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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Oct 21. 2019

디자인 다수결 원칙의 함정.

"전체 의견을 들어보죠"

"좋은 시안에 스티커를 붙여주세요."

"한 명씩 평을 해주세요."





다수결 원칙의 오류





다수 의견을 물어본다는 것은 어쩌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

디자인을 하다 보면 항상 최종 리뷰를 하는데 최종 리뷰를 하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디자인 점검을 하기 위함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구성원들의 요구사항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협의된 것들이 디자인 시안에 잘 반영이 되었는지 점검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이런 점검을 숙제 검사하듯이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확인이 없으면 더 이상 진행을 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기도 한다. 맞다, 시안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관계자들의 확인이 중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확인의 의미가 아닌 책임을 피하기 위한 용도의 확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 내가 겪은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한 가지는 에이전시 시절 어느 B브랜드의 웹사이트 리뉴얼 프로젝트였고, 또 다른 하나는 인하우스 시절 오프라인 행사 디자인 프로젝트였다. 첫 번째 B브랜드의 웹사이트 리뉴얼 프로젝트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나는 최종 시안을 리뷰하는 자리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명목으로 리뷰 자리에서 프로젝트와 연관이 전혀 없는 스무 명의 사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 스무 명의 사원들은 무슨 의견을 주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주뼛거리며 들오기 시작했다. 그 자리는 사원들로는 불편해 보이는 자리였다. 그 이유는 대표이사를 포함한 지긋한 나이의 경영진들이 대거 참석한 자리였다. 디자인 PT가 끝나자 프로젝트 담당자는 "자 이제 한 명씩 의견을 말해보세요."라며 사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원들은 망설이기 시작했고, 그러자 임원중에 한 명이 "그냥 편하게 의견을 말하시면 됩니다. 아무거나 좋아요."라며 사원들을 바라보며 압박 아닌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말 아무 말 대잔치가 시작됐다. 그 대잔치에 대해서는 좀 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그리고 두 번째 프로젝트는 인하우스에서 오프라인 행사 관련 디자인을 할 때 일이다. 최종 디자인 세 가지 방향 중에 한 가지로 의견이 모아질 쯤에 담당자는 자기 팀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 했고, 미팅 중에 자기 팀의 팀원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여기 세 가지 시안이 있는데, 좋은 것에 표시를 하고 나가면 된다고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평점심을 찾고 그 광경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담당자와 내가 원했던 시안에 표시가 가장 많았다. 그렇다면 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누구나 책임지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있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것은 이후 어쩌면 생길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책임지기 싫어하는 담당자들의 사전 장치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런칭되면 디자인에 대한 반응이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다. 그때 다수가 동의한 디자인에 대해서는 반응이 좋지 않아도 담당자들은 책임을 피해 갈 구멍이 생긴다. 하지만 독단적으로 확신을 갖고 밀어붙인 디자인의 반응이 좋지 않을 때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담당자가 져야 한다. 그렇다고 그 책임이 극단적인 책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 다수결의 원칙은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책임을 피해 가지 위한 장치로 이용된다. 하지만 프로젝트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확인을 요구하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은 단점만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아는 것에 대해서는 장점을 말할 줄도 안다. 하지만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단점에 중점을 두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의 판단이 생기지만,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그 판단이 생기지 않는다. 그럴 때 사람들은 장점이 아닌 단점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 자리가 공개된 공식 자리일수록 그런 현상이 더 강하다. 그 이유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할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 말한 B브랜드의 프로젝트 리뷰 자리가 그렇다. 그런 자리에서 나는 전문적인 지식을 모르니 의견을 줄 수없다고 말할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의견을 원하는 임원진의 압박을 받게 되면 현명한 사람도 현명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만큼 압박이 심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때 정말 모르는 사람이 되는 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 의견이라도 말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럴 때 아는 것이 없으니 자기 취향에 맞춰서 의견을 주기 시작한다. B브랜드의 프로젝트 시안 리뷰 자리에서 나왔던 의견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령 사용한 포인트 컬러가 경쟁사를 연상하게 한다는 것과 사용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보인다는 막연한 의견들을 비롯해 의미 없는 의견들이 난무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스무 명에게서 나온 의견들은 시안 수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수 보다, 알고 있는 소수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을 때가 있고, 꼭 들어야 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다수의 의견보다는 그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소수의 의견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어디까지 다수의 의견을 반영할 것인지, 또 어디까지 무시할 것인지 구별할 줄 아는 판단력이 중요하다. 이것이 오직 디자인뿐이겠는가. 의견이라는 것을 마냥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감당이 안된다. 또 그런다고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그것에 대해 명확하게, 또 확실하게 집중하고 고민하는 사람의 의견이 더 지배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을 표방하는 디자인 의견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프로젝트와 관련 없는 다수는 그것에 대해 명확하고, 또 확실하게 집중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오직 소수 만이 그것에 대해 명확하고, 또 확실하게 집중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다수결 원칙의 오류.

사회는 다수의 의견을 따를 때 마찰이나 분쟁이 최소화된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다수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다수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사회적인 학습에 의해 형성된 기준이다. 다수의 의견에 따른 이유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의 책임을 피해 갈 수도 있다. 또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찰이나 분쟁을 최소화하고 책임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 다수가 틀렸고, 소수가 옳을 때 다수결의 원칙은 오류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은 항상 옳다는 선입견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전문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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