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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J Nov 28. 2024

하얀 세상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많은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무언가 싸한 느낌에 커튼을 걷으니 아니나 다를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겨울왕국이 따로 없는 눈앞 세상에 같이 일어난 고양이들도 창문에 기대어 눈을 구경했다.


하이얀 세상의 온 가족의 낭만도 잠시,

보잘것없는 K직장인으로서 아무래도 출근길 교통이 걱정되어 빠른 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했다.

그러나 빨리 움직이던 몸의 생각과는 달리, 아직 아무도 걷지 않은 눈이 가득한 인도에 처음으로 내 발자국도 남기고, 스마트폰을 들어 이 광경이라도 담자는 뇌에 생각을 따랐다.


그렇게 담은 한컷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오랜만에 구내식당에서 하게 된 점심식사는 오히려 눈 오는 아름다운 찰나와 함께 김치를 넘길 수 있는 영광을 줬다. 순식간에 고급라운지가 된 식당에서는 달그락 거리는 수저 집는 소리와 함께 연신 카메라 셔터소리가 울렸다.

한편 식사하고 난 후에도 하얀 세상이 준 낭만은 이어졌다. 같이 식사하게 된 여자 부장께서는 “과장 좀 보태서 삿포로에 온 거 같다 야!“ 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예쁘긴 한데 삿포로 안 가봐서 잘 몰라요 부장님.... 치지 마세요


오후 업무 중에 잠시 갖게 된 동료들과의 휴식시간도 즐거움이 배가 됐다. 입만 즐거웠던 그간이었다면 이젠 눈도 즐거워서 그런지 입에서도 좋은 말들이 오갔던 거 같다. 보통 휴식시간엔 뒷담화를 많이 하던 바람에..


오~랜만에 많이도 내린 눈 덕분에 오~랜만에 하루가 기분이 좋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내기 싫던 일상생활이었는데, 이런 거 보면 모두 마음먹기 달렸다. 매일같이 지루해하던 출근길도, 별로 맛없다고 느끼던 구내식당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즐거움이 생기고, 환경변화를 변화로 느끼고 내 마음에 어떻게 새기느냐에 따라 전부 다른 환경으로 바뀐다.

하얀 세상에 내 발자국을 처음으로 남기고 좋아하듯, 복잡한 이 세상을 하얗게 바라보고 한걸음 내딛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접근해보면 어제까지도 불편했던 세상이 금방이고 편해지지 않을까.


인생사 그래봤자 바둑이고, 바둑한판 이기고 지는 거 세상에 아무런 영향 없는 바둑이다. 이렇게 이겨도 바둑이고 저렇게 저도 바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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