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무렵, 엄마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당황한 큰엄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별안간 큰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올해 75세인 큰아빠는 평소 술, 담배를 즐겨하긴 했지만 돌아가시기 전 어떠한 징후도 없었기에 그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큰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충격이었지만 가장 큰 감정은 슬픔보다는 연민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큰아빠가 웃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다. 큰아빠는 늘 화가 나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 하는 사람의 전형이 바로 우리 큰아빠였다. 명절에 큰집에 가면 큰아빠가 온갖 것을 트집 잡아 퉁명스런 음성으로 엄마 아빠를 타박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너살 즈음의 나를 당신의 무릎에 앉혀 발가락을 간지르던 것만은 큰아빠가 내게 보인 유일한 살가움이었다.
7남매인 아빠 쪽 식구들이 다 모이면 남자 어른들은 으레 화투를 쳤는데, 큰아빠가 돈을 잃으면 어김없이 벌개진 얼굴로 버럭 화를 내는 일 또한 잦았다. 워낙에 다혈질인 성미이다 보니 친구도 없었다. 어렸을 때는 그런 큰아빠가 마냥 무서웠는데 성인이 되어 큰아빠를 보니 참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끔 가족 행사에서 마주치면 내쪽에서 먼저 살갑게 대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런 큰아빠의 갑작스런 죽음이라니. 그간 큰아빠가 평생 인상을 쓰며 움켜쥐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참 덧없다고 느껴졌다. 큰아빠는 땅과 주식을 소유했으나 그 누구와도 진정한 애정을 주지도 받지도 못했다.
죽음 이후에 가져갈 수 없는 것들에 집착했고, 남는 것들에 소홀했다.
살아있는 동안 먹고 살만해져도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은 소홀하게 여기는 것이 비단 큰아빠의 실수만은 아닐터다. 큰아빠는 정도가 심한 편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것에 비중을 크게 두고 산다. 지인들의 죽음을 목도할 때마다 나도 죽음을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