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식가는 아니지만 식성이 좋은 편이다.
아침밥을 먹으며 점심에 뭐 먹을까 궁리하는 혈육과 부대끼며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늘 먹고싶은 음식이 머릿 속에 있는 편이다. 그런데 임신하고는 모든게 달라졌다. 임산부들이 흔히 겪는 입덧을 나도 겪게된 것이다.
입덧이라고 하면, 음식을 보고 '웁' 하는-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입덧 증상은 생각보다 다양하게 발현된다. 모든 음식을 토해내는 토덧, 음식을 끊임없이 먹지 않으면 울렁거리는 먹덧, 온종일 입이 쓴 쓴덧... 나의 경우는 주변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쓴덧이다. 간혹 할머니들이 입이 쓰다, 하는데 직접 겪어보니 알겠다. 가루약을 입에 털어낸 후처럼 입이 쓰다. 입이 쓰니 식욕이 떨어지고 단걸 찾게 된다. 단걸 먹으면 먹을 땐 괜찮다가 다 먹고나면 상대적으로 입이 더 쓰게 느껴져 불쾌하다. 하루종일 입이 쓰니 기본적으로 기분이 마이너스다.
쓴덧과 함께 지낸 7개월 동안 깨달은 점은, 그냥 이 상태가 지속될 것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입덧이 20주 전후로 없어진다고 하는데, 나의 쓴덧은 20주를 훌쩍 지나도 도통 없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쓴덧이 없어질까?'하는 기대를 품고 지냈던 20주 전후의 희망고문이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쓰고 그로 인해 기분이 안 좋지만, 이제 쓴덧이 없어질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저 말을 많이 하거나, 어떤 일에 깊이 몰두해서 입 안의 씁쓸함을 잊어버리는게 최선이다.
나름대로 쓴덧의 순기능도 있다. 기름진 것, 밀가루, 커피 등이 일절 안 땡긴다는 것이다. 몸에 안 좋은 것들이 자동으로 땡기지 않으니 기왕이면 건강식으로 먹는다. 식단 조절에 특화된 입덧이랄까. 하루종일 기분이 나쁘다는걸 빼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기만 건강하다면야, 이런건 참을 수 있다. 이렇게 점점 엄마가 되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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