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KBS 다큐로 소개된 바 있는 오산의 아내의 정원.
할머니가 40년 넘게 꽃을 심어 정성껏 가꾼 공간이다. 한때는 개방했던 정원이지만 현재 개방은 하지 않고 있다. 정원주 노부부의 연세가 90세에 가까워지면서 정원 가꾸기가 점점 힘에 부쳐, 잡초 제거 등 정원을 가꾸는 데에 힘을 보태는 봉사 형식으로 그곳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현관문 밖에서 보면 별다를게 없지만 안에 들어서면 저수지를 따라 길게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 경관이 끝내주는 공간이 펼쳐졌다. 구석구석 손길이 필요한 가을 정원이어서 조금 쓸쓸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온갖 꽃과 새싹이 돋아나는 봄에는 생동감 넘칠 것 같았다. 정원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으라는 할아버지 말씀에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화장실을 이용하러 집에 들어갔다.
정원의 규모에 비해 집은 작았는데, 집 안에는 천을 이어붙여 손수 만든 할머니의 퀼트 작품이 가득이다. 작품의 규모가 굉장히 컸는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4~7년이 걸리고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4시간을 집중하여 작업하신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앞 바닥에 깔려 있는 작품을 무심코 카페트인줄 알고 밟은 나는 할머니께 죄송스러워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하필 그게 할머니와의 첫 조우였기에 나는 스스로의 부주의를 한껏 자책했다.
올해 86세인 할머니는 정원을 거닐 때 넘어지지 않도록 잡을 것을 의지해야 했고, 보청기를 끼고 계셨지만, 대화를 할 때 말에 기품이 넘치는 분이었다. 정원 일이라고는 1도 모르는 나에게 잡초를 베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감시하러 오겠다'는 유머까지 곁들이기까지 하시는게 아닌가. 배운대로 잡초를 베는 동안 임산부가 너무 무리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며 종종 말을 건내어 오셨다. 나는 오히려 정원을 정리정돈 하며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 왜 정원 일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별로 많은 일은 하지 않았는데 금새 점심 시간이라는 이야기에, 야외 테이블에 모여 각자 싸온 음식을 풀었다. 김밥, 샌드위치, 유부초밥, 고구마... 우리가 싸온 음식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준비해 주신 감자전까지. 쌀가루와 감자를 섞어서 만들었다는 감자전 맛이 일품이었다. 여태까지 먹어본 감자전 중에 가장 바삭바삭했다. 너무 맛있어서 손바닥만한 감자전을 단숨에 세 개 헤치웠다. 음식을 먹는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이 집에 오게된 계기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의 전혀 다른 성향, 그럼에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가득 쌓인 모습...
할아버지는 내년이면 아흔인데 지금도 헬스를 하고 세상의 이슈에 대해 알아가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대화할 줄 아는 멋쟁이 중에 멋쟁이였다. 할머니가 한 번 정원에 들어가면 반나절은 기본이고 밥 먹으라고 불러도 도통 나오지를 않는데, 꽃과 대화하고 있기에 정신이 나갔나 싶어 심장이 철렁했다는 노년기의 농담까지 덧붙이는 할아버지였다. 이렇게 내 인생의 몇 곱절을 사신 분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그야말로 '닮고 싶은 노년의 정석'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감회가 새로웠다. 할아버지가 찍은 사진과 할머니가 쓴 글로 엮은 책을 선물로 받아 돌아오는 길, 어느때보다도 마음이 풍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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