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진짜, 디지털피아노는…가짜?

by 익호
디지털피아노가 제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피아노를 대체할 수는 없다.


피아노를 한 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들어봤거나, 또는 스스로 떠올렸을 법한 생각이다. 음악 전공자들은 물론, 많은 지도자, 애호가, 취미 연주자들까지도 한탄하듯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그중 혹자는 디지털피아노를 ‘연습용 보조 기구’정도로도 취급 못할 장난감으로 치부한다. 제대로 된 연주가가 되려면 반드시 ‘진짜 피아노’에서 연습해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피력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당하신 말씀이다. 현대의 '피아노포르테'라는 악기는 목제 건반, 금속 울림판, 현과 액션 등 다양한 부품들이 만들어내는 ‘기계적 조합’만을 가리키며, 그것을 잘 연주하려면 당연히 본래의 악기 모습 그대로를 접하는 것이 이상적이니까.

하지만 디지털피아노가 ‘진짜 피아노’를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은, 두 악기의 목적과 성격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꽤 간과한 주장이다. 디지털피아노는 피아노를 흉내 내려는 모조품이라기보다, 실제로는 전혀 다른 구조와 원리를 가진 별개의 악기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디지털피아노가 피아노를 대체할 저렴한 대안으로 시작한 게 맞긴 하다. 1960~70년대를 거쳐 80년대부터 본격화된 디지털 샘플링 기술의 초기 모델들은 그 만듦새나 소재는 차치하고 건반의 감도나 음색의 표현력이 실제 피아노에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열등했고, 페달 작동도 단순했으며, 셈여림 표현력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조잡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장난감 같다’거나, 혹은 ‘기계음 같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당시 이 악기를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 각인된 그러한 인상은 꽤 오래도록 남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실망의 시대를 지나면서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샘플링과 모델링 기술은 정교해지기를 거듭하고, 건반에는 해머를 달아 무게와 터치감을 사실상 해결했으며, 페달의 압력 감도까지도 실제 피아노에 근접하도록 정교하게 재설계된 모델들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발전상은 현재에도 실시간으로 진행중이다.

중요한 ‘음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향판을 울리는 실재적인 공명감은 대부분의 모델에서 여전히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지만, 대신 디지털 신호로 모사한 배음과 잔향 등은 생각보다 훨씬 사실적으로 표현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디지털피아노는 ‘피아노를 흉내 내는 악기’라기보다는, 오리지널 피아노의 연주 경험을 디지털 방식으로 재현하는 혁신적인 악기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피아노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목제 악기의 특성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더라도, 나 같은 취미 연주자가 연습용으로 쓰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서는 충분한 구실을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 요컨대 디지털피아노의 존재 의의는 ‘어쿠스틱 피아노의 대체품’으로서가 아니라, 건반악기의 ‘또다른 가능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대안에 가깝다고 본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뜻밖에도 악기의 역사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진짜 피아노’라고 부르는 이 현대 악기의 왕조차, 초기에는 음악인들 사이에서 그저 신기한 변종 취급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옛 시대의 주류 건반악기는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같은 것들이었고, 그것들에는 피아노와는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규격과 연주법이 존재했다. 그러던 와중에 새롭게 등장한 악기 피아노는 셈여림 조절 능력과 자연스러운 감정 전달이 가능한 혁신으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울림이 부족하고 터치가 고르지 못하다는 혹평 또한 받았었다. 저 위대한 바흐조차 초창기 피아노였던 ‘포르테피아노’를 경험해 본 뒤 신랄한 악평을 남겼다는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다. 건반악기를 특별히 사랑했던 바흐가 포르테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단 한곡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야화’도 어느정도 신빙성을 갖는 듯하다.

그러나 초기의 이런 양분된 평가와는 다르게, 시대가 지날수록 피아노는 기존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 등의 포지션을 흡수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입지를 획득하며 발전해 갔다. 그리고 현대에는 오히려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 등의 과거 악기들이 ‘피아노의 조상’쯤으로 여겨지며, 가끔 ‘시대 연주’를 위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나버린 상황이다.


이렇게 ‘포르테피아노’에서 ‘피아노포르테’로의 발전사에 빗대어 보자면, 디지털피아노 역시 스스로 하나의 새로운 건반악기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특히 제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지 수십년밖에 안 되었다는 점을 너그러이 헤아려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 악기를 바라보는 자세도 ‘피아노의 모조품 혹은 장난감’이라는 시선보다는, 그 자체의 조건과 장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타당할 것이다.

디지털피아노는 음량 조절이 용이하고, 조율이 필요 없으며, 공간 제약을 덜 받는다는 특장점이 있다. 이는 층간소음이 생명까지 위협하는 이슈로 떠오른 현대인의 주거 환경을 놓고 볼 때, 매우 현실적이면서 사실상 거의 유일한 선택지다. 내가 서른넷에 다시 피아노를 시작할 마음을 먹은 것도 디지털피아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지금 연습하는 바이엘 같은 교본을 비롯해서 앞으로 경험할 모든 곡은 전통적인 ‘목제 피아노’를 위해 쓰인 것들이다. 그러니 아무리 뛰어난 디지털피아노라 해도, 그 원본 악기의 터치감과 향판의 감성적인 울림, 그리고 그에 반응하며 성장하는 연주자의 체험을 상정하고 쓰인 음악을 완벽하게 재현해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쉽지만, 아직까지 디지털피아노는 피아노라는 악기, 나아가 음악이라는 거대한 영역을 이해하고 접근하기 위한 ‘편리한 도구’ 포지션에 머무르는 게 한계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이며, 특히 아파트에 사는 환경에서도 악기 연주에 도전하고, 연습하고, 또 애호할 수 있게 해 주는 고맙고 편리한 도구인 디지털피아노가 나는 꽤 마음에 든다.

한 가지 사족을 더하자면, 디지털피아노는 피아노를 뛰어넘을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을 때, 나는 ‘할 수 있으나 그럴 필요가 없다’라고 답하겠다. 수억을 호가하는 콘서트용 그랜드피아노만큼의 비용과 기술을 집약시킨다면야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대체 가능할 물건이 튀어나오겠지만, 아무도 그런 걸 원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 모든 기술은 수요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는 것 아닌가.


최근 몇 주 사이에 연습실을, 또 레슨을 구해야 하나 고민만 많아진 나는 오늘도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디지털피아노 앞에 앉아 바이엘과 하농을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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