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aun Jul 22. 2019

단순함의 진짜 의미.

"디자인은 단순해야지!"

"심플할수록 좋은 거야!"

"왜요?"







단순함을 추구하는 이유는
본질을 통제하기 더 쉽기 때문이다.





디자인 심플.

예전에 같이 일했던 디자이너가 시안 리뷰를 할 때 심플이 컨셉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디렉터 한 명이 “디자인은 원래 심플해야지, 심플이 컨셉이라고?” 나 역시 속으로 ‘심플이 컨셉이라고...’ 심플이 컨셉이라면 컨셉이 없다는 얘기 아닌가? 그렇게 시안 리뷰가 진행됐고, 결국 명확한 컨셉을 파악하지 못한 채 리뷰는 마무리되었다. 디자인이 단순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미 알고 있다. '디자인은 심플해야 한다.', '단순해야 한다.' 그리고 유명한 디터람스의 'Less but Better'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을 포함해 디자인은 단순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대분의 디자이너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의식적인 대답을 듣기가 어렵다. 당연히 '디자인이 단순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물음만 반복되어 돌아온다.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에서 조니 아이브는 단순함에 대해서 정의했다. '우리는 왜 단순한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까요? 물리적인 제품을 다룰 때 그것을 제압할 수 있다고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것에 질서를 부여하면, 제품이 사용자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단순함은 하나의 시각적 스타일이 아닙니다...중략...제품에 대한 모든 것과 그것의 제조 방식을 이해하는 겁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의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조니 아이브는 단순함에 대해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고 본질만을 남기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는 애플의 디자인 팀에게 '무엇을 더 넣을지 고민하지 말고 무엇을 더 빼야 할지 고민하라'라고 조언한다. 이쯤 되면 디자인이 왜 단순함을 추구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가? 스티브 잡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인용해, ‘단순함은 궁극적인 정교함이다.’라고 정의했다. 바로 본질만 남기는 것이 더 정교하다는 의미다. 디자인이 단순함을 추구하는 이유는 본질을 통제하기 쉽고 그것이 사용하기 더 정교하기 때문이다.




본질.

앞에서 디자이너가 디자인 컨셉이 심플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시각적인 스타일을 의미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함에 대해 조니 아이브가 설명했듯이 단순함은 하나의 시각적 스타일이나 미니멀리즘의 결과 또는 잡다한 것의 삭제도 아니다. 진정으로 단순하기 위해서는 매우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것을 깊이 파고들어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단순함의 시작이다. 그럼 '본질이란 무엇인가?' 본질의 사전적 의미는 [명사] 1.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2.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 을 말한다. 슬슬 감이 오지 않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나 제품들은 모두 그것 나름대로 본질이 있다. 예를 들어 주방용 칼은 썰고 자르는 게 본질이다. 또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연필이나 볼펜은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이 본질이다. 본질에 충실하도록 디자인되어야 사용자가 그것을 통제하기 쉽다. 본질을 통제하기 쉬운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다. 본질에 대한 중요성은 꼭 디자인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피가소는 이런 본질을 추상으로 추출했다. 그럼 또 '추상이란 무엇인가?' [명사] 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하는 작용. 을 말한다. 미셸 루트번스타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에서 피카소의 작품 '황소'를 예를 들어 추상을 설명한다. 피카소는 외곽선 몇 개로 황소를 처리한 그림을 그렸다.

<황소> 피카소 작, 1946 (이미지 출처 : 미셸 루트번스타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생각의 탄생] 중.)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황소의 몸을 이루는 요소들을 대부분 제거하고 머리의 특징을 잡아낸 그림을 그렸다. 몸의 특징이 사려졌음에도 이 그림은 '황소다움'의 본질을 보여준다. 피카소에게 있어서 황소다움의 본질은 머리나 크기, 몸뚱이에 있는 게 아니라 뿔처럼 아주 단순한 것에 깃들어 있었다. [생각의 탄생]에서 추상을 본질을 파고드는 생각의 도구로 소개한다. 소설가 월라 케이터는 "추상화는 없어도 되는 관습적 형식과 무의미한 세부를 골라내고 전체를 대표하는 정신만을 보존하는 일이다."라고 정의한다. 바로 디자인이 무엇을 빼야 할지 고민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무엇을 빼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본질만을 보존하기 위한 고민이어야 한다. 그것은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단순함과 복잡함.

본질을 망각한 채 기능에만 집착하게 되면 점점 복잡해진다. 기능에 대한 로망이 개발자를 자주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사용자가 그것을 온전히 통제하지도 못하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디자인 동상이몽이다. 앞에서 디자인이 단순해야 하는 이유를 사용자가 본질을 온전히 통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본질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복잡함 보다는 단순함이 더 유리하다.(단, 정말 본질만을 남겼을 경우.) 복잡한 것은 통제하기 어렵다. 단순한 것은 통제하기 쉽다.

복잡함 보다는 단순함이 본질을 통제하기 유리하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발표 키노트에서 기존 스마트 폰은 잘못 만들어졌으며, 전혀 스마트하지 않다고 했다. 수많은 버튼은 불필요하며, 사용자가 그것을 통제하기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했다. 애플은 조니 아이브가 디자인한 버튼 3개짜리 아이폰에 기존 스마트 폰의 모든 기능을 구현했다. 무엇을 빼고 무엇을 남길지, 단순함에 대한 고민이 아이폰을 탄생하게 한 것이다. 기존 방식으로 단순함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복잡함 보다는 단순함이 본질을 전달하기 유리하다.


국내에 개봉하는 외국 영화들의 포스터는 개봉하는 지역의 정서를 반영해 현지화된다. 왼쪽의 이미지는 2017년 Arrival의(컨택트) 국내 개봉 당시 포스터이고, 오른쪽은 북미 개봉 포스터다. 복잡함은 무질서이고 단순함은 질서다. 왼쪽의 복잡한 비주얼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른쪽의 단순한 비주얼은 이해하기 쉽다.




단순함을 이루기 위해선.

스티브와 조니는 단순함에 집착했다. 또한 그것이 더 좋은 제품을 만들게 한다는 믿음이 같았다. 조니는 중간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스티브와 직접 소통했으며, 스티브는 조니가 이끄는 애플 디자인 스튜디오의 디자인에 맞춰 제품을 설계하도록 엔지니어 팀에 지시했다. 일반적인 기업은 엔지니어들의 설계에 맞춰 디자인을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의 엔지니어 팀과 디자인 팀은 자주 충돌했으며, 그때마다 스티브는 디자인 편을 들어줬다. (아이폰4의 데스그립 사태처럼 둘의 고집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스티브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를 뒤집어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를 고수했다. 모든 설계를 디자인에 완벽하게 맞추길 원했다. 그렇다면 애플의 디자인은 왜 단순한 것일까? 애플의 디자이너의 역량이 뛰어나서 일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당장 눈 앞의 매출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리더의 고집과 결단이 더 중요하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결정하는 최종 결정권자의 안목이 매우 중요하다. 애플의 디자인이 단순한 건 애플의 디자이너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노력과 역량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다만 애플의 디자인이 단순함을 가진 결정적 이유는 애플의 리더인 스티브의 철학 때문이었다. 스티브는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대해 강조했다. 단순함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위해 인식의 마찰을 줄이는 것이다. 그렇게 마찰을 줄이면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제품을 통제하기가 더 쉬워진다. 그것은 스티브의 인문학적 고찰이었다. 또 애플은 마찰을 줄이는 것에 기술을 활용했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 스티브 잡스.


그 모든 것이 스티브의 철학이였다. 철학이 없다면 소신을 지키기 힘들다. 소신이 없다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어렵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리더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리더는 철학으로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시켜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조니가 애플을 떠난다는 기사를 접했다. 조니가 애플을 떠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더 이상 애플이 스티브의 철학을 따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 추론해본다.



이전 08화 가치를 디자인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