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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요리부부 25화

함께 걸을 수 있는 행복

남편이 발가락을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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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남편이 계단을 내려가다 발목을 삐끗했다. 상당히 많이 부어서 심하게 접찔린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상태가 심각했다. 주말동안 참다가 월요일이 되자마자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며 진단서를 써줬다.


큰 병원에선 발가락 뼈가 뿌러졌다며 나사를 박아 고정시켜야한다고 했다. 이게 왠일! 수술, 입원, 그리고 나사...하반신 마취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것도 가져온 것이 없는데. 입원이라니!'


아침이 되자마자 덜렁덜렁 손가방과 핸드폰만 챙겨가지고 왔는데 핸드폰도 충전상태가 딸랑딸랑했다. 남편은 19%, 나는 44%. 핸드폰 충전기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프지 않다는 남편에 말에 이렇게 심각한 상태인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곧바로 입원 수속을 밟았고, 남편은 병실에서 환자복을 갈아 입고 수술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수술시간을 알려준다고 했는데. 전화 안내를 받았던 남편의 핸드폰은 밧데리가 18%로 떨어져 있었다. 앞 사람의 수술시간이 지체되고 있어서 제발 밧데리가 떨어지기 전에 연락이 왔으면 했다.


처음에 안내받았던 시간보다 2시간 정도 후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간 사이 나는 주변 다이소에서 핸드폰 충전기와 간단히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서 병실로 옮겨다놨다.


환경이 열악한 병원이라 엘레베이터 한번 타기가 너무 힘들었다. 의료인, 카트를 끄는 간호사, 환자들의 식사카트, 환자와 보호자들이 서로 엉켜서 좁은 엘레베이터 안으로 몸을 꼬깃꼬깃 집어 넣었다. 엘레베이터를 타려면 몇 번은 그냥보내고 한참을 더 기다려야했다.


'차라리 계단으로 오르내리고 말지.'


7층 입원실부터 1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리길 반복하면서 급한 물건들은 주변에서 사다 날랐다. 다행히도 근처에 다이소가 있어서 핸드폰 충전기와 수저, 젓가락, 물컵 같은 급한 용품들은 구매할 수 있었다. 처음엔 충전기 본체를 잘 못 사가지고 와서 다이소에 두번 갔다와야했다.


남편의 수술이 끝나기 전에 모든 걸 마쳐놓고 수술실에서 나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시간이라는 수술시간은 30초처럼 흘러갔다. 너무 힘들었다. 갑작스런 남편의 수술로 너무 놀랐고, 정신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구글평점 2.4의 병원 속에서 내가 마음편히 이용했던 건 계단뿐이 없었다. 너무 오르락 내리락해서 그런가 아니면 마음이 너무 놀래서 그런가 다리가 후덜덜 떨려왔다. 한시간쯤의 비교적 짧은 수술시간을 마치고 남편이 병실로 돌아왔다.


"당신 아프지 않았어?"

"아니. 그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감각이 무딘걸까? 아니면 정말 아프지 않았던 걸까? 남편은 내가 놀랄까봐 그런지 굉장히 무덤덤한 자세로 일관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남편은 아직 마취가 덜 풀렸는지 영혼이 탈출한 얼굴로 멍을 때리고 있었다.


'내가 이런데 수술을 직접 받은 본인은 오죽 놀라지 않았을까?'


수술 후 곤히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짐을 챙기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과 병원은 택시로 10분,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다.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도 계속 다리가 후들거렸다. 집에서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남편에게 가져갈 물건들을 하나씩 챙겼다.


하루 입원하고 수술받으면 다음날 오후에 퇴원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집안일을 해놔야 깔끔한 상태로 환자를 집에 들있 수 있다. 청소를 하고, 이불 빨래를 하고, 집에서도 쉬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시댁에선 남편이 더 입원하길 원하셨지만 나는 그 형편 없는 병원에 남편을 계속 두고 싶진 않았다.


집안일을 마치니 밤 9시 정도가 되었다. 땀으로 젖은 몸을 씻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은 수술이 늦게 끝나서 당연히 저녁식사도 밤 11시에 했다. 반찬이 짜다는 남편은 밥을 제대로 먹지 못 했다. 수술을 마치고 먹는 첫 끼니인데. 그리고 수술 전에는 금식이라 아침에 집에서 먹고 나간 커피 한 잔이 끼니의 전부였다. 그런데도 밥을 잘 먹지 못 했다. 내 마음이 다 헛헛했다.


"내일 아침은 내가 죽 싸가지고 올게."


걱정스럽고 우려스러운 마음으로 남편이 수술 받은 하루를 꼬박 뜬눈으로 지샜다. 집에 와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잠이 오지 않았다. 2시간 쯤 자고 새벽에 깨서 남편의 죽을 만들고 도시락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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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불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나마 시댁에서 주신 목살이 조금 있어서 남편 혼자 먹을 분량만 조금 볶았다. 뭐든 잘 먹고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입원 이틀째, 아침 7시 30분까지 죽을 갖다 주러 갔는데. 남편은 이미 병원밥을 잡숫고 계셨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허겁지겁. 아침밥은 맛이 괜찮았나보다. 허탈한 마음에 내가 싼 도시락을 아래로 내려놨다.


새벽 2시에 불고기를 볶고, 5시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쌌다.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흰죽도 쑤고 집에서 만든 정성스런 도시락을 먹이고 싶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집에서 잠이나 더 잘걸.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고 잠든 것을 본 다음 도시락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퇴원시간은 오후 1시. 그때 또 병원으로 가야했다. 2일 입원하는 동안 집과 병원을 총 4번이나 왕복했다. 열악한 병원이 불안해서, 남편이 걱정되서. 어차피 집에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병실에 가서라도 얼굴을 봐야했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남편이 퇴원하고 나서는 몸살이 다 났다. 집에서도 남편은 목발을 사용해 움직인다. 반깁스를 하고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선생님의 당부가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옆에서 거들어 줘야한다. 조금만 잘 못 움직이면 나사가 제 위치를 벗어나서 재수술을 해야한다.


병수발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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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투표 어떻게 하지?"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제일 걱정한 것은 '사전투표'였다. 제길...자기 마누라 고생한 것보다 사전투표를 먼저 걱정하다니! 다리만 안 다쳤다면 둘이서 손 붙잡고 사전투표소를 찾아 투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 혼자 나가서...사전투표를 하고 왔다. (남편! 약오르지롱~ㅋㅋ)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당당히 떼버리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투표를 하고 왔다. 나 대신 사전투표부터 생각한 남편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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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한 분들은 사전투표가 진짜 힘들겠다.'


사전투표소가 대부분 동사무소 2층이라 목발을 짚고 올라가기엔 버거워보였다. 몸이 불편하신 다름 분들도 마찬가지겠지? 열의와 성의를 다해 신성한 한표를 행사하고 싶지만 문턱이 너무 높아보였다.


나는 직원분에게 남편이 사전투표를 할 수 있는지 문의를 드렸다.


"혹시 엘레베이터가 있나요?"


직원분이 당황하시면서 자세한 경위를 물으셨다. 다리를 다친 남편의 상황을 이야기하자 1층에 간이 투표소를 설치해주시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전화통화에서 일을 번잡스럽게 만들지 말라며 6.3 본투표를 하겠다고 했다.


친절히 상황을 응대해주신 직원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남편이 발을 다치고 나서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됐다.


두번째 날부터 남편을 많이 원망했다. 반깁스는 4~5주정도 뼈가 완전히 붙을 때까지 하고 있어야 한다. 그동안 나는 수발을 들어야하고, 집안에서도 따라다녀야한다. 그가 다침으로 인해서 요리학원 등록과 여러 계획들이 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상반기 계획들이 뒤로 점점 미뤄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공원을 산책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고, 등산도 하고.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의 귀중함. 서로의 옆을 든든히 지켜줄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느리게 걷지만 함께 가는 마음이 중요한 건 남편이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겠지? 내가 걸어온 길과 내가 걸어갈 길을 조금이라도 나눈다는 마음으로. 길을 닦아 놓겠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같이 걸어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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