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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르게이 Nov 29. 2017

왜 의미를 찾을까?

세르게이 연재 일기_산티아고

<Terradillos Templatios>

D+9 134.3 km / 200,421 SETPs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어제 기타에 대한 회의감에 이어, 걷는 행위 대한 의문까지 들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의미를 상실했다. 난 왜 이 길을 걷고 있는 걸까? 다 걷고 두 달이 지나면? 시간이 다 흐르면 알게 될까? 먹는 것도 걷는 것도 오늘은 시작부터 참 귀찮다. 모두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걷고 있을까?


걸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10km를 가는 것과 20km를 가는 것 사이에 다른 점은 무엇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을 이동해서 새로운 곳을 가는 것과 세 시간을 이동해서 새로운 곳을 가는 것에 차이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저 멀리 가냐 적게 가냐의 차이일 뿐.


그저 하루에 한 마을만 이동하면 매일 새로운 곳에 갈 수 있다. 결국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마침 작은 카페가 저돌적으로 유혹해왔다. 슬쩍 보기에 마당엔 온통 화분으로 가득하고,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비추었고, 들어가는 길은 마치 작은 동산에 입동 하는 것 같았다. 카페는 알베르게를 겸하는 곳이었고, 눈치를 덜 보면서 구석 벤치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카페에 한국인 2명이 들어와 합석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목걸이와 팔찌로 그리고 뜻하지 않게 목걸이와 팔찌를 팔았다.


지난 5끼를 빵과 잼, 햄 조 가르만 먹어서 점점 질려가던 차였다. 빵이 질릴 대로 질려 배고플 때만 억지로 입에 구겨 넣어야 먹을 수 있었다. 액세서리를 판 돈으로 생선구이와 샐러드를 시켰다.


6.5유로를 내는 오른손이 잠시 갈팡질팡 하며 생각했다. 앞으로 눈앞에 펼쳐질 식사가 6.5유로 이상의 가치를 할지에 대한 기대와 불안에 긴장했다. 한 끼 식사 치고는 좀 비싸긴 하지만 가끔씩 단백질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이런 식사가 필요하긴 하다.


바게트 빵 조각과 올리브 오일, 발사믹, 후추, 소금이 놓였다. 바게트에 발사믹과 올리브를 부어 한입 베어 물며, 식사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곳에 앉은 모든 사람들은 산티아고라는 모두 같은 목적지를 가지고 걷고 있다. 모두가 가진 속도와 방법은 다르지만, 가는 방향은 모두 같다. 그래서 서로 알 수 없는 동질감과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같는다.


우리는 눈빛만 마주쳐도 서로 웃음을 보이고 밝게 인사를 나눈다. 인종 차별도 없고, 서로 미워하지도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도둑질도 질투도, 경쟁도 없다.


얼굴 반쪽 만한 도자기 주전자 하나와 생선과 샐러드가 올려진 접시가 나왔다. 도자기 주전자는 수재 주전자인걸 티 내듯이 살짝 삐뚤게 만들어진 후 맨들맨들한 무엇인가로 두껍게 코팅되어 있다. 그립감이 괜찮았다.

 

주전자에 담긴 레드 와인은 아마도 홈메이드 와인인 것 같았다. 밥보다 와인이 반가워 와인을 먼저 한잔 따라 마셨다. 마시기 전 향은 진하지 않았지만, 떫은맛은 약하고, 특유의 향이 입속을 채웠다. 식전에 입속에 얇은 코팅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생선은 프라이팬에 살짝 두른 기름에 겉은 자글자글 튀겨지고 속은 부드럽게 익었다. 레몬즙을 곁들인 생선이 입 속에서 살살 녹았다. 샐러드는 오이와 양배추, 그린 콩과 함께 나왔는데, 후추/소금과 발사믹 소스, 올리브유를 곁들였다.


생선과 샐러드, 레드와인의 조합이 완벽을 이뤘다. 나는 접시를 완벽히 비우고 와인까지 전부 마셨다.


와인 한 병을 다 마셨더니 졸음이 왔다. 시간은 어둡기 전 오후 5시 마을 구석진 곳을 찾아 텐트를 쳤다. 보통은 저녁 늦게 마을이 어둑해지면 집을 짓는 게 일반적인데, 오늘은 졸리기도 하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무런 생각 없이 텐트를 치고 들어 누웠다.

'우리의 삶도 산티아고와 닮지 않았나’란 생각이 떠오른다. 100년 한평생을 살며, 결국엔 모두 행복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모두의 방법도 속도도 다르다. 누구는 행복하기 위해 성공을 쫓고, 사랑을 쫓고, 돈을 쫓아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앞서고 뒤쳐지기를 반복한다.


산티아고와 삶이 다른 점은 그 점이다. 삶이 산티아고와 같다면 세상이 지나치게 아름다울 것 같다.


내일이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내일도 걷는 것, 예쁜 풍경이나 길, 일출과 일몰, 하늘이 주는 감동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다가온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 길 위에 있는 것 만으로 갑작스레 다가오는 행운에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기분 좋은 만남이 기대되기도 한다.

오늘 가리비 캐리. 세르게이 먹여 살림.

쓴 사람_권세욱_ facebook.com/kwon.sewook

오타 찾음_강보혜_@b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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