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뻐근한데
클라이밍을 하면서 오르고 떨어지길 반복하다 보면 어딘가 아픈 곳이 생긴다. 앗! 목이 아프다.
고갤 좌우로 돌리는 게 힘들다. 나무늘보처럼 천~ 천~ 히~~ 겨우 움직인다. 목에 담 걸린 게 나아갈 때쯤 날아온 장롱에 맞아서 코뼈가 부러졌고 그날 오후는 쉬었어야 했는데 굳이 요가를 가서 어깨서기를 하고서 다리를 머리 뒤로 넘기는데 목 뒤에서 "뻐억!" 하고 소리가 났다. 아...... 이거 뭔가 터졌다. 이제는 누웠다가 일어설 때 고갤 들지 못해 옆으로 굴러서 일어나야 하고 신생아 마냥 고갤 가눌 수 없어 머리가 휘청휘청하는 느낌이다. 요가선생님께서 한의원이라도 가보라고 하셔서 한의원에 갔다. 한의원 이름에 '필'이 들어가서 '필승' 같은 느낌인가 했는데 한의사 선생님 가운에 '필ㅇㅇ' 선생님이 필 씨였다. 살면서 필 씨는 또 처음 본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아저씨 나 운동장에서 달리기 할 때 허리 빳빳하게 세우고 허구한 날 걸으시던 그분이다. 허리를 다치셔서 강제로 백수가 된 재활운동 중이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하얀 가운 하나에 되게 건강해 보인다. 심지어 하얗게 샌 머리의 원소기호가 Ag 같다.
"손 발이 차가운 편인가요? 소화는 잘 되나요? 주량이 얼마나 되죠? 술을 마시면 얼굴색이 변하나요?" 등등 질문을 하시며 나의 체질을 확인하시는 듯했다.
"운동을 굉장히 많이 하시나 봐요" (아저씨도 운동장에서 날 보셨군)
"누워 보실게요"
왼쪽 다리에 침을 세대 정도 놓으시더니
"고갤 좌우로 돌려보세요, 똑같아요?"
"네"
왼쪽 다리 다른 곳에 세대 정도 놓으시더니
"고갤 좌우로 돌려보세요, 똑같아요?"
"네"
왼쪽 다리 다르고 다른 곳에 세대 정도 놓으시더니
"고갤 좌우로 돌려보세요, 똑같아요?"
"네"
"이상이 없는데...... 병원에 가보세요"
"네?"
본인이 진료한 사람 중에 술 마시고 뒤로 넘어져 머릴 다친 사람이 있었는데 아픈데 없어서 잘 살다가 손발이 저리더니 어느 순간 사지마비가 되었다며 목은 특히나 예민한 부위이니 이상이 느껴지면 병원에 가서 사진도 찍고 검진을 받으라고 하셨다. 아! 나의 대하드라마 허준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중학교 때 허준을 보고 자랐던 만큼 한의학에 대한 신뢰가 상당했다. 대학입결도 K대 한의대가 국내 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허준 선생님께서 나에게 너 잘 못하면 사지마비가 올 수 있어! 하고 걱정거리만 안겨주시곤 병원에 와이파이가 잘 안 잡히는지 통신사와 열심히 통화를 하셨다.
다음 날 목의 통증은 승모근까지 내려왔고 자다 깨다를 반복 했으며 역시나 일어날 때는 목을 가누지 못해 옆으로 굴러서 고갤 떨군 좀비처럼 일어섰다. 거울을 보니 가관이다. 장롱에 맞아서 코뼈는 부러져서 부었고 오른쪽 눈엔 멍이 들어서 눈탱이 밤탱이가 되었네 오! 지금 보니 장롱자국이 보인다. 콧등과 오른쪽 눈에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맞았구나,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케빈에게 벽돌로 맞은 키 큰 도둑이 떠올랐다. 아하하하
아무래도 디스크가 터진 것 같아 정형외과에 갔다. 여기는 에어컨이 안되는지 간호사 한 분이 리모컨을 들고 "제습! 제습!" 하시며 진료실, 영상실, 물리치료실을 왔다 갔다 하신다. 내 차례가 되어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목이랑 승모근, 어깨 쪽이요"
손으로 만져보시며 "여기요? 여기요?"
"네"
"위험한 부분은 아니고 근육통이라 쉬면 나으실 거구요 주사 놓고 할 수는 있는데 경증이라 간단히 물리치료받으실게요"
"아이고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의사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순 근육통이라고 말을 해주니 비로소 나는 목을 좀 더 과감하게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많이 불편하지만 나무늘보 보단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한의사와 양의사(표현이 맞나?)를 떠나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의 말 한마디는 환자의 심경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요즘 의대정원문제로 시끌시끌한데 정의로운 방향으로 맺음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