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시작은 바이엘

by 익호

교재에 대한 고민이 깊진 않았었다.

그 옛날 피아노 학원에서 내가 써본 악보라고 해봤자 너덧 권이 전부였을 것이다. 금방 떠오르는 것도 바이엘, 체르니, 브루크뮐러 정도. 창고 어딘가에 처박혀 곰팡이가 거무튀튀하게 슬었을 그 악보들 중에서 적당히 집어 쓰면 되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이 내 계획의 전부였다. 그리고 답은 사실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체르니 연습곡집. 오래된 기억만으로도 지금 수준에 치기엔 무리라고 판단하기에는 충분했다.

브루크뮐러. 이것은 분명 연습용 교재가 아닌 아닌 연주곡집이었을 터다.

그렇다면 남은 건 바이엘 하나뿐.


그런데, 없었다. 초가을의 차가운 베란다 바닥을 맨발로 딛고 서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여러 차례의 이사동안 버티지 못하고 버려졌거나, 어쩌면 처음부터 구입한 적 없이 학원에 비치된 것을 빌려 썼을 가능성도 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실제로 그렇게 개인 교재 없이 배우는 아이들도 종종 있지 않았던가?

어쩔 수 없다. 없는 건 새로 사는 수밖에. 난 방으로 들어와 시린 발을 양반다리로 꼬고 앉아 스마트폰을 켰던 걸로 기억한다.

기왕 새로 사는 김에 ‘이름만 바이엘인‘ 개정판들 말고, 원전판을 주문했다. 원류나 원형에 대한 내 근거 없는 집착은 분야를 막론하고 상당한 편이지만, 그때는 그런 허영심보다는 단지 서른 넷을 먹고 알록달록한 일러스트로 가득 찬 어린이용 악보를 산다는 게 낯부끄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


원전판 바이엘 연습곡집《Vorschule im Klavierspiel (Op.101)》은 총 106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반부는 곡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한 줄짜리 손가락 연습으로 시작되지만, 중반부터는 제법 곡다운 것들도 나오기 시작하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체르니 100과 견줄만한 난이도의 곡들도 속속 등장한다.


노랗고 반짝거리는 표지에 검은색 볼드체로 쓰인 BEYER. 그야말로 초보자를 위한 색 배합 아닌가.

악보를 사 보는 게 얼마만이지... 그러나 나는 이 감상이 틀렸다는 걸 금방 알았다. 내가 직접 악보를 사 보는 건 그때가 태어나 처음이었으니까.

피아노 앞에 앉기도 전에 실력이 느는 기분이었다는, 낯부끄러운 사족을 꼭 붙여야겠다.

새 책이 주는 뿌듯함은 표지를 펼치기 전부터 고양시키는 힘이 있지 않았던가.


교재에 관해 조금 떠들어 볼까.

내가 어릴 때, 한국에서 피아노 입문은 보통 바이엘 교본으로 시작해서 체르니100, 30으로 이어지는 커리큘럼을 따르는 게 전형적이었다. 이는 구시대 한국 교육의 다른 유산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을 통해 들어와 자리잡은 관습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선 이 교재가 입문자의 표준서로 취급되는 일은 드문 것 같다.

서구권에서 바이엘이 외면당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다양한 대체 교재가 속속 등장하며 그 자리를 차지해 갔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알프레드, 베스틴 등 다양한 교재가 60년대 이후로 활발하게 도입되었고, 그 친절하고 다양한 접근법으로 새 시대의 어린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신식 교재’들은 초보자에게 있어, 특히 사용자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흰 바탕에 검은 음표만 빼곡한 바이엘보다 훨씬 친근하고 재미있는 것이었다.

새로 등장한 미국식 피아노 교재는 가정용 피아노의 보급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교육 현장의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전문 음악가를 길러내는 전통적인 스승-도제 구조의 1:1 레슨이 피아노 교육의 전부가 아니게 된 현대, 문화의 향유와 취미 활동의 일환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새로운 계층에서 전통적인 교재는 더이상 인기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재미와 효율’이 교재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신식 교재 유행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그에 비해 내가 첫 교재로 선택했던 바이엘 원전판은 이미 일종의 유물이 된지 오래였다.

그 낡은 것의 내용물을 살펴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을 것이다:

먼저 106곡이라는 큰 볼륨. 초보자에겐 다소 버거운 규모다. 곡마다 어떠한 제목도 부연설명도 붙어 있지 않다.

기술적인 면에선, 검은건반의 등장이 매우 늦으며, 지루하게 재활용되는 패턴 반복과 왼손 반주+오른손 멜로디라는 구조에서도 시종일관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낮은음자리표가 중반 이후에서야 겨우 쓰이는데다, 다른 악전들도 예고 없이 나타난다는 점은 여러 모로 초보자에게, 특히 독학을 위한 교재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의 요소가 사실상 없다.

이런 바이엘의 한계를 한국과 일본의 교육자들이라고 몰랐을 리 없다. 실제로 두 나라 교육계에서도 서양 특히 미국의 ‘신식 교재’를 일부 도입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 널리 받아들여진 선택은, 놀랍게도 기존의 바이엘을 개찬해 쓰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두 나라의 보수적인 교육 제도와 국민적 정서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거듭 고쳐 쓰여 지금의 국내 서점가를 점령한 ‘간추린 바이엘’류는, 바이엘이라는 명칭을 부러 붙여 정통성을 위장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앞서 말한 미국식 신식 교재와 궤를 같이하는 완전히 새로운 교재들이다. 내가 선택한 원전판 바이엘은 그것들과 이름만 공유할 뿐, 피아노 교육계에서 더 이상 일차적으로 고려되는 교재가 아니다. 이제는 음악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두는 전문가의 참고 자료쯤으로 여기는 게 타당할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첫 교재로 바이엘 원전판을 고른 건 구닥다리 사고방식이었을까?

꺼지지 않고 유행중인 대체 교재로 재미있게 첫 스타트를 끊는 게, 앞날을 위해 더 좋은 선택이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벌써 수 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확실한 답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당시의 내 머릿속에는 자꾸만 떠오르는 멜로디가 하나 있었다.


도~레~미~레~파~미~레~도…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던 기간이 길다곤 할 수 없지만, 인상에 남을 만한 곡이 아예 없진 않았을 텐데,

내겐 그 어떤 곡보다 이 단조로운 선율이 뇌리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아마 그 시절 피아노를 한 번이라도 배워본 사람이라면 이 멜로디를 기억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바이엘 1번 곡. 무표제인 이 곡에 내가 대신 제목을 붙인다면, 첫인상이라고 붙이겠지.

그 옛날 학원 선생님께서도 이 단순한 선율을 잘 칠 수 있다면 그 어떤 곡이든 능히 칠 수 있을 거라고까지 하시지 않았나.

어쩌면 그건 기억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또 다른 누군가의 발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다면, 한 번은 바이엘로 돌아가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구닥다리라는 비판. 음악성이 결여된 손가락 연습에 불과하다는 비판.

바이엘에 대한 박한 평가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학에 더 적합한 대안이 수두룩하다는 것도 잘 안다. 당시 내가 실제로 다른 교재를 검토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결국 내 손에는 노란 표지의 바이엘 원전판이 들려 있었다.

지금 떠올리면 나에게 바이엘이란 피아노의 원점이자, 그것을 복기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구관이 명관은 아닐지 몰라도, 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유효했을 수도 있는 법.

실재로 바이엘은 유물이 되었지만, 그 이름만큼은 피아노 교본의 대명사로 남지 않았는가.

그 가을, 나는 그러한 오해나 변명이나 혹은 막연함과도 닮은 생각을 어딘가에 품고 바이엘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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