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사고는 역대급 폭우로 물바다가 된 지하주차장과 며칠째 계속된 야근으로 누적된 피로를 이겨내며 걷던 내가 결합한 화학작용 같은 거였다. 한 손에 노트북, 다른 한 손에 가방과 우산. 그날따라 무슨 짐이 그리도 많았던지, 방어조차 할 수 없던 내게 찾아온 필연적 사고였다.
"어?... 어?... 어어어!!!" 그리고 '꽈당!!.'
마지막 계단을 내딛는 순간, 움찔하고 미끄러졌다. 발이 꺾이고, 엉덩방아를 찢고, 등과 머리가 물이 고인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창피함에 벌떡 일어나려 했으나,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뭔가 잘못된 걸 느꼈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대로 가만히 누워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리적 시간으로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겨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왼쪽 발을 끌어당겼다.
'뚝'. 무심코 잡은 왼쪽 발목에서 소리가 나는 듯했다. 일어서고 싶은데, 몸을 가누기 쉽지 않았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아파트 경비실로, 119로, 집으로, 회사로 전화를 돌렸다.
평탄했던 내 인생에 가장 큰 사고였다. 5군데 이상의 삼복사 골절, 수술 및 3주간의 입원, 2달간의 재택근무. 그리고 8개월 뒤 핀제거 수술까지 약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회복 초반, 걸을 때면 올라오는 발목 통증에 함부로 뛰거나 걷질 못했다. 또, 야외행사나, 여행 등으로 장시간 걷거나 서 있을 때면 어김없이 발목에 과부하가 걸렸다. 무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무리였다.
계속되는 불편함에 결국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낫겠지’라는 생각에 시작한 운동. 시작은 필라테스였다. 재활에 도움 된다는 주변인 추천에 집에서 도보 7분 이내 위치한 센터에 등록했다. 발목 재활이 주목적임을 아는 강사 선생님은 내게 수업만으로는 힘드니 개인 유산소 운동과 다이어트를 권유했다. 하지만, 사십 평생 숨쉬기 운동밖에 하지 않던 내가 주 2회, 50분씩 꾸준히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기에 이 정도도 만족했다.
운동 초반, 굳을 대로 굳어버린 몸, 스트레칭으로도 지치는 저질체력, 달팽이보다 느린 회복력,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동작들로 인해 재등록 시기 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가벼운 산책이나 쇼핑에도 부어버리는 다리 상태에 재등록을 멈출 수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많은데, 이렇게 짧은 시간과 거리에도 무리함을 계속 느낀다면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체력보충을 위한 생존운동이라 생각하고 다짐했다.
그렇게 벌써 2년이 지났다. 지금은 필라테스를 접고 헬스 1:1 PT와 수영을 시작했다. 발목은 상태는 과거에 비해 많이 호전되었지만, 뻣뻣한 몸과 저질체력, 느린 습득력은 여전하다. 또한, 운동 종류와 가짓수는 늘었지만, 레슨시간 외 개인운동을 할 여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레슨시간 고려해 약속을 잡는다거나, 수업에 늦지 않게 갈려고 한다거나 변화는
생겼다.
다치고 나서, 멀쩡할 때 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이 생각났다. 탭댄스도 배워보고 싶었고, 자전거 일주도 해보고 싶었고, 스쿼시도 배워보고 싶었는데, 나중으로 미루다 결국 미지수 상태가 되어버렸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 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사고 이후, 그것도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변수는 늘 존재하기에 마음먹었을 때 실천하지 않으면,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 지금의 나의 생존운동은 먼 미래, 나의 원활한 나그네 삶을 위한 준비운동이다. 건강해지기 위한 운동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생존을 위한 준비 운동이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최소한의 건강은 지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