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똑서 Nov 09. 2019

4. 좋은 리더에 대하여

by  안수현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을 운영하기로 결정했을 때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성경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예수님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예수님은 왜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했을까? 이제부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내가 생각하는 독서모임 리더의 덕목에 비추어 설명해보려고 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이 있다. 얇은 막은 나의 좁은 관념의 세계이다. 얇은 막은 내가 알고 경험한 것들로 자연스럽게 생성된 나를 가두고 있는 틀이다. 내가 더 큰 세계로 나아가려면 그 얇은 막을 깨고 나와야 한다. 이 막은 얇지만 단단해서 쉽게 깨지지 않는다. 또한 이 막이 깨졌다고 곧바로 완전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의식이 확장된 너비만큼 다시 얇은 막으로 둘러싸인다. 즉 더 큰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계속 막을 깨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얇은 막은 단 한 번의 돌팔매질로 깨지지 않는다. 견고하고 단단하기 때문에 한번 던진 돌은 그냥 퉁하고 튕겨져 나온다. 수십 번의 돌팔매질을 해야 겨우 얇은 막에 균열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그 균열에 또다시 수십 번, 수 백 번의 돌팔매질을 해야 그 막이 와장창 깨지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살다 보면 원하지 않았던, 예상 밖에 별의별 일이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혼란스럽다. 그게 바로 균열이다. 이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발적이든 외부 압력에 의해서든 어쨌든 혼란이 일어나고 그 혼란 속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나의 좁은 세계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여주인공 리즈로 나온다. 리즈는 겉보기에는 잘 나가는 작가로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며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커리우먼이지만 속으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이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 나는 정말 내가 원했던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안정된 직장과 가족, 그리고 친구가 있지만 그들이 곧 나 자신인가? 답을 얻기 위해 일상을 버리고 1년간 낯선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에서 먹고, 인도에서 기도하고, 발리에서 사랑하며 시간을 보낸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변화가 무서워 어떻게든 현재를 유지하려고 일상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리즈는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고 여행을 떠났다. 발리에서 나이를 알 수 없는 주술사 케투를 만난다. 이빨은 앞니만 있고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닌 인상적인 노인이다. 주술사 케투가 리즈에게 이렇게 말한다. "때로는 균형이 깨져야 삶의 더 큰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안간힘을 쓰고 지리멸렬한 일상을 반복하며 유지하고 있다면 차라리 언제 깨질지도 모르는 불안한 균형을 무너뜨리고 다시 새로운 균형을 잡으라고 말한다. 

나는 회원들이 기존의 관념,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 가치관을 깨도록 돕는 게 리더의 첫 번째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분열을 일으켜 기존의 균형을 깨듯이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 리더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식의 확장을 위해 내가 했던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질문을 던져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기존 관념이 정말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거였다. 


한 달에 한 번 토요일마다 딸에게 공식적으로 독서모임 리더로 참여한다며 허가를 받고 외출을 했다. 어느 날, 딸이 “엄마, 리더가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잠깐 생각하고는 딸에게 “리더는 깨진 균형을 중심 잡아주는 사람이야.”라고 답했다. 항상 가슴에 품어왔던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 리더의 두 번째 덕목이었다. 리더는 기존 관념이 깨진 균형에서 새로운 균형이 중심 잡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또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려고 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에 균열이 생기면 자신 내부에서도 꿈틀꿈틀 반응을 한다. 이때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관성의 법칙에 의해 기존의 관념이 새로운 관념을 거부하고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균열을 메운다. 바닥에 넘어져 다치면 피가 나고 피딱지가 생기는 것처럼 스스로 균열이 난 그곳에 피딱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 다시 원래의 좁은 세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기존의 관념이 ‘이상하다’라는 것을 인지하고 새로운 관념에 대해 더 알고자 공부하며 그 얇은 막에 계속 돌을 던져서 깨는 것이다. 몸이 커지면 뱀이 허물을 벗듯이, 의식이 확장되면 기존에 입고 있던 옷이 작아져서 새로운 큰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과 같다.

두 가지 반응 모두 균열이 일어나면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삶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돌팔매질이 합세해야 한다. 관성의 법칙에 의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막고 그 균열이 깨지도록 얇은 막에 계속해서 돌을 던져주어야 한다. 


<디아워스>에서 로라 브라운은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 일반적인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녀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이해를 바라고, 인정을 받는 삶보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더라도 진짜 나의 삶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났다. 나는 로라 브라운의 행동을 충분히 공감했다. 

나는 혼란과 불안 한가운데 있을 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로라 브라운처럼 가정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소홀해지고, 집안일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의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질책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정체성 혼란에 비하면 질타 어린 가족의 시선과 숙제처럼 밀린 자질구레한 집안일은 모두 사소한 일들이었다. 답답하고 불안하고 공허한 마음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고 편안해지고 싶었다. 그러려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했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포기해야 했다. 자유롭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서 그런지 몰라도 기꺼이 욕먹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이는 내가 아니어도 남편이 보살피면 될 일이고, 밥은 밖에서 돈으로 해결하면 되고, 집안이 더럽다고 죽을 일도 아니었다. 그게 또 항상 그런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그러는 일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서로 포기한 건지 인정한 건지 몰라도 나는 점점 좋아졌고 가족들도 편안해졌다. 서로 편안해졌다. 남편은 지금 나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책을 읽지 않던 남편이 독서모임 회원으로서 함께 책을 읽는 것만 봐도 그런 것 같다. 

새로운 균형이 중심을 잡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균열의 시기를 지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것이 불편하지만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당연한 수순이며, 그걸 깨고 나오면 더 자유롭고 편안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혹은 우리들의 경험을 통해서 말해주고 싶었다. 힘주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자신의 스토리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는 위로와 힘이 된다.


리더의 세 번째 덕목으로는 대단한 독서력이나 전문지식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잘 들어준다’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황희 정승의 판결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의 하인 두 사람이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분을 참지 못한 한 하인이 정승에게 달려와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이야기를 들은 정승은 “네 말이 옳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하인이 와서 그 말은 사실이 아니라며 자기 입장을 호소했다. 황희 정승은 이번에도 “네 말도 옳다.”라고 했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조카가 “옳고 그름을 가려주셔야지, 두 사람 말이 다 옳다고 하시면 어떡합니까?”라고 말하자 그는 또다시 “네 말도 옳다.”라고 했다. 

세 사람은 모두 자기 관점에서 이야기했고 황희 정승은 매번 그들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 모두 옳은 이야기였던 거다. 황희 정승도 사람인지라 자신만의 기준이 있고, 누구를 더 편들고 싶은 감정이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모두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었다. 즉, 황희 정승은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 없이 들어주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 이 사람 생각도, 저 사람 생각도 모두 옳았다. 

나는 독서모임 회원들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할 때 세상에서 말하는 선과 악, 도덕적 판단기준 말고 자기 안에 있는 목소리를 듣고 답하라고 요청한다. 학교에서, 종교에서, 세상에서 말하는 기준 말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언어로 스스로 답하라고 요구한다. 어차피 정해진 답은 없다. 하지만 나는 자기만의 답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답은 내 안에 있다. 사람마다 답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은 자신의 답은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독서모임 회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회원들에게 자신의 언어로 전달한다.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의사표현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확인이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때 더 명확하게 자신의 것이 된다. ‘나는 나를 안다’, ‘나는 이럴 것이다’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적합한 단어를 조합해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내 안에는 안갯속처럼 분명하지 않은 생각과 감정, 느낌들이 혼재하고 있다. 이것을 말로 표현하려면 먼저 머릿속에서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독서모임에서 회원들의 발언은 중요하다. 리더는 회원들의 말을 잘 들어주어 회원 모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개인들 성향에 따라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회원도 있고,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회원도 있다. 똑같은 발언 시간을 줄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발언 기회를 주어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리더의 네 번째 덕목으로는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세상을 즐기게 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가 주로 했던 질문은 크게 두 가지이었다. 첫째는 “누구의 딸, 아내, 엄마, 직업을 다 버리고 남은 나는 누구인가?”였다. 이 질문을 한 이유는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과 느낌이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관찰하며 나를 알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예민하고 민감해야 한다. 이럴 때는 나는 ‘이런 감정이 드는구나’, ‘저걸 보면 이런 느낌이 드는구나’라고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나라는 존재를 알기 위해 온몸이 촉수가 된 것처럼 예민하게 관찰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은 “세상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성공의 기준을 다 가졌을 때 누리는 즐거움 말고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진짜 즐거운 사람인가?”이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예민하게 나를 관찰하면 내가 즐거워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그 전에는 못 보고 못 듣던 세계가 보인다. 지루했던 일상을 기쁘고 소소한 행복거리로 채울 수 있다. 그래서 삶이 풍요로워진다.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은 대부분 나를 들여다보고 내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내가 행복한 길을 찾도록 해주는 내용이다. 논픽션에서는 저자의 삶을 통해,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활자는 다르지만 핵심은 같은 질문을 함으로써 계속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했다.


나는 ‘세상 일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삶은 고통이다’라는 말보다 ‘세상은 즐거운 곳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도 안다.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도 없다. 또 살다 보면 원하지 않았던 고통도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별거 아닌 작은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최근에 출퇴근 시간이 길어져서 왕복 3~4시간을 운전한다. 오디오북, 유튜브 방송을 듣다가 다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팟캐스트를 듣고 있다. 예전에 들었지만 몇 년이 지나고 다시 들으니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로웠다. 4명의 패널들이 아웅다웅 티격 대격하며 토론하는 게 참 재미있으면서도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듣는 재미에 귀를 쫑긋 세우느라 속도를 줄여서 운전하곤 한다. 덕분에 출퇴근 시간은 더 길어졌지만 그 시간이 즐겁다. 

요즘에는 일요일마다 독서모임 회원 한 분과 따로 모여 <티벳 사자의 서>를 읽고 공부하고 있다. 특별한 건 없지만 나는 그 시간이 참 신난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공자가 말한 공부의 즐거움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번에는 스터디를 마치고 집에 와서 그 여운이 남았는지 신나서 흥얼거렸다. 나만 아는 미묘한 즐거움이다.

나는 책을 이미 한 권 출간한 작가이다. 그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내가 쓴 책이 잘 팔려서 베스트셀러가 되면 좋지만 뭐 그렇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다.(출판사한테는 미안하지만)  밥벌이 직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쓰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글을 쓴다. 돈이나 명성에 구애받지 않기에 자유롭게 쓰는 것 같다. 글 쓰는 게 좋다. 그냥 쓰는 게 좋아 쓴다. 쓰는 게 즐겁다. 크게 바라지 않기 때문인지 몰라도 쓰는 행위 자체에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 

이렇게 작은 기쁨들을 일상에 모아두면 삶도 즐겁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소소하게 즐기면 된다. 나를 깨우고 내 삶을 확장하면 조금씩 즐거운 일이 많아지고 또 그게 이 세상을 사는 즐거움이다.


리더의 다섯 번째 덕목은 독서모임의 에너지를 잘 관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에너지 관리 차원에서 회비를 받는다. 회비는 어중이떠중이를 가려내기 위한 작은 문턱이다. 블로그나 카페에 모집 공고 글을 올리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겠다’고 댓글을 남긴다. “회비가 입금되어야 신청이 완료됩니다.”라고 대댓글을 남기면 감감무소식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이미 모집 공고 글에 읽을 책과 회비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해놓았다. 하지만 제대로 읽지 않고 참여의사만 먼저 남기는 사람이 있다. 나는 ‘한번 독서모임에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무료로 제공하는 독서모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독서모임을 시작한 나의 지인에게 있었던 일이다. 회비는 받지 않고 책을 좋아하는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독서모임을 주최했다. 독서모임 당일이 되었다. 그런데 당일 참여의사를 비친 사람들 중 일부는 불참 연락을 해왔고 또 일부는 연락마저 없었다. 참여하기로 한 사람은 7명이었는데 정작 온 사람은 2명이었다고 한다. 시작 전부터 벌써 진이 빠졌다고 한다. 식당만 노쇼(no show)가 많은 게 아니다. ‘공짜’ 일 경우 손해 보는 거 없으니까 그냥 우선 신청하고 보는 게 인간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처음부터 차단할 목적으로 회비를 받았다. 

나는 3개월 단위 고정멤버로 독서모임을 운영한다. 회원들의 개인 사정에 따라 어느 달에는 참여할 수도 있고, 또 어느 달에는 불참할 수도 있다. 그래도 회비는 3개월 치를 한꺼번에 내야 한다. 특정 회원의 불참과 상관없이 독서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빠짐없이 운영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당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할 때 있었던 일이다. 6인실 룸을 예약했다. 하지만 참여인원은 3명이었다. 참여한 사람들이 6인실 비용을 n분의 1 해서 분담한 적이 있다. 돈을 많이 내고 적게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래 참여하기로 약속했던 회원들이 약속을 어겨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고정멤버로 독서모임을 운영한다면 비용은 모두 다 같이 책임을 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턱을 높여서 독서 모임에 어느 정도 에너지를 쏟아부을 사람만 들어오게 하고 싶었다. 리더의 책무는 독서모임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는 거다. 돈은 기본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구별해내기에 참 좋은 수단이다. 일차적으로 에너지를 빼앗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돈으로 가려냈다. 돈 가는데 마음이 간다고 했다. 돈이 들어가면 일단 본전 생각에 어느 정도 열심히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비판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가장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 에너지 관리는 리더의 역할이 크다.

독서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이다. 독서모임의 성격에 따라 리더의 색깔도 다양해진다. 앞서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에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의 덕목에 불과하다. 열거했던 리더로서의 덕목은 이상이지 내가 그것을 충족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의 리더는 ‘어떠해야 하나’라고 항상 생각했고 그 모습에 부합하려고 조금 노력했을 뿐이다. 다음 시즌에 이어질 <넓고 얕은 지식을 위한 독서모임>에는 다른 리더상이 필요하다. 그때는 독서모임 리더로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궁금하다.

이전 04화 3. 나는 나한테서 배울 것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