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요리'는 내가 못 하는 음식 중에 하나다. 그렇게 된 이유를 따지자면 그닥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전을 싫어하는 이유는 당연히 칼로리도 높지만 기름을 이용하는 번거로운 조리과정에 있다.
시작도 하기 전, 적절히 맞춰야하는 반죽 농도와 재료 손질과정이 너무 번거롭다. 그리고 먹고 난 뒤에는 집안 여기저기에 배인 기름냄새와 미끌미끌한 기름의 흔적은 어찌할 것인가? 전의 느끼하고 기름진 맛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기억 속에 간직한 요리
어릴 때 친정집에선 전을 자주 해먹진 않았다. 기껏해야 오늘 같이 비오는 날 아니면 명절 뿐? 비오는 날도 너무 춥거나 너무 덥지 않고 딱 오늘 같은 날씨여야만했다. 어머니가 기름 앞에서 고생하시지 않도록.
친정어머니는 전 같은 기름진 음식보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의 음식을 많이 내주셨다. 시원한 오이냉국, 시금치나물, 생선요리, 콩자반을 많이 내주셨다.
잡곡밥에 소고기뭇국, 김치와 반찬 두어 종류. 우리집은 항상 국이나 찌개가 빠지지 않아서 도시락에도 꼭 국물을 싸주셨다. 그 입맛은 어딜 가지 않는다.
시댁의 전파티
하지만 우리 시댁은 달랐다. 어머님, 아버님, 남편 모두 너나할 거 100% 전을 좋아한다. 결혼을 하고 시댁에서 명절을 처음 보낼 때 기겁해서 놀란 적이 있다. 바로 시댁의 전부치는 스케일 때문이다.
여느 전통시장의 전집처럼 커다란 채반을 여러게 가져다 놓고 열심히 전을 부치던 형님의 모습. 남편까지 가세해서 이건 뭐 1미터가 넘는 채반 4개가 주르륵 금세 채워져갔다. 오마이갓! 이걸 4식구가 먹는 다고? 다른 친척들이 오는 것도, 손님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시댁가족들만을 위한 명절 파뤼.
전을 다 부치고 나면 알록달록 예쁜 전들이 나열된 채반은 한 사람이 들기에도 버거웠다.
남편과 아버님, 아니면 형님과 남편 둘이서 들어야 겨우겨우 베란다로 내갈 수 있었다. 난 어쩌다가 전통주 빚는 걸 배웠다면서 인사치레로 막걸리 두 병 정도를 빚어가게 됐는데 그게 전파티의 시초가 될 줄이야!
막걸리가 빠질 수 없지!
어머님은 동태전, 형님은 연근전, 남편은 동그랑땡. 아버님은 술안주 삼을 수 있는 건 모두 다. 명절에 시댁에서 전을 그렇게 먹어도 포장해주신 전을 집에 갖고 와서 몇날 며칠을 먹었다. 남편을 물리지도 않는 지 냉동실에 보관한 전을 슬쩍 대펴서 과자 집어먹듯 야금거렸다.
배는 더 나오고 한동안 그 배를 꺼트리기 위해 난 또 열심히 다이어트 집밥을 해먹어야했다. 전은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왠만하면 하고 싶지 않은 음식이었다.
비가 오면 T에서 F로 변한다.
"오늘 같은 날, 전에 막걸리 한잔?" 비오는 날이면 남편은 출근 전 커피를 마시며 나에게 슬며시 얘기한다. 내가 전을 싫어한단 걸 알고 있어서 무리하게 부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남편이 먹고 싶다는데 계속 신경쓰인다.
계속 무시해왔었는데 마침 오늘처럼 비가 타닥거리다가 선선한 바람이 불면 바삭 뜨끈한 전 생각이 나기도 한다. 희뿌연 막걸리를 뿌려 놓은 것처럼 구름낀 하늘이 계속 된다면 금상첨화다.
비오는 날은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대신 남편의 뱃살을 생각해서 채소를 가득 넣어 밀가루를 묻힌듯 만듯 한 채소전을 만든다.
그나마 먹고 싶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과 남편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이 합의를 볼 수 있는 유일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