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반팔을 입던 날이 엊그제 같았는데 금세 일교차가 커지고, 거리에는 긴팔과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뒤섞이더니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초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밤공기엔 희미한 김이 서린다.
좋아하던 가을낙엽거리를 아직 다 거닐지도 못했는데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은 기다려주지 않는 찰나라 더 빛나는 걸까.
책 사이 끼워두었던 몇 해 묵은 마른 낙엽들을 책장에 고스란히 널어본다.
따뜻한 밀크티도 마시고, 아껴둔 갈빛이 도는 긴치마를 입었다.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소히의 ‘산책’을 들으며 길을 걸어본다.
예전엔 정신없이 꼬리를 쫓아도 늘 모자라던 시간들이었는데, 모든 것을 멈추게 된 그날부터인지 고요히 내가 방향을 정할 시간을 지켜봐 준다. 어떤 선택이라도 이젠 그래, 그렇게 해보자고 내게 긍정하는 것 같다.
아직도 어떤 확신도 이대로 괜찮을지도 답을 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나저러나 모든 것이 처음인데 내게 굳이 불안을 끼워두기엔 이 젊음이 조금은 아쉬웠다. 맞아, 아직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두 다리로 잘 걷고, 잘 웃고, 젊은 걸.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가을낙엽을 볼 수 있을지, 오늘 같은 가을비 소리를 들을지 잘 몰라도 이것 만은 알고 있다.
나는 아프기 전보다 더 살아감에 애틋하고 소중하다. 삶 속에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은 대로 그것이 내게 멋진 풍경처럼 자연스럽다. 그렇게 고요히 변하는 시간대로 낙엽이 물들어감에 주저하지 않듯 삶을 일궈 갈 것이다. 계절 따라 소매길이가 자연스레 달라지는 사람들의 풍경처럼 평범하고, 당연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