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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괴로움 꺼내보기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

by 김둥둥


매주 목요일은 상담이 있는 날이다.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되어 버렸다. 힘들었던 일만 질문을 받으니 마음이 지칠 법도 한데 덤덤히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내가 대견스럽다고나 할까.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먼저 묻고 싶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보셨는데 딱히 없어서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선생님은 지난 시간에 말했던 나의 고민을 요약했다.


"성향이 다른 사람과 잘 맞춰가는 것이 어렵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어렵고 힘들다.'라고 말했는데 맞지요?"

"네 맞아요."

"이별하고 나서 어떤 감정이 힘든가요?”

"음.. 제 곁에 아무도 없다는 공허함이나 외로운 감정이 밀려오는 게 힘든 것 같아요."

그럼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견디는 게 힘들겠네요.”

...

"그렇다면 오늘은 심리 검사지를 바탕으로 질문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 볼게요."


접수 상담을 하기 전에 나는 SCT(문장 완성검사)와 500문항이 넘는 심리 검사지 MMPI(다면적 인성검사)를 했었다. 그 검사를 토대로 선생님은 나에게 문장 완성검사에서 만들었던 문장을 읽어주시며 어떤 마음으로 그 글을 완성했는지 질문했다.


나는 '여자들은'이라는 말 뒤에 힘든 일이 꽤 많은 것 같다.라고 문장을 완성시켰었다. 그 문장을 완성했을 때 생각났던 건 우리 엄마의 고충이었다. 내 기억 속에 엄마는 아빠와 자주, 오랜 기간 싸웠었다. 한 번은 아빠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방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칼을 휘두르진 않았지만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엄마는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그날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싸움을 말리던 나와 오빠는 아빠에게 맞았다. 압력밥솥이나 냄비를 내던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엄마는 아빠와 지내면서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도 힘들게 살아오셨다. 아빠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퀵서비스 일을 했었는데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교통사고도 자주 났었던 터라 집안 상황은 항상 어려웠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지하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 같다. 안정적이지 못한 가정의 수입과 아빠의 폭력성. 나는 아빠가 조금만 더 온화한 성격을 가지고 가족을 잘 이끌어 나가기를 원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포근하게 작용하기를 바랐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 외에도 '우리 가족은' 다음에 문장을 만들었는데 그 문장 속에 '무관심'이라는 단어가 들어갔고, 다른 문장에도 '무관심'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했다. 나는 문장 완성검사에서 뭐라고 썼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무관심'이라는 단어를 내가 왜 그렇게 적었을까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에게 관심을 많이 못 받고 지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돈에 허덕이며 불평과 불만 속에서 자라왔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도 돈 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거나 "몸이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일에 찌들어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종종 내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책임지고 양육할 수 없다면 나를 뭣하러 낳았을까'라는 한탄도 혼자 했었다. 부모님에게 관심을 받기엔 너무 가난했다.


선생님은 좋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관심 기울이기라고 말했다. 애정을 주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실제 내가 느끼는 애정과 관심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식물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시들어버리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애정과 관심이 필요해요. 그런 걸 바라고 느끼는 게 정말로 당연해요."라고 말하며 또 한 번 나의 과거, 어린 내가 느꼈던 감정이 너무나 당연했다는 것을 환기시켜 주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나는 왜 항상 옆에 누가 있기를 바라 왔는지 전보다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1학년 때 전학+이사를 갔을 때 새로운 동네 친구들과 언니들에게 휘둘려 다녔던 이야기도 했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쭉 말하려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많았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나 아픈 기억이 많은가?' 이런 생각이 든다고 선생님에게 말했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과거에 힘들었던 일들만 제가 질문하고 그걸 대답하려니까 힘든 마음이 들죠?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해야 해요.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의 진주 씨를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 봐야죠."


정곡을 찌르는 선생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선생님 말이 맞다. 외면하려고 했던 일들이 너무 많았고, 그것들을 내 마음에서 놓아주지 못했을지 모른다. 상담이 끝나갈 때쯤엔 어린 시절의 내가 온전히 위로받고 치유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까.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 상담을 받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어서 다음 상담 시간이 왔으면 하는 기쁜 마음도 든다. 이 정도면 아주 잘하고 있다. 아주 잘 지내고 있다.




Ps. 요즘 저는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상담을 받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습니다. 한 발 한 발 이렇게 내딛다 보면 언젠가는 과거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오롯이 저의 존재 자체만으로 빛난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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