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피아노 교육 씬에서 바이엘과 더불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 이름만 들어도 ‘피아노 교본’을 떠올리게 할 만큼 방대한 양의 연습곡을 남긴 그는 생애동안 베토벤이나 쇼팽처럼 천재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얻지는 못했지만, 연습곡에서만큼은 탁월한 효용성을 인정받아 많은 피아노 학습자들의 길잡이가 되어왔다는 점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체르니 에튀드가 갖고 있는 이러저러한 약점—음악성 부족, 기계적인 반복, 특정 테크닉 편중 등—이 종종 지적되기도 하고, 특히 유럽이나 북미의 피아노 교육계에서는 점차 구닥다리 취급을 받아가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체르니의 입지가 여전히 굳건한 것 같다. 나 역시 선행한 바이엘에 이을 다음 교재로 체르니를 선택했으며, 몇 곡을 훑어본 정도인 현 단계에서도 대체로 그 선택에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꼭 체르니여야 했을까?
21세기 현재, 체르니를 대체할 만한 좋은 교재는 얼마든지 있다. 다양한 시대와 스타일을 반영하면서 음악성까지 갖춘 연습곡집, 현대적인 교수법이 반영된 체계적인 연습곡집도 시중에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르니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선택되는 교재이며, 특히 오랜 기간 음악과 함께한 이들 사이에서 더 사랑받고 있는 듯하다. 체르니를 몇 번 까지 마쳤는가를 피아노력(歴)의 증거로 내세우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은 물론 반쯤 농담 섞인 이야기지만 그만큼 체르니가 오랫동안 피아노 교육의 척도로 자리 잡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체르니는 그 유명한 베토벤의 제자였다. 그리고 리스트의 스승이기도 했다. 고전 시대를 완결시킨 음악가와 낭만 시대를 풍미한 아이돌적 음악가. 이 둘 사이를 실질적으로 잇는 존재, 그것이 바로 체르니였던 것이다.
‘체르니의 연습곡은 베토벤의 곡을 제대로 치기 위한 과정을 담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는 대체로 근거 있는 이야기이며, 바꾸어 말하면 체르니의 곡들이 고전 피아노 테크닉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편 그의 제자였던 리스트는 이제는 일반에도 널리 유명해진 ‘초절기교 연습곡’을 작곡했고, 이 곡들은 스승 체르니에게 헌정되었다. 이는 단순한 존경의 표시라기보다는, 베토벤-체르니-리스트로 이어져내려온 음악적 테크닉과 그 훈련법이 리스트의 음악 세계에 실제로 깊이 뿌리내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즉, 체르니는 고전 시대와 낭만 시대 두 사이의 교육적인 가교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라 해도 과장이 아닌 것이다.
고전과 낭만을 아우르는 과도기에서 두 천재 음악가 베토벤과 리스트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었던 체르니.
피아노의 역사에 있어서 이만큼 넓고 중요한 영역에 걸쳐진 인물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체르니 연습곡을 성실히 훈련하면 단지 손가락이 잘 돌아가는데 그치지 않고, 고전시대의 구조적이고 논리적인 음악, 낭만시대의 더욱 수준 높은 테크닉과 감성까지 아울러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기량을 위한 연습에만 그치지 않고, 피아노라는 악기의 역사를 따라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 더욱 값지다.
2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없이 검증되어 온,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교재라는 건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는 교재 선택에 대한 고민이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데(내가 바이엘을 선택하기까지 고민했던 과정을 떠올려 보자), 체르니는 그 불안을 크게 덜어주는 검증된 답안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
다만, 체르니의 연습곡들은 그 명칭에서 오는 친근함과는 별개로 꽤 어려운 편이다. 초급 교재 취급을 받는 100번 연습곡집조차 제대로 쳐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 바이엘 때와 겹치는 이야기지만, 오래된 교재인 만큼 혼자서 공부하기에는 불친절한 편이며, 그 탓에 각각의 곡을 통해 배울 거리를 놓치기 쉽다는 난점이 있다.
그럼에도 체르니는 꽤 매력적인 교재다. 다양한 응용 곡과 보조 교재를 택해 보완해 나간다면 혼자 피아노를 배우는 길목에서도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다른 훌륭한 교재가 넘쳐나는 시대에 왜 굳이 구닥다리 체르니를?’
만약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200년 동안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의 손끝에서 검증되어 온 교재 체르니가 있는데, 구태여 다른 교재를 기웃거릴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