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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복 Apr 10. 2024

정수기의 파란 불빛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남긴 트라우마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즐겁고 해맑고 철없던 순순했던 동심따위가 아니라 무력감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의 감정이 떠오른다. 나의 우울감은 아마도 그 어린시절부터 하나씩 켜켜이 쌓여온게 아닌가 싶다. 앞서 실시했던 종합심리검사의 '가족간에 기본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보며 떠오르는 어린시절의 장면들이 있었다.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고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때의 감정들은 두려움과 무력감, 그리고 슬픔이다. 이 일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어느날 밤의 일이다.


  엄마와 아빠가 싸웠다. 늘상 있는 일이지만 이것만큼은 수 없이 반복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심각한 것 같다. 아빠의 고성과 욕설이 이어지고 오늘도 물건 몇 가지가 하늘을 날다 부딪치곤 박살이 났다. 발을 동동 구를정도로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앞으로 나설 용기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엄마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온 가족이 그곳에 딸린 작은 방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방에서 두려움과 무기력함 속에 잠식되어 귀를 막았다가, 이내 걱정에 다시금 상황을 살폈다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있다가, 또 다시 문 밖으로 고개를 조금 내밀거나 문에 귀를 대어 보면서 상황을 살피는 일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영겁같은 시간이 지나고 술에 취해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워보이는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바깥에 있는 엄마를 향해 욕설을 이어가곤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욕설과 함께 당장 눈 앞에서 사라져버리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사라진다고?' 겨우 초등학교 4-5학년 정도 였던 당시의 나에게 그보다 무서운 일은 없었다. 


  나는 아빠가 깰까 조심스럽게 미닫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걱정되었다.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는 세간살이에 식당은 한바탕 폭격이 지나간 마냥 엉망이 되어 있었고, 불이 꺼진 식당 한켠 구석에 엄마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것을 비추는 것은 정수기의 파란 불빛 뿐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사라져버릴까봐 두려웠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나를 보고 눈물을 닦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 아니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고 애써 노력하는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얼굴을 하고는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괜찮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어린나이지만 그 정도는 알았다. 이런 상황이 절대로 괜찮을리가 없다는 정도는 말이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무섭고 슬펐던 감정을 내색할 수도 없었다. 나는 한없는 무기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안아준 엄마의 등을 어루만져주는 일. 그리고 그 옆에 앉아서 멍하니 정수기의 파란 불빛을 응시하는 일 뿐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이제 내일 호복이가 학교에 갔다 오면 여기에 없을거야."


   이미 앞 전의 싸움의 대화를 들으면서 예상했던 말이었지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엄마 없어도 공부 열심히 하고, 동생도 호복이가 잘 돌봐줘야해 알겠지? 엄마는 호복이를 믿어. 엄마가 돈도 벌고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지면 꼭 데리러 올게."


  내 동생은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말도 못하고 의사표현도 못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지만 누구를 미워하지도 못하고 해코지 조차도 할 수 없는 천사 같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내 동생. 


  엄마가 속상해 하기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울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입을 막아도 끅끅거리는 소리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티내고 싶지 않았지만 어깨도 흔들렸다. 엄마도 울었다. 그런데 엄마도 참는 듯 했다. 하지만 엄마도 참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울면서 나는 말했다. 


  "응, 걱정하지마.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성공할거야. 그리고 동생도 내가 잘 보살필테니까 엄마는 걱정하지마. 엄마도 아프지 말고 우리 걱정 많이 하지 말고 잘 살아야 돼."


  나는 엄마가 걱정되었다. 아무것도 없이 혼자 집을 나가면 엄마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도 걱정이 되었다. 엄마 없이 나 혼자서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동생을 혼자 잘 돌볼 수 있을까. 무서운 아빠와 함께 잘 살 수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엄마가 걱정할까봐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정수기의 파란 불빛만 바라볼 뿐이었다.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와서 앞이 뿌옇게 보였다. 눈물을 닦으면 내가 우는 걸 들키는 것 같아서, 또 그걸 보면 엄마가 속상할까봐 손을 움직여 눈물을 훔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식당 안은 고요했다. 이따금씩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웅-'하고 들려오는 냉장고 소리가 마치 기차소리마냥 크게 느껴졌다. 내일 학교에 다녀오면 이제 엄마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젠 볼 수 없겠지. 엄마 얼굴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불을 켤 수도 없었고 그저 정수기의 파란 불빛에 의지하여 흐릿한 윤곽만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펑펑 눈물을 흘리고 나니 빌어먹을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들고 싶지 않았다. 오늘 밤이 마지막일테니까. 이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고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가 없을테니까. 


  한 없이 무기력하고, 한 없이 슬픈 밤. 정수기에서 흘러나오는 파란 불빛마저 왜 그렇게 슬프게 보였을까. 그 희미하고 약한 불빛이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슬퍼하기만 하는 무기력한 내 모습 같았다. 그리고 그 약한 빛으로 볼 수 있는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연약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 바깥이 점점 밝아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 날 만큼 아침이 오는게 끔찍하리만치 두렵고 싫었던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는 내 일부와 같은 사람. 엄마가 사라지게 된다는 상실감이 주는 공포감과 슬픔은 그 날 몇 시간을 응시했던 정수기의 파란 불빛과 함께 약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슬픔으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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