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5
어머님은 나에게 카드를 쥐어 주셨고
“언이가 진정 되면 다시 연락할게. 지금은 얘가 하자는 대로 하자. 안 그럼 정말 너도 그렇고 언이도 어떻게 될지 몰라!”
어머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난 그렇게 외출했던 복장 그대로 W호텔로 향했고
『“띠링!”』
갑자기 도착한 어머님의 문자.
『“아가! 언이가 어디서 이상한 얘길 들은 모양이야. 우선 진정 시키고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호텔에 있어라! 카드로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쇼핑도 좀 하고! 며칠 푹 쉬다와! 응? 마사지도 좀 받고! 내가 얘기는 다 해놨으니까.”』
‘어머님.....’
어머님의 이런 다정스런 성격을 그가 조금이라도 닮았다면 나한테 이러진 않았겠지? 난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리며 W호텔로 향했다.
**
‘이게...네 사진이라고?’
『“내꺼야!! 내 사진이야!! 4살생일 때 찍은 거야!! 됐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 소녀는....이미 죽었는데.....’
‘어린왕자’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리기 전 전국 공연이 시작됐던 건 부산에서였다.
어린왕자의 첫 콘서트엔 무수한 팬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고
『“소리 질러!!!!!”』
『“와악!!!!!!!!!!!!!”』
2만 관중은 어린왕자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날 떠나지마!!! 후횐 없을 꺼야!!!”』
『“꺄아!!!!!!!”』
『“프린스 오빠!!!!!”』
13년 전, 대한민국 소녀 팬들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국민 아이돌 밴드 ‘어린왕자’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던 건 리더이자 보컬이었던 ‘프린스’, 고언이었다.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워우 워!!!!”』
『“꺄악!!!!!!!!”』
19살에 완성된 187cm의 큰 키와 10등신 몸매, 우월한 기럭지.
여리여리한 얼굴선, 쌍꺼풀 없이 매력적인 큰 눈. 웃을 때마다 들어가는 보조개.
하얀 피부와 언제나 붉게 빛나던 입술, 오똑한 코. 자타공인 꽃미남 보컬로 알려지면서
그의 손짓 하나에도 소녀 팬들은 열광했다.
『“바로 너에게!!! 예!!!!!”』
『“꺄아!!!!!!!!”』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가 큰 히트를 치면서 음악성을 인정받았고, 노래 실력도 빠지지 않는 최고의 아이돌이었다.
노래, 음악, 연주 . 무엇 하나 빠지지 않던 그는 연기 실력까지 선보이면서 여학생들과 젊은 여대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오빠!!! 꺄악!!!!!!”』
그렇게 팬들의 큰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매번 콘서트가 끝날 때면 항상 악수회를 열었다.
소수의 팬들만 추첨식으로 뽑아 일일이 악수를 해주고, 포옹을 해주는 식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부산 콘서트에서도 어김없이 악수회가 열렸고,
『“꺄!!!! 프린스 오빠!!!!!”』
『“사랑해요!!!! 꺄악!!!!!”』
한 번 안으면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팬들과 달리
『“오빠!!! 이거....”』
고언에게 멀찌기 떨어져 수줍게 선물 상자를 건넸던 한 소녀.
상자 안에는
“이건 뭐지?”
작은 유리구슬 몇 개와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건!!!!!”
‘내가 어릴 때 갖고 놀던 유리구슬이잖아!’
또렷이 기억나는 아버지의 선물.
매번 중국 출장을 다녀오셨던 아버지는 아들이 좋아하던 구슬을 선물하기 위해
유리 세공사에게 특별 주문을 넣어 독특한 디자인의 구슬을 가져오셨다.
구슬 안에 비치는 또렷한 초승달 무늬, 그리고 별, 눈, 꽃, 하트, 새......
“이거....진짜네!!! 내가 갖고 있던 거잖아!!”
그리고 손편지에는 4살 여자아이의 사진과 함께
‘오빠! 어릴 적 반포아파트 놀이터 기억나요? 난 4살, 오빠는 7살. 오빤 그때 사립유치원 다녀서 원복에 이름 써져 있던 거 기억해요.’
‘고언!! 오빠가 놀이터에서 왕따 당하고 있을 때...나랑 같이 소꿉장난하고, 구슬주고 갔던 거. 난 다 기억나는 데!!! 어쩌면!! 제 사진 보면 기억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같이 넣었어요!’
'오빠의 로즈마리가.'
“그랬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사진을 보자마자
“아!!! 이 아이가 그 소녀였어?”
절대 잊을 수 없는 비주얼.
왕 리본을 맨 파마머리에 눈엔 초록색 아이새도우를 잔뜩 바르고 빨간 한복 치마와 색동저고리를 입은 꼬마는
소꿉장난을 하자고 졸라댔다.
‘기억났어! 그 아이!’
그날은 하필이면 ‘언’의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다른 여자를 집에 들였고, 7살 유치원생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이었다.
그래서 어린 ‘언’은 평소 가장 소중히 여겼던 구슬 몇 개를 가지고 나와 정신없이 걸었고, 낯선 동네, 낯선 장소.
아이들이 모여 있는 다른 동네 놀이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유리구슬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 내 신랑 할래?”』
『‘뭐야? 이 특이한 여자애는? 눈은 또 왜 저런 거야?’』
자신보다 2~3살 쯤 어리게 보이던 여자애가 와서
『“오빠! 이거 마시면 나랑 결혼 하는 거다!”』
장난감 커피잔에 모래와 물을 잔뜩 섞어 와서는 커피라고 하며 고언의 입에 밀어 넣었다.
『“에잇!!! 드러 워!!! 치우지 못해!! 난 이런 거 안 마신다고!!!”』
『“타앗!!!”』
『“으앙!!!!!!!!!!!”』
커피잔을 내팽겨 치자마자 여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으아!!!!!!!!!!!!!!!!”』
커져가던 울음소리에
『“미.....미안해!!! 내가 선물 줄테니까 울지마!!! 응?”』
『“흐윽.....뭔데?”』
여자 아이는 반짝 거리는 유리구슬을 보자마자 신기해했고
『“그럼 우리 결혼하는 거다!”』
『“응? 으응....”』
어린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신혼살림을 차려버렸다.
『“여보!! 아!!!!”』
『“아함!!! 맛있다!!!”』
모래알로 쿠키도 굽고, 밥도 지으면서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고
『“도련님!!! 도련님!!! 여기 계시면 어떻해요!!!”』
『“싫어!!! 나 안 갈꺼야!!!”』
『“지금 회장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어요!!! 빨리 들어가셔야 해요!!!”』
『“싫어!!! 안 간다고!!!!!”』
언을 돌보던 보모와 운전기사는 언을 들쳐 엎고 차에다 밀어 넣었고
『“싫어!!!! 나 안 갈꺼야!! 안 갈꺼라고!!!!”』
『“흐앙!!!! 여보 어디가!!!! 으아!!!!!!”』
어린 여자 아이를 달래 줄 세도 없이 차는 출발해 버렸다.
“큭.....그게....너였어?”
초록색 아이새도우가 눈물과 범벅이 된 채 모래밥을 지어주던 귀여운 여자 아이.
“로즈마리? 보고 싶다....한 번 더....”
그렇게 다시 시작된 인연은
‘어디 있지? 대전 콘서트엔 온다고 했는데?’
콘서트장 맨 앞줄, 가장 가운데 자리
‘저깄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던 소녀만 보면 어렸을 적 그 여자아이가 생각나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꺄아!!!!!”』
『“오빠가 날 보고 웃었어!!!”』
『“아냐!!! 날 보고 웃은 거야!!!!”』
전광판에 비치는 자신의 미소는 그 소녀를 향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꺄아!!!!”』
“이번엔 구슬 던질테니까!! 잘 받어!!!”
『“꺄아!!!!”』
『“히얏!!!!!!”』
“던졌는데!!! 잘 받았어?”
그가 던진 유리구슬은 매번 맨 앞줄, 가운데 자리로 정확하게 떨어졌다.
“이번엔....내가 얼마 전에 작사 작곡한 노래 들려줄게. 제목은 '유리구슬'이야.”
그 소녀를 위해 작사, 작곡한 노래.
『“귀여운 나의 작은 소녀~!! 난 어린 소년. 우리가 놀던 그 놀이터 기억해~? 힘들 땐 나에게 기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유리구슬 속에~ 네 얼굴이 보여~!!”』
누가 들어도 그 소녀를 위한 노래였다.
소녀는 설사 구슬이 멀리 떨어져도. 그의 미소가 수만 명을 위한 것이래도 행복했다.
모두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꺄아!!!! 프린스 오빠!!!!”』
『“까악!!!!!”』
마지막 콘서트 3일 전, 광주 콘서트에서 열린 악수회.
‘어딨지? 오늘은 오는 건가?’
자신도 모르게 긴 줄에서 그 소녀를 찾고 있었고
『“오빠!”』
‘찾았다!’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소녀의 미소는 유리구슬처럼 반짝거렸다.
“와 줘서 고마워.”
‘보고 싶었어!’
다른 팬들도 보고 있던 자리.
보고 싶단 말은 차마 하지 못한 체 그 소녀를 더욱 꼭 껴안아 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꽈악 잡은 손. 그 손을 놓지 않고 묻고 싶었다.
이름은 뭔지, 사는 곳은 어딘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 놀이터 근처에 아직도 살고 있는지.
하지만
『“아!! 빨리 빨리!!!”』
『“앞에 서 있는 여자애 누군데!!!”』
『“경호원들 뭐하는 거야!!!”』
악수가 조금만 지체 되도 팬들이 술렁거렸고
『“다음 콘서트에서 봐요!”』
“어? 어!!”
그때
‘갑자기 왜 이러지?’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설레기 시작했다.
‘두근거려. 처음이야 이런 기분.’
아무도 모르게 시작된 설레임. 그건 고언의 첫사랑이었다.
**
“근데...그게.....서연두....너였다고?”
‘말도 안 돼!!!!!’
게다가
‘그 소녀는 죽었어!!!!!! 이미!! 13년 전에!!!!!’
무대에 깔려 피투성이가 된 체 실려 나가던 소녀의 모습.
‘난 아직도 이렇게 생생히 기억나는데....’
넌 왜.....날 모르는 거니....
설사 서연두가 그 소녀라 하더라도 자신을 기억 못 할리 없었다.
『“틱!! 틱!”』
“여보세요! 어! 김변! 부탁할 일이 있어서.”
“무슨?”
“사람 좀 알아봐줘...13년 전, 2007년 4월 13일! 올림픽공원 근처 대형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던 16살 소녀. 작은 병원이라도 좋아.”
“환자 입퇴원 기록은 개인정보라, 다른 사람에게는 공개가 안 돼요! 가족이 아닌 이상 힘들 겁니다.”
“내가 그 사람 남편이야.”
“네?”
“서연두, 91년 5월 8일 생. 그날 의료기록 싹 다 뒤져서라도 알아봐줘. 중요한 일이니까.”
‘넌 왜....날 기억 못하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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