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시대
나는 그 시절이 좋았어.
그 말 그대로 낭만의 시대였지.
아버지 역시도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는 못했다.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할아버지는 제법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 덕에 제법 다혈질적이고 폭력적인 기질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성향은 어김없이 때때로 가족들에게도 발현되며 할머니와 자식들도 폭력에 노출된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할머니와의 관계도 썩 좋지 못했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성향이 아니었으며 때때로 집을 나가 한동안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대문 밖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어머니를 기다렸던 어린 시절의 참담하고 서글펐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또한 자신은 다른 형제들처럼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제외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민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 시도는 제법 성공적이어서 형제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아버지의 인정과 기대, 사랑을 받는 아들이 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옛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느낀 아버지가 부모에 대해 느낀 감정은 할아버지에 대해선 두려움과 존경, 할머니에 대해선 서운함과 갈망과 같은 감정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받아야하는 안정감과 사랑과 같은 감정들은 제법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할머니보다는 할아버지에 대해 일부 동일시 하는 감정을 느끼며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반면에 할머니에 대해서는 다소 원망어린 감정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화를 내며 실수를 하게 되는 데에는 할머니의 잘못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아버지는 한켠에 외로움과 서글픈 마음을 늘 가지고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와 함께 기질적으로 폭력적이고 다혈질적인 성향을 함께 갖게 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버지는 늘 할아버지를 실망 시키는 아들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남성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성향은 폭력성과도 맞닿아 있다. 아버지가 회상하기를 아버지의 어린 시절 당시는 누군가에게 우습게 보이면 먹잇감이 되는 시대였으며 그 모습을 자신의 아버지가 본다면 무척 실망스러워하고 가슴 아파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은 누구에게 무시당해서도 또 맞아서도 안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당시는 지금에 비해 폭력이 난무하며 그러한 것들이 제법 많이 통용되던 시대였다. 아버지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철봉이나 평행봉 같은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또한 아버지 또래 남자들에 비해 큰 키와 적당한 체구를 갖췄기에 신체적인 조건 역시 따라주었다. 게다가 늘 하는 '나는 누군가에게 무시당해서도 맞아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싸움에 있어서 악바리 같은 근성을 만들어 주었다. 그 덕에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맞아본 일이 거의 없었으며 힘으로 도전하는 친구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하며 학교에서 동급생은 물론 선배와 후배들 중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싸움으로는 져본적이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중학교 시절에 학업성적도 우수하여 고등학교를 대도시에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이로서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더욱 한 몸에 받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고나니 다시금 힘으로 아버지를 제압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 일종의 텃세 같은 것도 있었으며 시골에서 온 녀석이 늘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다니는 것을 탐탁치 않게 보는 무리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학교에서 힘으로 내로라 하는 학생들이 모여 만든 써클(지금으로 말하자면 일진같은 개념이겠다)의 타겟이 되었고 다수에게 무차별 폭행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은 아버지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자신을 누구에게 무시당해서도 맞아서도 안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는 한 둘이 아닌 집단이었으며 이미 학교를 평정하다시피 한 지금까지 만났던 것과는 격이 다른 상대들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과 함께 할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본인의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아닌 학교를 다니지 않는 또래 무리들 중에서 주먹으로 제법 알려진 사람들을 하나씩 감화시켜 친구로 만들었고 그렇게 다섯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복수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결과는 압도적인 승리였다고 한다. 그 뒤로는 새로운 학교에서도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맞아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아버지는 시골에서 올라온 탓에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어울리는 친구 한명이 찾아 왔는데 친구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친구가 밝은 얼굴로 이야기 하기를 포장마차에서 뭘 먹고 있는데 머리를 빡빡 민 사람 한 명과 일행으로 보이는 덩치가 제법 큰 사람과 시비가 붙어서 손을 봐주고 오는 길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문이 벌컥 열리며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아버지와 친구를 함께 끌고 갔다. 아버지의 친구가 건드린 사람이 하필 그 곳의 유명한 조직폭력배 일원이었으며 빡빡 민 사람은 마침 출소하여 또 다른 조직원과 술을 먹고 있던 것이었다. 그 덕에 아버지와 친구는 외진 곳으로 끌려가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곳에서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저항했다고 한다. 그 혈기있는 모습을 눈여겨본 조직에서는 아버지에게 스카웃 제의를 했다. 비록 성인 남자, 그것도 폭력배인 그들의 압도적인 힘에 당하긴 했으나 그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것이다. 아버지로서는 자존심은 지킨 셈이었다. 아버지는 학생으로서 나쁘지 않은 수입과 또한 이젠 학교를 넘어 지역에서도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상황으로 생각하여 제안을 수락했다. 그 뒤로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에는 유흥업소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관리하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와 반비례하여 학업 성적이 조금 떨어지긴 했으나 그 역시 할아버지를 실망시킬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눈치로 살아온 아버지에게 학교 시험은 시험기간만 조금 집중해서 신경쓰면 어떤 문제가 나올지 또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대강은 알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아버지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곧 군대에 가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는데 자신을 비롯한 몇 명을 따로 불러서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다른 기차에 태웠다고 했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 배치 받은 부대로 가던 도중 갑자기 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나더니 욕설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을 비롯 기차에 탄 신병들이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차 안에서 계속적인 폭행을 당하며 도착한 곳은 공수부대였다. 훈련소에서 신체기량을 보고 아버지를 공수부대로 차출한 것이다. 그곳은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었고 아버지는 또 폭력적인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곳의 생활에 적응을 하게 되었고 제법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아버지 대의 공수부대는 사회에서도 제법 대우를 해줬으며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어떤 힘의 권위를 보여주는 집단이었다고 한다. 어디에서 싸움이나 시비가 붙어도 절대로 맞거나 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는데 공교롭게도 그것은 그간 아버지가 살면서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제법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아버지의 폭력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는 글로 소개할 수 없는 일들이 제법 많이 있다. 어릴적 고향 친구가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다른 친구들한테 괴롭힘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당 지역으로 혼자 찾아가 학교 전체를 제압하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게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 군대 시절 술집 등에서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였는데 전부 제압했다는 이야기 등 무슨 영화에서나 들어볼 법한 일화들이 참 많기도 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을 때 힘과 폭력으로 제법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었던 시대.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 하며 자신의 말에 꼼짝 못했던 시대. 아버지는 그 시대를 낭만의 시대로 회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가 경험한 과거의 많은 일들이 아버지의 폭력성을 점점 강화하는 방향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폭력성이라는 칼날의 끝이 때로는 우리 가족에게도 향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시장에 차를 주차했는데 나는 차 안에 있었고 경찰 한 명이 차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영문을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주정차 위반 문제로 벌금을 물리려고 온 것이었다고 한다. 여튼 잠시 뒤 아버지와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을 보고 차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경찰에게 됐으니까 그냥 가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곧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잠시 뒤 내 눈에는 아버지의 한 손에 멱살이 잡힌 채 발을 버둥거리면서 시장의 한 구석으로 끌려가는 경찰의 모습이 보였다. 그 장면을 본 어린 시절의 나는 패닉에 빠졌다. 잠시 뒤 먼저 돌아온 엄마가 먼저 집으로 가 있으라고 했고 나는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울면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경찰서가 있었는데 나는 집으로 향하던 중 그 안에 수갑을 찬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들이 대거 출동하게 되었고 경찰차를 통해서 나보다 먼저 앞질러 경찰서에 도착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 나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면서 집으로 걸어갔다.
그 일은 어찌저찌 해결이 되어 큰 벌을 받지 않고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함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애석하지만 아버지의 낭만의 시대는 그리 길게 오래가지는 못했던 듯하다. 세상은 변했고, 아버지의 폭력적인 선택 뒤에는 제법 많이 아픈 결과가 뒤따랐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과 결과 속에서 엄마와 나는 함께 불안해하고 아파해야 했다. 우리에겐 낭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