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네 번째 시간
어제는 14년 지기 친구 둘을 만났다. 코로나 상황이라 어딜 가지는 못 하니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술을 곁들여 얘기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새벽 4시가 되어 있었다. 오늘 오전에 있는 상담을 깜빡하고 잠이 들었다. 정말 다행히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상담 시간이 기억났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zoom을 열었다. 선생님과 인사하고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 초기만 하더라도 나는 한창 드라마에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질 못 했었다. 아마 이별 후 많은 감정이 몰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면 그런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지내게 되지만 이런 코로나 시대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영화나 드라마를 더 찾게 되었다. 힘들 때 가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라마를 보았다. 감정을 덮어둘 무언가가 있으면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게임이나 술에 중독되는 것처럼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빠지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에 자주 글을 쓴다. 다른 할 일을 찾고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애초에 시작을 안 하면 다음 회차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으니! 그렇게 지금은 넷플릭스에 가득한 드라마 목록을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브런치에 어떤 내용을 주로 쓰는지 물었다. 나는 보통 상담한 내용이나, 사람들에게 들은 감명 깊은 이야기에 대해 느낀 점을 적거나, 슬픔의 감정과 위로의 글을 적는다고 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글을 브런치와 인스타 개인 계정에 많이 적는다. 나는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생각나는 것들을 외면하려고 했다. 이젠 받아들이고 기억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다. 선생님은 내 말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정기간 그리움, 미움, 원망 등을 충분히 느껴야 해요. 애도를 충분히 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게 충분히 애도하지 않으면 남아있는 감정들이 내팽개쳐지게 되고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는 거죠. 그래서 마음 정리를 하는 것이 필요해요. 오늘은 마음을 해소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테니 한번 해볼까요?"
선생님은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감정을 하나씩 이야기하고 설명해달라고 했다.
첫 번째 감정 : 원망
아버지에 대해 처음 생각나는 감정으로 원망을 꼽았다. 살아계실 때 책임감이 없으셨던 것, 무기력하고 경제력이 없었던 것,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가족 모두를 꼭 손찌검하셨던 것 그리고 오빠의 앞길을 막았던 것. 내게 늘 존재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다양한 기억들을 소환시켰다. 특히 이 중에서 오빠 이야기를 할 때 눈물이 쏟아졌다. 오빠는 줄곧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청춘을 보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을 하셨었는데 그때도 오빠는 홀로 지내는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묵묵하게 해왔다.
인연을 끊어버릴 법도 했을 텐데 오빠는 아들이라는 책임감을 안고 정말 담담히 지내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늘 아빠가 무거운 짐 같은 존재라 여겨졌었다. 그래서 살아생전에도, 생을 마감한 이후인 지금까지도 이 원망의 감정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렇게 원망의 감정을 낱낱이 살펴보고 선생님에게 공감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돌아가고 나서야 오빠는 제대로 연애를 하고 얼굴빛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전보다 훨씬 화목해졌다. 아버지에겐 참 죄송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지워질 수도 없는 감정이다. 말하는 내내 좀 힘들었다. 선생님은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충분히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힘드니 원망의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했다.
두 번째 감정: 안쓰러움
아버지는 장남이고 여동생이 6명이나 있었다. 즉 내게는 고모가 여섯 명이나 있다. 할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큰 책임감이 없으셨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렇게 식구가 많은데, 할머니와 아버지가 돈을 벌으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부터 일을 했고, 일 해서 번 돈을 가져다 할아버지에게 모두 드렸다고 했다. 돈을 벌어야 했으니 아버지는 학교도 번듯하게 다니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이 반복되다 결국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혼자 집을 나오게 되었고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한때 열심히 사셨다. 공장에서 나쁘지 않은 봉급을 받고 계셨지만 IMF 외한 위기가 터지면서 직장을 잃었다. 그렇게 뛰어든 직업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배달 일이었다. 나는 퀵서비스라는 직업을 정말 싫어한다. 뭐든 빨리 배달이 오는 게 싫다. 빠르게 가면 갈수록 사고가 날 위험이 증가하고 실제로 아버지의 친구 한 분은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도 다른 일을 알아보시라고 잔소리를 해대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그 일을 고집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선생님은 아버지가 가족들에게서 심리적인 보상을 많이 받지 못하셨을 거라 말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가족을 위해 노력하면 뭐해.' 이런 감정이 많이 들었을 거고 가정을 꾸려서도 무언가 의지를 가질 수 없는 무력감을 많이 가지셨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원망과 안쓰러움이 겹쳐져 기분이 이상했다. 아버지 인생에 행복이 있었다면 과연 무엇이었을까..
세 번째 감정 : 그리움과 미안함
어머니보다는 아버지가 애정 표현을 좀 더 잘하셨다. 아버지는 술 먹고 들어 온 날 까칠한 수염을 내 볼에 비비고 예뻐해 주셨었다. 그 기억이 조금 있어서 그런지 아버지가 그리울 때는 그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미안한 감정이 든다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더 많이 얼굴을 보러 찾아갔어야 했는데 자주 들리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말만 하면 대들고, 짜증 냈던 기억도 떠올랐다. 병원 검사비 때문에 큰 병원에 가는 일을 미뤘을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큰 수술은 없었을 것이고 생명에 지장이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선생님은 얘기를 다 듣고 난 뒤 이렇게 중요하거나 큰 일에는 여러 가지 큰 감정을 느낀다고, 그런 감정 하나하나를 중심으로 감정 정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다 마지막엔 선생님께서 내가 했던 말을 요약해서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해주셨다. 그 말을 듣는 내내 눈물이 정말 왈칵 쏟아졌다. 그러다 역할을 바꿔서 선생님이 아버지 역할, 나는 내가 되어 또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왠지 다 괜찮다고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고 할 것 같아요. 미안해하지 말라고도 할 것 같아요."
이 말을 내뱉으면서 뭔가 조금은 내 감정이 용서받는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정확하게 형언할 수 없지만 정말로 아버지가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신다면 그럴 것만 같았다.
저녁 즈음에는 아버지가 자주 다니시던 동네를 걸었다. 살 것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갔는데, 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빠의 모습을 기억하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흘러넘치는 마음을 주워 담지 않고 넘치는 데로 놔두고 지켜보았다. 생각이 나면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말자. 생각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놔두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자. 선생님은 오프라 윈프리의 일기를 이야기했다. 오프라 윈프리가 힘들고 절망스러운 감정에 대한 일기를 꾸준히 쓰며 성장해왔다는 이야기였다. 내게도 지금 이런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글을 꾸준히 쓰면서 감정을 해소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날그날 느낀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감정 정리에 많은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