈전을 관리해줘야 하지만 임신 유지를 어렵게 하는 중대한 요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남편과 나는 내심 서로가 본인의 문제일까 하고 불안한 마음이 있었기에 결과를 듣고 마음을 쓸어 내렸다. 바로 시험관 임신을 시도하기 보다는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라는 의사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마음을 편히 갖고 다음 임신을 준비하기로 했다.


난임 병원에 몇 번 드나들면서야 알게 되었다. 임신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을. 병원에는 나를 비롯해 타지에서 오랜 시간 들여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여서 기본적으로 대기 시간이 길었다. 아기 없이 부부끼리만 사는 딩크족도 많지만 아기를 안 갖는 것과 못 갖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쉽게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크나큰 복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처음 임신을 확인하고 무심코 '아기가 좀더 늦게 와주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떠올린 생각이 얼마나 배부른 생각이었는지를 떠올렸다.


연이은 유산으로 나 또한 얼마나 마음을 졸였었나. 온갖 안좋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조급한 마음이 들었었지. 유산이라니,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기에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건 '이 또한 뜻이 있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영문 모를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하고 지나갈 일이 될 것이다. 어느덪 임신 5개월에 접어드는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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