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른다와 썬다의 차이
나는 의외로 똥손이다. 손이 느리고 무뚝뚝하다. 요리는 빠르면서 부드러운 칼질이 생명인데 나는 그렇지 못 하다.
주방에서의 칼질은 도마에 칼이 수평으로 내려앉으며 식재료를 밀어내듯 썰어야한다. 자른다와 썬다의 차이가 방향성에 있다는 건 도마 위에서 더 잘 느껴진다. 식재료와 호흡을 맞춰 미끄러지 듯 밀어내면서 썰어야 한다.
만약 수직으로 내리꽂으면 힘만 들어가지 식재료가 잘 썰리지 않는다. 당연히 손목에 무리가 가고 부상의 위험도 따른다.
예리하면서 딱딱한 칼날도 금방 상하거나 이가 나갈 수 있다. 그 충격을 받는 도마도 오래 견디지 못 한다. 어느 한구석이 움푹 패이거나 평평하지 못 하게 된다. 칼질을 할 땐 내 손 안에 들어온 모든 것들이 나로 인해 하나가 되면서 리듬을 타 듯 부드럽게 썰려야한다.
칼을 잡은 손, 그리고 식재료의 너비를 가늠하며 차가운 칼날과 맛닿는 왼손은 칼날을 통해 체온으로 이어진다. 칼로 써는 힘과 식재료를 지탱하고 있는 도마가 받쳐주는 힘, 이 모든 것들이 몸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한다.
도마와 식재료, 칼로 이어지는 하나의 호흡. 그 순간 나는 써는 칼질을 하고 있다.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졌다는 느낌. 비로소 ‘자른다’라는 의식을 하지 않고도 무의식적으로 ‘썬다’라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쓰윽쓰윽. 부드럽게 밀어내는 칼질은 의외로 소리가 크지 않다. 단칼에 누군가의 목을 베듯 망나니처럼 당근, 무, 고구마를 수직방향으로 자른다면 내 손과 칼, 도마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식재료들도 예쁘고 정성스럽게 썰리지 않는다.
모든 걸 잘라버리겠다는 영혼 없는 칼질. 도마 위의 모든 것들을 죄다 잘라버리겠다고 나선다면 채소들을 진짜로 죽여버리는 것이다. 오히려 도마 위 식재료들은 잘라야하는 물체가 아닌 요리 시작과 동시에 손끝으로 심혈을 기울여야하는 자연의 귀한 작품들이다.
‘썬다’라는 행위는 요리로 통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식재료를 다듬고, 써는 것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야한다.
귀찮은 듯이 진정성 없는 칼질은 힘의 쓰임에서부터 티가 난다. 빨리 자르고 요리를 빨리 끝내려는 마음은 처음부터 칼 끝에 녹아있다. 이제는 그런 마음가짐들이 고스란히 칼질에서 느껴진다.
요리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내가 칼질에서 배웠던 건 시작부터 다른 마음가짐이다.
귀한 생명들이 자라나 이것으로 누군가 먹고 살 수 있는 한그릇의 요리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것. 기계적으로 재료들을 자르고 무미건조하게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칼질부터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마음을 고쳐먹고 재료를 자른다는 대신 정성으로 썰어 내는 칼질을 시작한다. 요리는 더 세밀해지고 무의식적으로 리듬은 즐거워진다. 즐거움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 그런 마음들이 냉장고 안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