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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세 Dec 10. 2023

아이 있는 돌싱과 총각의 결혼

니체 vs 실존?

 총각인 친한 후배가 아이가 둘인 돌싱과 진지하게 만나고 있다고 얘기했다.


 이제 것 만나본 누구보다도 더 사랑스럽단다. 게다가 현명하기까지 하다고. 오랫동안 꿈꿔온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족도, 그 어떤 친한 친구들도 그 사람과의 장기적인 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고 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감정이 격해졌다. 주변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안 들어도 뻔하니까.


 내가 생각한 가족 및 친구들이 부정적인 조언을 해준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자본주의적인 시각으로 볼 때 그런 결혼은 손해이니까.

 2. 가족의 반대와 주변의 시선을 이겨낼 자신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1. 목숨을 내줄 만큼 깊은 사랑은 상당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그런 신뢰는 희생 없이 생겨날 수 없다. 가족들이 반대하겠지만 그 정도 역경조차 견뎌낼 자신이 없다면 과연 진짜 사랑을 할 수나 있겠는가? 그녀가 사회적인 페널티를 가졌음에도 네가 그녀 곁에 있어준다면 둘의 사랑은 더 깊어질 것이다. 역경은 오히려 사랑의 재료이다.

 2.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의 경우 주변의 시선에 취약하고 결국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너는 그렇게 자존감이 약하지 않다.

 3. 너의 이상형에 그렇게 가까운 사람은 극히 만나기 어렵다.


 사실 난 그 후배가 너무 부러웠다. 그런 사람과 만나다니. 난 그런 사람을 본 적은 있어도 만나본적은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싱글이 아니었겠지. 여하튼 후배는 나의 피드백에 고마워했고 나는 거의 결혼 축하를 해주다시피 했다.


 당시 나는 거의 확신에 차서 얘기했는데, 이에 관해 회사 동료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찾아냈다. 회사동료 역시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그의 로직은 이러했다. 원래도 쉽지 않은 결혼생활인데 굳이 그런 어려움을 무릅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옳은 말이었다. 어려움을 피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 동료의 의견에 나는 딱히 반론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동료와 나는 삶의 근본적인 전제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동료와의 대화를 다시 생각해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랑을 위해서 조차 최선을 다하지 않고 쉬운 길만 찾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인가?'이다. 니체라면 분명 나의 관점을 지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존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건 분명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고, 역경을 피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이다. 동료의 로직이 이해가 가면서 나는 이게 호르몬의 영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름 남성호르몬이 잘 나오는(나는 고강도 운동을 정기적으로 한다) 남성이고, 반대 의견을 낸 동료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여성스러운 여성. 이런 차이가 역경을 무릅쓰는 나의 성향과 안정을 추구하는 내 동료의 성향차이를 만들었고, 나에게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를, 나의 동료에게는 최대한 성공확률이 높은, 안전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전제를 만들어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료의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 생각이 맘에 들지 않는다. 도망자의 생각으로 보인다. 그렇게 도망만 다녀서 무얼 얻겠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역시 내가 욕심이 많은 걸까? 더 나이를 먹고 남성호르몬이 줄어들면 나도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까?


 하지만 역경을 이겨내는 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가장 대표적인 구조물이 아니었던가? 아무 역경도, 어려움도 없는 사랑이 어떻게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단 말인가? 쉬운 길만 선택한 사랑이 동물들의 사랑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위대한 것들 중 아무 역경 없이 이루어진 것들이 있기나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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