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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복 Apr 08. 2024

프롤로그

우울증 환자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어느새 4년이 지났다. 사실 기억도 잘 나질 않는다. 나쁜 기억들을 잊고 싶어 하는 방어기제라는 것이 정말 있는 것인지 최근 5년 동안 있었던 일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한고 온 기분이랄까. 2020년 여름 어느 날 정신과에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어지고 있으니 약 4년 그 정도가 맞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현재 받은 정확한 진단명은 '양극성정동장애(조울증)', 성인 ADHD 두 가지가 주요하고 가끔 불안장애로 인해서 약을 좀 더 처방받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물어보거나 나의 병에 대해 생각할 때 단순히 '우울증'이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생활하며 주로 느끼는 감정들 중 가장 지대한 것이 우울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병은 정말 신기한 병이다.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다른 신체적 질환과는 달리 시시때때로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내가 우울증인지 아니면 내 상황이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도대체 이것이 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이 기분이란 것은 5년 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 것인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나는 원인을 알고 싶다. 원인을 알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많은 사건들이야 있었다마는 그런 사건 사고 하나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리고 혹여 어떤 특정 사건이 원인이라면 수많은 일들 중에 어떤 사건이 나에게 이런 아픔을 수년간에 거쳐 계속해서 안겨주고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이 글쓰기다. 빛바랜 오랜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듯 나의 지나온 삶의 자취들을 넘기며 살펴보려고 한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많은 아픔들이 있었다. 아마도 한 두 가지의 단순한 사건으로 이 질병이 생겼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라는 한 사람이 이렇게 만들어지기까지 해왔던 수많은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라 나는 짐작한다. 『이야기 심리학』의 저자 '댄 매커덤스'는 말한다. 인간은 자신에 관한 중요한 진실을 설명하는 영웅적 이야기, 즉 개인적 신화를 구성한다. 이 개인적 신화는 마치 문학작품의 서사처럼 '나'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이 신화는 개인의 평생에 걸쳐 발전해 나가며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나는 여기서 착안하여 나의 신화를 들춰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떠한 신화들이 지금의 나를 우울과 불안에 휩싸인 존재로 만들었는가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통해 나의 감정과 행동의 원인들을 규명하고 좀 더 그럴듯하고 멋진 새로운 '나'의 정체성을 형성해가고자 한다.


  나는 영화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반드시 시련을 겪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 싸워 나가 나름의 결말을 맺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과 영화는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다. 4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어쩌면 극심한 우울에 고뇌하고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 순간도 영화 속 주인공이 겪는 그 시련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 지금 내 삶은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의 장면들이다.


  아마 이러한 삶의 양상은 나뿐만이 아니라 이 글을 읽게 될 당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나의 '우울'의 기원을 찾아가는 이 과정들이 당신의 역사에 대해 고민해 보고 또 의미를 찾아가거나 어떠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말이다. 나는 또한 바란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숱한 좌절과 아픔으로 점철되어 온 내 삶의 이야기가 멀리 있는 당신에게 흥미를 끌어 작은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말이다. 공감하며 함께 아파해도 좋다. 가여이 여기고 가벼운 동정의 눈빛을 보내도 좋다.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며 질타를 해도 좋다. 그 어떤 반응이든 생각이든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울림이 있었다는 반증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작은 울림은 분명 위로가 되었건, 타산지석이 되었건, 그 무엇이든 간에 당신의 삶에 내가 스며들었다는 증거이고 우리들이 글을 통해 서로 통하였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과정이 당신을 돌아봄에 있어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진솔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나의 들추고 싶지 않았던 과거들을 과감히 들춰낼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내가 느낀 감정과 변화들에 대해서도 솔직히 이야기할 것이다. 또한 글의 말미에는 이러한 서사들을 통해 완성된 나의 개똥철학에 대해서도 솔직히 이야기할 것이다. 이 지극히도 개인적인 여정에 함께 해주는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지금부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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