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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Nov 09. 2019

3. 나는 나한테서 배울 것이다

by 안수현


나는 계획적인 인간이 아니다. 여행도 계획 없이 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차피 계획해도 계획대로 잘 되지 않는다. 충동적으로, 순간 드는 생각에, 계획 없이, 그냥 이끄는 대로, 끌리는 대로 진행되는 일에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더 많다.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을 시작해야지라고 마음먹었을 때, 독서모임을 ‘이렇게 운영해야지’하고 곰곰이 시간을 갖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동안 내가 해왔던 독서와 나의 고민이 자연스럽게 독서모임의 방향을 이끌었다. 이제부터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을 시작한 과정을 말하려고 한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주인공 싯다르타는 인도 신분제도의 최고층 계급인 바라문의 아들이다. 싯다르타는 진정한 지혜를 깨닫기 위해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가하여 고행 수도승인 사문이 된다.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싯다르타는 진정한 가르침을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싯다르타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다. 

“지혜는 가르칠 수 없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어도 지혜는 가르칠 수 없다. 왜냐하면 지혜는 머리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몸으로 겪으며 지혜를 깨닫기 위해 싯다르타가 이렇게 말을 하며 속세로 들어간다.

“나는 자신한테서 배울 것이다. 나는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온몸에 전율이 흘러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동안 찾아 헤매던 무언가를 찾은 기분이었다.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불안과 답답함, 공허함에 시달리면서도 막연히 문제는 나한테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왜 이렇게 답답하고 불안한지 모르지만 그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권위와 명성 있는 전문가들이 쓴 책을 읽어보고, 강의도 듣고, 유튜브 동영상도 보고, 구글 검색도 해봤다. 그들이 말하는 해결방법이라는 것도 시도해봤다. 일시적으로 괜찮아졌다가 또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그래 그렇지 뭐. 나란 인간이 이렇게 나약해. 의지가 박약해. 역시 나란 인간은 변하기 어려워.’라는 자책으로 결론을 짓곤 했다.


<싯다르타>에서 “나는 나한테서 배울 것이다”라는 구절을 보면서 그때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보였다. 문제는 내 안에 있는데 그 해결방법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던 게 문제였다. 병을 진단할 때 MRI로 온 몸을 스캔하듯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인간을 스캔해야 했다. 먼저 내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알아야 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다시 묻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마주하기 싫었던, 회피했던 나의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했다. 늘 불완전하고 부족해서 뭔가 불안하고 초조했다. 가만히 있으면 더 불안했다. 그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늘 뭔가를 했다. 돌아보면 책을 읽는 이유도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불안해서이기도 했다. 늘 부족하고 결핍되었던 그 불안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가 트라우마로 무의식 속에 남아 어른이 된 나에게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다. 그 상처를 치유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치유가 아니라 계속 탓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 내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어린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 탓이고, 불우했던 가정환경 탓이었다. 심지어는 작고 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탓이기도 했다. 치유는 이차적인 문제였다. 원망만 쌓여갔다. 또한 이제는 엄마가 된 내가 아이에게 나와 같은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부담과 나도 모르게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짓눌렸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나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극악무도했던 성범죄자에 대한 이야기를 어쩌다 하게 되었다. ‘왜 그런 범죄자가 발생했을까?’라는 질문에 사람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어린 시절 정신적 외상이 범죄자를 만들었을 거라는 거다. 프로이트식의 이론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성범죄자는 대표적인 예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문제행동을 보이면 어린 시절 정신적 외상을 입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프로이트식 무의식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망쳐버릴 수도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어린 시절 상처를 지닌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하는 폭력성까지 있었다.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라니, 약한 어린아이에게 굴복당하는 덩치 큰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왜 자꾸만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어른인 나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처럼 말하는 걸까? 어른인 나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할 수 없는 존재란 말인가.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 세계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출판사 <정신세계사>, <샨티>에서 출간된 책을 많이 읽었다. 이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에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과 차원이 다른 무의식을 말하고 있었다. 프로이트가 규정한 무의식은 한계가 있고 자신을 희생자로 여기고, 저 차원의 동물적인 본능에 가깝다면, 이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에서 말하는 무의식은 무한하고 자신을 인생의 창조자로 여기고, 우주적 차원의 근원적인 힘이 있는 세계였다. 무의식의 본질은 무한하고 온전하고 위대하고 순수한 사랑이었다. 내가 위대하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면 알수록 신기하게도 나를 사랑하는 감정이 움텄다.

나는 처음부터 온전한 사람이었다. 누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부족하고 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그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한테 상처를 줄 수 있었고, 내가 상처 받았던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나는 그저 진짜 내가 되고 싶었다. 

마음공부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이런 말이 많이 나온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감정은 내가 아니다. 마음은 내가 아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이야? 내 생각이나 감정이 내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라고 마음속에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 지껄임은 당연했다. 그 당연한 지껄임에서부터 시작했다. 당연하게 ‘이게 바로 나다’, ‘이게 나답다’라고 규정했던 생각과 감정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정에서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조직에서는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사회적으로는 부를 가진 자가 되려고, 그 무언가가 되려고 애썼다. 그렇게 애썼는데도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것에, 높은 자리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에,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에, 그 무언가가 되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고 좌절했다. 

왜 나는 실망하고 좌절할까?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그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가만히 뜯어보았다. 좋은 엄마, 좋은 아내라고 규정했던 개념을 따지고 들었다.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좋은 엄마, 아내이지 내가 좋다고 동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세상이 정한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부자가 되려고 한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묻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인정하는 성공 기준일 뿐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자유였다. 그저 자유롭고 싶었다. 진짜 원하지도 않은 그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고 또 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가 ‘나’이기 위해 나라고 규정했던 신념, 생각, 가치관, 관념을 덜어내야 했다. 그렇게 다 덜어내고 그저 나 자신이 되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 상태가 바로 ‘나’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쓴 에크하르트 톨레는 달라이 라마, 탁닛한과 함께 오늘날 대표적인 영적 지도자로 각광받고 있다. 그는 부모의 불화와 이혼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사춘기 시절부터 지속된 오랜 우울증과 심리적 방황으로 종종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 톨레는 스물아홉 살 생일이 지난 어느 날 기이한 체험을 했다.

한밤중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우울증으로 괴로웠던 날. 삶에 깊은 회의와 공허를 느끼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더 이상 나 자신과 함께 살 수 없어.”라고 외쳤다. 바로 그 순간,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나 자신과 살 수 없다고 외치는 그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존재가 둘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진짜이고 다른 하나는 가짜라는 말인가?” 잠시 뒤 그는 진짜 나는 관찰하고 지켜보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했다. 순간 기적처럼 깊은 평화가 밀려왔다고 했다. 절망의 나락에서 깨달음의 밝은 순간으로 갑자기 이동하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될 일은 된다>에서 마이클 싱어는 한시도 쉬지 않고 지껄이는 머릿속 목소리를 듣는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 귓속말로 말하는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말이다. 마이클 싱어는 간절하게 그 목소리를 멈추고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이클 싱어는 그 마음 속 지껄임을 초연하게 지켜보고 있는 시선을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머릿속 목소리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지켜보는 대상일뿐이라고 자각한다.

에크하르트 톨레도, 마이클 싱어도 진짜 나라는 존재는 마음속 지껄임을 그저 지켜보는 자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지켜보는 나를 인식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위치에서 나의 상황, 감정, 생각을 관찰하려고 했다.


몇 해 전 서울로 출퇴근할 때 자가용으로 지하철역을 오갔다. 정기권을 끊었고 주차비는 통장에서 매달 자동 이체되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차를 타고 주차장을 나오는데, 차단 바가 올라가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봤더니, 주차비를 내라는 메시지가 떴다. 무인시스템이라 그 누구한테도 항의할 수 없어 그냥 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시스템을 정비한다고 하면서 정기 차량을 일반차량으로 잘못 분류했었던 것이다.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공단 측에 화가 났다. 치솟는 화를 분출하며 주차비를 결제했다. 그때 나를 지켜보자고 마음먹고 ‘지켜보는 나’를 출동시켰다. 화를 내는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내(지켜보는 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곧 마음의 동요가 잠잠해지는 게 느껴졌다. 분노로 출렁거리고 시끄럽게 떠들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지켜보는 자’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자투리 시간이 나면 서점에 가곤 했다. 나는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서서 책을 잠깐씩 보는 것도 좋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읽는 것도 좋다. 사방에  꽂혀 있는 많은 책과 매대에 널려져 있는 책들, 그 사이에서 책 읽는 사람들,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들, 그냥 이 모든 것이 좋다.


서점에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무언가 나를 잡아당기는 듯한 무거움이 느껴졌다. 무언가 살펴보니 껌이었다. 순간, 기분이 확 나빠지면서 속으로는 ‘어떤 인간이 껌을 종이에 싸지도 않고 바닥에 버렸어? ××× 인간 같으니라고’하면서 욕을 했다. 누군지도 모를 그 누군가를 향해서 비난과 불만을 터뜨렸다. 그런 나를 보며 지켜보는 나를 출동시켰다. 나는 왜 이런 지레짐작을 하면서 대상도 모를 누군가에게 욕을 할까? 지금 팩트는 길바닥에 있는 껌을 밟았다는 것밖에 없다. 껌을 밟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내 감정까지 다치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신발 바닥에 붙은 껌을 제거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자 마음이 고요해졌다.

이처럼 어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켜보는 나’를 출동시켜 내 생각과 감정을 관찰하려고 했다. 내 몸과 내 에너지도 살폈다. 나를 아는 것이 먼저였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처럼 나도 나한테서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배우고 있었다.


이하레아카라 휴렌 박사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를 치료하는 심리치료사이었다. 휴렌 박사의 치료법은 이상하고 황당하고 해괴하다. 문제는 환자한테 있는데 치료사인 휴렌 박사 자신을 치료한다. 이게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외부로 나아가는 호오포노포노라는 하와이식 치유법이다. 휴렌 박사는 호오포노포노 치유법으로 신통방통하게도 정신병동에 수감된 범죄자를 모두 치료한다. 급기야는 치료할 환자가 없어 정신병동이 폐쇄되었다. 이 기괴한 일을 호기심 많은 조 비테일이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추적 조사하여 기록한 책이 바로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이다. 

이 책에 조 비테일의 동생 이야기가 나온다. 동생은 가정이 파탄 나고, 생활보조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자신의 정체성까지 잃고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를 보는 형 조 비테일은 속이 타들어갔다. 어떻게든 동생이 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서 돈도, 책도, 영화 CD까지 보내줬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동생은 도무지 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휴렌 박사에게 감화된 조 비테일은 이제 더 이상 동생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동생을 치료하는 대신 자신을 치료하고 정화하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문제는 동생한테 있는데 왜 조 비테일은 자신을 치료하고 정화할까? 납득되지 않는 그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읽는 내내 입으로 “음, 어허”하고 뱉고, 머리는 갸우뚱하며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적인 책임”을 알아야 한다. 호오포노포노 치유법은 나의 외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나의 내부 안에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티벳 사자의 서>에서 현실은 자신의 내부가 빚어낸 환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나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일이 내 인생에서 벌어졌다면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휴렌 박사도, 조 비테일도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여 자신의 외부를 바꾸려고 한 것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전적인 책임을 체감했다. 한창 남편과 말다툼을 한 시기가 있었다.(지금은 서로 포기인지 수용인지 몰라도 말다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서로가 상식이라고 우겼고, 서로가 이상하다고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러고 나면 내 감정은 심하게 요동쳤다. 감정이 잔잔해질 때까지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내 감정 쓰레기가 아이에게 전달되곤 했다. 작고 약한 아이에게 화풀이 아닌 화풀이를 했다. 인정한다. 나는 찌질했다. 곧 후회할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에 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에너지는 서로 교류한다. 내가 기분이 좋아야 아이에게도 좋은 에너지가 전달된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 에너지는 직통으로 전달된다. 아이를 위해서 내가 먼저 기분이 좋아져야 했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인 내가 먼저라는 것을 피부로 체감했다. 

나를 위해 계속 나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원래 사랑스럽고 위대한 존재라고. 나는 내 상처쯤은, 내 감정쯤은 온전히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나의 무의식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 이 작업이 잘 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뭐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괜찮았다. 고요한 새벽시간에 이런 혼자만의 작업을 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덕분에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전적으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여기까지 내가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을 시작하기로 한 과정이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이라고 이름을 정한 것밖에 없다. 그 외는 다 즉흥적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이름 자체에서 모임의 성격과 방향이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은 1년 3개월 동안 종주했다. 그냥 특별한 계획 없이 진행했던 이 독서모임에서 나는 앞으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좋은 경험을 했다.(앞으로 이어질 독서모임 회원의 글이 이를 증명한다.)

앞으로는 <넓고 얕은 지식을 위한 독서모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것 또한 계획하지 않았다.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을 운영하다 보니 직관적으로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고 느꼈을 뿐이다. 나는 직관의 소리를 듣고 그걸 따르려고 한다. 위대하고 사랑 자체인 무의식은 영감과 직관으로 나에게 말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을 마감하고 시즌2기 <넓고 얕은 지식을 위한 독서모임>을 출항한다. 나는 그 과정을 또한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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