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복 Apr 13. 2024

태어나지 말걸 그랬어

가정의 불화가 낳은 우울과 불안의 씨앗

"너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눈물은 폭포처럼 줄줄 흐르고 있었다. 가슴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는 듯 온몸이 초긴장 상태였다.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대답했다.

"엄마요..."

"그래 너는 그럴 줄 알았어 새끼야. 니 엄마랑 살아."

내 대답이 잘못된 걸까. 그래 당연히 맘에 안 드시겠지. 하지만 방금 전 아버지의 발길질에 엄마가 붕 하고 날아가는 모습을 본 내가 아버지를 선택할리가 만무했다.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엎어져 웅크린 상태로 있는 엄마가 눈에 보였다. 극악의 스트레스였고 또 극악의 공포였다. 


이것은 내가 여섯 살 무렵의 기억이다. 30년이 훨씬도 더 전의 일인지라 정확한 맥락과 상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당시에 느꼈던 슬픔, 두려움, 긴장감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너무 작았고 무력했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유지하며 서서 엉엉 울다가 쓰러져 있는 엄마 옆으로 가서 부둥켜안고 더 우는 것 외에는 말이다.




나는 내 방에서 안방 쪽 벽에 귀를 대고 있었다. 고성이 오고 간다. 곧이어 무언가가 박살 나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용기를 내서 안방 문을 열었다. 

"나가!" 

아버지가 소리쳤다. 

"그래 들어오지 말고 나가있어."

엄마가 이야기했다. 나는 다시금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방을 빙글빙글 돌다가 다시 안방 쪽 벽에 귀를 대었다. 아버지의 욕설과 고성 그리고 항의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발을 동동 구른다. 그때 할머니가 방에 들어왔다. 할머니도 엄마 아빠의 싸움을 말리지는 못한다. 이런저런 말로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했으나 나는 안다. 그저 나를 안심시키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라는 것쯤은 말이다. 할머니 앞에서 울면서 주저앉아 주먹으로 땅바닥을 연신 내리쳤다. 그리고 울부짖었다.


"나는 왜 태어난 거예요? 왜 낳았어요?
사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왜 낳았어요?"

이것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빌어먹을 세상에 태어난 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순간이었다. 




오늘도 세간살이가 박살이 났다. 아버지가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서 칼을 가지고 나온다. 몸이 덜덜 떨렸다. 겁이 났다. 두려움에 생각이 멈춰버렸다. 어떻게 말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동생을 끌고 나왔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동생이 울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말했다. 어차피 장애가 있는 동생은 세상 사는 게 고통일 뿐일 테니 데리고 나가서 함께 죽겠다고 말이다. 엄마는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된다며 절규했다. 하지만 힘이 없는 엄마는 이내 질질 끌려나가다가 아버지를 놓쳤다. 아버지는 동생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동생과 아버지를 모두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실 이 날의 일은 기억이 선명하게 나지는 않는다. 다만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가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나는 집안에 있는 모든 칼을 챙겨서 어딘가에 숨겨두었다는 것 정도만 기억이 난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일일 것이다. 




위의 사건들은 내 어린 시절 우리 가정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몇 개의 사건이며 사실 빙산의 일각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 모습들을 보며 느낀 것은 한 없는 슬픔과 무력감이었다. 태어난 것을 후회했으며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들을 했다. 하지만 나는 용기가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죽을 시도는 하지 못했다. 내 그런 모습조차도 혐오스러웠다. 


가정의 불화는 어린 자녀들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부모의 싸움에서 자식이 할 수 있는 일을 아무것도 없다. 뭐 자녀의 눈물의 호소나 중재가 통하는 집도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전혀 아니었다. 폭력과 폭언 속에서 나는 그저 공포감을 느꼈을 뿐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무력감이 남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천하의 병신새끼였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으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그냥 쓰레기 그 자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크게 성공하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고 또 잘 살게 되면 그때는 내 말을 들어줄까. 그때는 이런 일들이 없어질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끝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 정도뿐이었다. 


내 마음속의 우울의 씨앗은 가정의 불화로부터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무의식에 깊게 뿌리내려 무럭무럭 자라났다. 내가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말이다. 어느 날은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데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모두가 웃으면서 제법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 느꼈던 행복감이 뭔가 어색하다고 말이다. 이것은 일시적인 행복이며 분명히 또 끔찍한 공포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항상 어딘가 불안하고 다소 냉소적이며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갔다. 


"쟤는 어린애가 생긴 건 멀쩡한데 왜 이렇게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우울하게 생겼어?"


나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친척이 우리 엄마에게 전한 말이다. 그리고 난 이후로도 살면서 이와 비슷한 말을 수도 없이 듣게 된다. 마음속 우울의 씨앗이 제법 멋지게 싹을 틔운 모양이다. 




이전 03화 정수기의 파란 불빛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