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나도작가다 공모글
제가 중3 때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합니다.
당시 중학교의 교장선생님께서 희한하게도 일본어 동아리를 운영하고 계셨고, 겨울방학 특강 모집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수강을 시작하여 한 달을 재미있게 배우고, 특강의 마지막 날 혼자 학교를 나서려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저와 함께 정문까지 난 긴 길을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한 주된 말씀은 "네가 일본어 공부가 재밌었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겨울 방학 한 달 공부한 건 아무 소용이 없다. 겨울방학이 끝난 다음에도 계속 공부해야 하니 일본어 동아리에 들어와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식으로 가입하게 된 일본어 동아리. 특이한 점이 많았습니다. 동아리 활동의 첫 만남에서 기억에 남는 특징은 이렇습니다.
1. 중학교 바로 옆, 고등학교에서 온 언니들이 많았습니다.
2. 매일 학교 마치면 동아리실에 오고, 밤 10시까지 공부하고 집에 간다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저녁 도시락 필요)
3. 토요일, 일요일과 방학 중에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한다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점심, 저녁 도시락 필요)
4. 일본어 공부는 하루에 1시간 정도 수업을 듣는데, 그 수업에서 선배 언니들이 '선생님'이었습니다. 먼저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원칙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시작된 일본어 동아리 생활은 저의 학창생활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워주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가르침, 학생들에 대한 책임과 열정에 압도되어 저도 동아리 언니들처럼 바로 옆 고등학교로 일부러 진학했을 정도입니다. 정말 명절 당일, 크리스마스 당일 정도 빼고 1년 362일을 학교에 가서 밤 10시에 학교 문을 잠그고 귀가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좋은 친구들이 있고, 함께 공부하는 선배들이 있었던 진정한 '배움의 공동체'였지요. 언니들에게 일본어를 배우며, 저도 곧 후배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먼저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원칙에 따라 동급생도 가르치고, 뒤늦게 들어온 고등학생 언니들이나 졸업한 선배들까지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중학생인 저를 마구 '교단'에 세우셨습니다. 학생이 한 명이든, 두 명이, 20명이든, 무조건 가르치는 사람은 교단에서, 학생은 책상에서 공부를 하게 하셨거든요.
강제로 주어진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경험을 통해, 저는 대학을 진학할 무렵 교사의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본어 동아리가 지금의 교사 생활의 시작점이었던 셈이지요. 저는 후배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본어 교재를 미리 공부하고, 교재의 특정 부분을 지워 발표를 시키며 학습 효율을 높이는 등 중학생 때부터 이미 많은 '수업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쪽지 시험을 치르기도 하고, 후배들을 데리고 상담하며 학습에 어려움은 없는지 챙기기도 했지요. 가르치면서 제 스스로도 부지런히 일본어 공부를 하며 실력을 점점 더 키워갔습니다. 지금 떠올리면 그 시절은 영락없는 '교사의 삶'이었어요. 스스로도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함께 공부하며 서로의 지성을 높여가는... 대학 입학 면접에서 교수님께서 왜 교사가 되고 싶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고등학생으로서 중학생 후배들을 가르칠 일이 많았는데, 열심히 가르쳐 놓으면 후배들이 졸업을 해요. 그렇게 떠나가는 것이 처음에는 아쉽고 속상했는데, 교사란 '보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배들이 제가 가르쳐준 것에만 머물지 않고 각자 원하는 학교로 가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꿈을 이룬다면, 그 자체로 좋은 일이잖아요. 열심히 가르쳐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을 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말에 교수님께서 "교사 경력이 10년 정도는 있는 것 같다."며 웃으셨던 기억도 납니다.
당시 일본어 동아리를 이끄셨던 교장선생님. 지금도 스승의 날에 '선생님의 선생님'이라며 저희 반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저의 은사님입니다. 은사님은 당시 매일 밤 10시까지, 또 주말과 방학 내내 학교에서 동아리 지도를 하신 셈이에요. 현재 교사인 저로서도 상상이 되지 않는 삶입니다. 주말마다 점심 식사 후 저희 모두를 부르셔서 학교 뒷산을 출발점으로 삼아 등산도 함께 했는데 산에서 불었던 풀피리 소리가 아직도 기억나고, 오는 길에 땄던 산딸기도 생각납니다. 토요일 밤 8시에는 교장선생님의 '일본어 듣기 영역 특강' 이 있었는데, 회초리를 손에 쥐고는 딱 한 번 들려주고 돌아가면서 따라 읽게 하셨어요. 지금 돌아보니 그 수업은 어학공부 방법으로 유명한 '딕테이션'과 '쉐도잉' 수업이었는데요, 교장선생님의 회초리가 무서워 초집중하며 들으면서도, 친구들이 틀리게 말하는 걸 들으며 함께 많이도 웃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무섭게 우리에게 딕테이션과 쉐도잉을 시켰던 교장선생님은 사실, 일본어 초급자였다는 것을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알게 되었고, 지금 생각하면 본인은 초급자이면서 제자는 일본어 능력시험 1급(지금은 N1에 해당하는 최고 레벨)에 합격시키는 '명교수자'시구나 감탄하게 됩니다.
올해로 교직 경력이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일본어 동아리 시절을 많이 떠올리며, 그때로 향하게 됩니다. 거꾸로 수업, 서로 가르치기 수업, 배움의 공동체 등 지금 최신 교육학에서 나오는 많은 내용들이 그 시절에 다 녹아있었습니다. 제게 그런 시작점을 선물해주신 은사님은 지금도 시골 자택에서 지인들과 지인의 자녀들을 불러 모아 꿈을 심어주고 일본어도 영어도 가르치시며 퇴직은 하셨으나 '교사의 삶'을 이어 가고 계십니다. 그때의 시절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살아서, 새로운 꿈을 꿀 때마다 '가능하다. 할 수 있다'라고 속삭여줍니다. 마침 스승의 날이 다가오네요. 은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해야겠어요.
EBS 나도작가다 공모전을 통해 제 교사 생활의 시작점을 학부모님들과 글로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한 일요일 오후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부모님께, 담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