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자전거 타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손윗형제의 세발자전거를 물려받아 아파트 단지를 누비던 때는 있었지만, 조금 더 자라 두발자전거를 탈 나이가 되었을 땐 보조바퀴를 단 자전거로 몇 번 시도만 하다 금방 시들해졌었다. 당시 내 관심은 자전거보다는 롤러스케이트에 있었고, 문자 그대로 피나는 연습 끝에 꽤 잘 타게 되었다.
학교 다닐 만큼 나이가 찬 뒤로 다시 롤러스케이트를 신어본 적은 없지만, 그 감각만큼은 아이스스케이트로 이어져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두발 자전거를 제대로 타 본 건 이십대가 끝나갈 무렵, 워킹홀리데이 시절이다. 교통비를 아끼려 구매했던 5만원짜리 미니벨로를 타고 옆동네 마트까지 장을 보러 다니거나, 구불구불한 교외 주택가를 딱히 목적도 없이 헤매는 일이 당시 일상이었다. 바다로 이어지는 강둑길을 목적도 없이 왕복하며 시간을 보내던 날들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새롭게 두발자전거를 배우면서 딱히 고생했던 기억은 없다. 물론 화려한 발놀림으로 움직이는 자전거에 타고 내리거나, 두 손을 놓고 달리는 식의 ‘묘기’는 시도도 하지 못했지만. 내 자전거 스킬은 그저 허리 디스크가 도지지 않도록 늘 긴장하며 페달을 밟는 수준에 머물렀었다.
그래도 페달을 굴려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어릴 적 보조바퀴를 달고서나마 몇 번 시도해 보았던 흐릿한 감각이 내 안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일까. 의식에는 흔적조차 없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는가보다.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시작하기 전의 난 몇 개의 음자리 빼고는 악보 읽는 법도 죄 까먹었다고 생각했었다. 양손을 맞춰 연주하는 감각은 당연히 사라졌을 테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바이엘 교본을 펴고 한 곡 두 곡, 열 곡 스무 곡 차근차근 넘기는 와중에, 분명 기억에 없었을 감각이 피어오르는 것을 눈치챘다. 아니, 눈치챘다기보다는 목격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까.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왼손은 여전히 더듬거리지만, 오른손만큼은 신기하게도 정확한 음을 짚는다. 악보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 순간에조차 말이다.
이게 가능하다고?
기쁘고도 놀라웠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면 가능한 한 어릴 때’ 이 말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교육이 유년기부터 소년기 사이에 집중되어 있는 까닭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왜 그 누구도 내게 그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설득하지 않았을까.
피아노 학원을 관둔다고 경솔히 내뱉었을 때, 그게 누구든, 어떤 어른이든지 간에 한 번쯤은 말려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손가락이 내는 음들은 방금 전과는 달리 맥이 빠진 듯 들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난 이제 와서야 다시 시작했으니까.
롤러스케이트를 처음 선물 받은 날, 신이 나서 밖으로 달려 나가던 나. 수십 수백 번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얼굴까지 긁히면서도 솟아나는 의욕으로 다시 일어나 박차고 나가던 나.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바람처럼 달릴 수 있게 되어 동네 아이들의 주목을 받던 나.
그런 나는 이제 없다.
지금은 한 발 한 발 삐걱대며 걸어야 하는, 주기적으로 디스크가 재발하는 어른만이 남아 있다.
씁쓸하지만, 흘러간 시간에 대해 돌이킬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고, 대신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는 않다.
나는 그저 위로할 뿐이다. 그래도 아직은 쓸만할 구석이 남아있지 않겠느냐고.
롤러스케이트 타던 감각으로 아이스링크를 달리던 어린 시절의 반짝임은 바랄 수 없어도, 보조바퀴를 경험해 본 정도의 밑천으로도 두발자전거 타기를 성공했잖은가.
짧았지만 피아노를 쳐 본 시간이 내 안에는 분명히 남아있고, 그 모래알만한 경험치로도 놀라운 일은 생기는 법이다.
만약 완전한 백지상태였다면, 악보에 눈길을 주지 않고도 오른손을 쳐내는 쾌감을 알 수 있었을까? 그전에 양손을 함께 치는 게 가능하긴 했을까?
삐걱대더라도 나아가 볼 만큼의 용기와 행운은 이미 챙긴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