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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복 Apr 10. 2024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다

저는 5년차 우울증 환자입니다.

  "오빠... 왜 그래..."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여자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어, 그러네. 맞네. 내가 왜 이러지.'

  나는 여자친구의 집 아파트 차단기 앞에 멈춰서서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를 질러대던 차였다. 이유는 차가 들어가야 하는데 경비아저씨가 차단기를 빨리 열어주지 않고, 어디에 가느냐 어느 용건으로 왔느냐 따위를 나에게 물어봤다는 이유에서였다. 내가 여자친구를 바래다주기 위해 그 곳을 자주 방문했던 것은 맞지만 차량등록 되어 있지 않은 차량에 문을 바로 열어주지 않고 방문 목적을 묻는 것은 그들의 당연한 임무였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났고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경비아저씨의 묻는 말에 고함을 치며 내 화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려는 불경스러운 말투로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곤 창문을 닫지도 않은채 주먹으로 핸들을 치면서 상스러운 말을 연신 내뱉었던 것이다. 평소와 너무 다른 행동에 여자친구는 몹시 당황하여 왜 그러느냐고 물어 왔고 차 안은 이내 어색한 공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마치 악몽을 꾸다가 잠에서 깨 현실로 돌아온 마냥 나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내가 왜 이럴까.


  바로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친했던 대학교 동기들을 몇 년만에 만난 자리에서 나는 한 친구와 언쟁이 붙었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에 있었던 정치적이 이슈가 이야기 소재로 나왔었는데 그에 대한 서로의 견해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이었다. 나는 친구의 말을 적극적으로 반박했고 친구 역시 그에 지지 않았다. 둘의 이야기는 술집 밖으로 나오면서 까지 이어졌고 나는 친구와 번화가 한 가운데서 큰 소리로 싸웠다.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은 집중이 되었고 함께 있던 다른 두 친구 역시 몹시 난처해 했다. 결국 그 둘의 중재로 대화는 '그래 됐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냐.'는 식으로 유야무야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은 어느 날 주말이었다. 여자친구와 거실에 누워서 잠을 자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불안감에 잠에서 깨어 그 옆에 앉있었다.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으로 앉아있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곧이어 시커먼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한기를 느꼈는데 미처 누군지 알아볼 새도 없이 그가 나에게 뛰어들어 가슴팍을 칼로 찔렀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를 발로 있는 힘껏 걷어찼다. 그 순간 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여자친구가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나는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꿈을 꿨고 잠결에 여자친구를 발로 걷어찬 것이다. 하지만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날 정도로 말이다. 


  위의 사건들은 어찌보면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닐 수 있는, 또 살면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건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지는 사건이었다. 나는 다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으로 어린시절을 포함하여 성인기까지 누구와 노골적으로 다퉈본 일이 전혀 없었다. 결국 참고 넘어가는게 이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던 사람으로 오히려 회피형에 가깝게 살아왔다. 또 어떤 상황이나 사건, 타인의 행동에 대해 엄격하게 생각하는 편도 아니라 '뭐,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저 당시의 나의 마음은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고 상대방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나에게는 정말 별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이 직장생활과 사소한 일상에서도 크고 작게 반복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더불어 불안감과 조급함이 점점 커져갔다. 내가 하고 있는 일, 해야 할 일들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으며 일상생활을 하는 내 마음속에 막연한 불안감들이 커져만 갔다. 가만히 있다가도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뭔가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고 밤에는 잠을 설치는 날들이 늘어갔다. 나 스스로도 내면의 불안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커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술이 늘었고, 술을 마신뒤에 그 간에 없었던 폭력적인 행동들을 하기도 했다. 불안감에 깊게 휩싸일 때면 집안을 뱅뱅 돌면서 빠르게 걸어다니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볼 때 분명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인 생각, 비정상적인 감정, 비정상적인 행동 등 아무리 생각해도 어딘가 고장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정신과를 방문해보기로 결정한다. 아무래도 마음의 병이란게 나에게도 찾아온 듯하다.


  사실 나에게 마음의 병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제법 어린 시절부터 해왔던 것 같다. 나의 성정에는 우울감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었으며 다소 염세적이기까지 한 생각들을 어린 시절부터 종종 했었다. 외로움을 자주 느꼈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나 공포증 같은 걸 종종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겉보기에 일반적이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학업성적은 거의 항상 우수한 편이었다. 그래서 나의 이런 심적 상태를 질병으로 생각하지는 못했고 그냥 성격 정도로만 인식하고 살았다. 그러니 당연히 병원을 가본다거나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무렵 내가 느꼈던 여러 감정들은 마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 치듯이 강하게 느껴졌다. 또 무엇보다 주변사람들에게 심하게 화를 내거나 누군가와 다투는 모습은 이 전의 내 인생에서는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날카로움이 나와 가깝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결국 병원에 가보기로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정신과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방문한 나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이런저런 질문지를 작성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체크리스트 형식의 검사지는 검사를 받는 당시의 기분이나 상황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질문 문항들을 읽는 순간 그 의도가 좀 뻔히 보인다는 생각에 이런걸로 진단하는게 신뢰할만 한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질문지에 답을 체크하면서 느꼈다. 이거 뭐 뻔히 뭔가 정신병이 있다고 나오겠구나 하고 말이다. 검사지 이후에는 뇌파 검사 같은 것을 했다. 검사를 위한 장치를 하고 병원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꺽꺽대며 운 것은 아닌데 눈물이 줄줄 흘러서 챙피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릴 때 어디를 다쳐서 엄마한테 갔을 때, 엄마가 그것을 봐주면서 '아이구 많이 아팠겠네' 하면서 호 불어줄 때 밀려오는 어떤 복받치는 서러움 같은 감정인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내가 나 자신에게 '그래 너 많이 아팠었구나' 하고 인정해주면서 참고 있던 설움이 터져나온 것 같은 그런 감정이었던 듯 하다. 


  결과는 중증도 우울증이었다. 병원에서는 바로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내가 정신병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묘한 미시감이 들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정말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이 때에 나는 나에게 우울증 환자. 아니, 정신병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 새로운 정체성은 이후에 있을 나의 큰 실수들과 기이한 행적들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종종 사용되게 된다. 


  이후에 병원의 권유로 임상심리센터에서 종합심리검사도 받게 되었다. 검사 결과 주된 정서는 '심한 혼란과 불안감, 죄책감, 분노감으로 평가되며, 항상 초조해하고 걱정을 달고 사는 면이 있고,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긴장을 늦추지 못하면서 심적인 고통과 두려움으로 인해 일상 생활의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을 보인다'고 나타났다. 또한 이런한 원인에 대한 분석으로 과도한 책임감과 자신을 곱씹어 생각하는 면, 사람으로부터의 거절에 힘겨워 하는 점이 있음이 나타났다. 특히 과거 원가족과의 기본 신뢰 관계를 적절히 형성하지 못하고, 충분한 지지와 돌봄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가족에 대한 분노와 원망, 서운함의 감정이 있으나 이를 자신의 감정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현재 마주치는 대상들과의 관계에서 경계하며 지내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종합심리검사는 나의 우울감의 현재와 그 뿌리,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전반적으로 고찰해보는데 제법 도움이 되었다. 나의 우울의 뿌리에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가족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있었다. 가족을 지키고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거절에 대한 상흔이 남아 있었다. 간절히 꿈꿔왔던 눈부신 나의 청춘에 대한 갈망과 실패로 무너져버린 좌절과 무력감이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행적과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나는 우울증 환자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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