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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줄박이물돼지 Sep 23. 2020

사씨임장기 #6

부동산 첫 방문과 저평가 단지 유람

수현의 조언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인 사씨는 상록 7단지에 한해서는 부동산에 들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미리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지는 않았다. 답답해하던 사씨의 부인이 따질 때 그가 가로되,


"소생의 거래를 대행할 부동산은 불시에 방문해도 능히 손님을 존중하는 사람이어야 하오."


비록 부인에게는 오활하게 얘기했지만 사씨에게는 나름대로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그는 상록 7단지를 둘러본 다음, 내심 찍어두었던 성복역 인근의 푸른마을 푸르지오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위치한 6단지의 상록, 우성, 진흥을 한 번 더 보고 시간이 된다면 신봉동 엘지 1차까지 확인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폭우가 예보된 어느 토요일, 사씨와 부인은 무작정 상록 7단지로 향했다.


"그나마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네요."


사씨의 부인은 불안감에 길을 나섰으나 제법 기분이 좋은 듯했다. 나름대로 오랜만에 아이 없이 떠난 외출이었고, 폭우가 막 그친 다음의 공기가 여름 치고는 시원했다. 상록 7단지의 수목들은 빗물을 머금고 본연의 상쾌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둘은 그 단지가 마음에 들었고, 단지 상가의 부동산에 들어갔다.


부동산 주인은 그들의 방문이 마뜩잖은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씨 부부는 누가 봐도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행색이었고, 미리 연락하고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얘기를 들어보니 부동산 방문 경험이 거의 없는 초짜들이 분명했다. 그는 부부를 앉혀두고 전화가 올 때마다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본적인 브리핑은 해주었지만, 집을 보여주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사씨는 상록 7에는 물건이 없으니 6단지의 매물을 보여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나왔다.


"당신은 6단지의 매물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왜 그냥 나왔나요?"

"우리가 부동산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을 들켰소. 우리 같은 얼치기들은 부동산에 휘둘리기 쉽기 때문에 믿을 만한 곳을 잘 골라야 하오. 비록 브리핑을 받긴 했지만, 그 부동산을 전적으로 믿고 거래할 수는 없겠소."

"당신은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이군요."


부동산을 나서자 다시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사씨와 그 부인은 우산을 꺼내 받은 뒤 6단지로 향했다. 공기는 시원했고 6단지는 가까웠다.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복도 쪽 창문으로 전경을 한 번 봅시다."


사씨는 눈앞에 보이는 현관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부인은 저 이가 뭐 하는가 싶어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아파트 입구 근방까지 갔다가 이내 돌아서더니,


"관리가 잘 되는 단지구려. 비밀번호를 몰라 입구를 통과할 수 없었소."


사씨가 사는 아파트 입구는 누구나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6단지는 그렇지 않았다. 부동산을 박차고 나왔으니 집은 볼 수 없었고, 전경이라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접고 인근의 개천으로 이동하였다.


"6단지는 모든 조건이 준수한 단지요. 북으로는 개천에 면해 있으며 천변 산책로를 통해 수지도서관, 수지구청으로 쾌적한 도보 이동이 가능하오. 서쪽으로는 이마트와 면해 있어 생필품 확보가 용이하오. 다만 이외의 조건들은 빼어나다고 보기 어렵소. 성복역, 수지구청역이 모두 가깝지만, 반대로 말하면 두 역과 모두 애매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소. 근방의 수지초, 정평초가 있고 진학 가능한 중학교도 수지에서 가장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상록 7단지처럼 학교를 품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길을 건너서 통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소."

"그럼 왜 6단지를 염두에 두셨나요?"

"부인께 아쉽다고 말씀드린 것들 중 한 가지라도 빼어난 점이 있었다면 지금 우리가 넘볼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을 것이오."

"결국 돈이 없어서 보기 시작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우리 부부는 저평가된 아파트밖에 살 수 없소. 그리고 지금부터 갈 곳이 수지에서 가장 저평가된 단지 중 하나, LG 신봉자이 1차요."


부부는 뱀 조심 팻말이 군데군데 있는 자연친화적 개울가를 걸으며 더운 날씨에도 손을 꼭 잡았다. 뱀과 자연은 때때로 어떤 부부의 금슬에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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