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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by 미래몽상가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Franco Bifo Berardi)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사회는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 가속화 ’라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독일 사회를 거울삼아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우리가 정상이라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비정상처럼 보이게 된다.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 「건전한 사회(The Sane Society)」에서 이를 ‘정상성의 병리성(pathology of normality)’이라고 부른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에 유학을 떠난 저자는 9년간의 독일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경쟁이 없는 학교, 정치교육의 일상화, 등록금과 생활비가 무료인 대학 등 독일에서는 당연한 상식이었던 일상이 한국에서는 매우 비정상적임을 경험하면서, 독일이라는 거울을 통해 한국 사회를 냉철하고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우리 사회에 공유하고 싶은 통찰을 이 책에 담았다.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세계 178개국 대상으로 민주주의의 수준을 비교한 연구보고서 「세계적 도전에 직면한 민주주의(Democracy Facing Global Challenges)」(2019)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1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소득 3만 불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나라들로 구성된 30-50 클럽에 일곱 번째 국가가 되었다.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의 모습이 독일의 권위 있는 주간지에서 다뤄졌다. ‘이제 미국과 유럽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는 취지의 칼럼이었다고 한다. 2019년 홍콩 시위에서는 '님을 향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K-Democracy라고 불릴 정도로 케이팝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분명 선진국이고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임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는 장면들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촛불집회에 동참하며 당당하고 용감했던 민주시민이 다음 날 학교에서는 권위주의적인 교사가 되고, 직장에서는 갑질을 일삼는 상사가 되고, 가정에서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대한민국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또 있다.


저자는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던 광화문 촛불시위와 아시아나 항공사의 갑질 논란에 항거한 직원들의 시위 모습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외치던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에, 자신이 속한 회사 기득권층의 퇴진을 요구하는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탄핵을 외치러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 중 한명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 쉽게 노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대한항공 직원들은 유니폼을 입고 나왔기에 훨씬 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나라면 나가지 않았거나 그들과 똑깥이 얼굴을 가린채 시위에 동참했을 것이다. 그들의 용기를 십분 존중한다. 다만, 너무도 다른 상반된 모습에서 한국사회가 아직은 일상의 민주화가 성숙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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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educate)은 밖으로(e-) 끌어내다(duc-)는 뜻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고유의 재능을 끌어내는 것이 교육이지 지식을 집어넣는 것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독일 역사에서 히틀러가 집권한 기간은 고작 12년에 불과하다. 동독 출신의 물리학자인 메르켈은 16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런데, 독일 학교에서는 역사 교육의 거의 절반 이상을 히틀러와 나치에 할애하고 있다고 한다. 인류에 재앙을 몰고 온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자기반성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은 비판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존의 질서에 대해 비판적 안목을 기르고, 불의의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독일의 비판 교육의 목적이다. 독일 비판 교육의 핵심을 아주 명료하게 알려주는 교과서가 있다. 바로 독일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이다.


독일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제1장의 제목은 ‘올바른 해석은 존재하는가?’이다.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이 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판적 사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고, 어떻게 하면 올바른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을까 연구도 많이 했던터라 독일 고등학교 교과서 제목의 의미가 무척 반가웠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때 비판적 사고에 대해 소개해볼까 한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2017년 예만 난민 500명이 제주도에 들어왔을 때 난민 입국 반대 시위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결국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겨우 두 명뿐이었다. 2015년 독일은 시리아 난민 100만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해에 115만 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참고로, 한국은 2013년에 난민법이 처음 시행되었을 당시 난민 인정률은 9.7%였다. 이후 꾸준히 감소해 2019년에는 0.4%에 불과했다. 법무부와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신청을 한 사람은 1만 5452명이고, 이중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건 79명뿐이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인도적 체류자 지위로 한국에 머물며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생계를 어렵게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 이 두 나라는 비슷한 근현대사의 역사적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렇게 다른 사회가 되었을까?


독일의 통일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흡수통일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말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독일 통일의 주체는 서독이 아니라 동독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을 흡수통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역사를 승자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잘못된 관성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동독 사람들은 지금도 독일 통일의 2인자 취급을 받는 것 같다고 한다. 이유는 동독 혁명이 일어난 10월 9일이 아닌 통일 조약을 맺은 10월 3일을 공식적인 통일의 날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동독 혁명은 여행의 자유를 구속하는 동독 정부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어 발생하였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하면서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고, 동구 사회주의 국가와 서부 자본주의 국가 간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국경을 개방하자, 동독 젊은이들이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를 넘어 서독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독 내부에서 여행의 자유화를 요구하는 많은 시민운동 단체들이 결성되었고, 거대한 저항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동독의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Erich Honecker)가 스트리아에게 국경을 개방한 헝가리를 강하게 압박하자 난처해진 헝가리가 국경을 폐쇄했대. 그러나, 동독 사람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점점 격렬한 시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을 때, 1989년 10월 7일 고르바초프가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일 참석차 동베를린에 도착한다. 호네커는 동독 주민들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고르바초프를 초대했다. 고르바초프바 동독의 공산당에 힘을 실어줄거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호네커는 동독을 이탈하는 시민들에게 '배신자는 조국을 떠나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런데, 이어진 고르바초프의 연설에서 그는 '개혁에 동참하지 않으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라고 변화를 강조해버렸다. 동독 시위대가 고르바초프를 ‘고르비(Gorbi)’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소련은 동유럽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을 탱크로 무자비하게 짓밟아 왔던 나라이다. 그런데 동독의 시위대는 그동안 민주화의 욕구를 짓밟아 온 소련 공산당의 서기장 이름을 외치며 자유를 요구하고 있었 것이다.

20210729_4924272_1627608767.jpg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식 행사>

다음날인 10월 8일 동독의 호네커 서기장은 10월 9일로 예정된 라이프치히의 시위를 중국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10월 9일 드디어 라이프치히에 동독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라이프치히의 그 당시 인구는 약 15만 명이었는데, 이날 약 8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결국 호네커는 무력진압을 포기하고 서기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후인 11월 9일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음 해인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은 통일조약에 합의함으로써 공식적인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다.


김누리 교수님은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이 만들어진 원인을 일본의 과거, 한반도의 현재, 중국의 미래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일본의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 어지 않았고,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했고, 중국의 미래가 중국의 패권주의로 나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세 가지 문제를 풀어낸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나치즘이라는 과거를 청산했고, 평화적으로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을 이루었으며, 주변 국가들에게 패권주의에 대한 공포도 상당히 불식시켰다.


대한민국에게 묻는다. 대한민국은 불편한 진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월한 도덕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야만적인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얽매여 있지는 않은가? 분단의 역사를 끝내고 종속적인 굴종외교를 포기할 자신이 있는가? 독일이 걸었던 독일의 길처럼, 한국의 독자적인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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