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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by TJ

독립이란 단어를 처음 배운 건 아마 초등학교 사회시간이었다. 나라가 스스로를 지키는 일, 타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일. 그때는 그저 역사책 속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그 독립이란 말은 나라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말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자라면서 수없이 많은 울타리를 통과한다. 부모의 울타리, 학교의 울타리, 사회의 울타리. 그 안에서 길러진 순응은 처음엔 예의였고, 나중엔 생존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응당 그래야지.”

그 말은 언제부턴가 굴레처럼 목에 걸렸다. 결국 우리는 ‘나답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남에게 보이기 좋은 법’만 배워온 것이다. 싸이월드가 그랬고 페이스북이 그랬다. 그리고 인스타와 유튜브도 그랬다.


진짜 독립은 그런 세련된 순응을 벗겨내는 일이다. 타인이 정한 기준에서 내 가치를 재지 않고, 불안하더라도 스스로의 방향으로 걸어보는 일이다. 그래서 독립은 늘 고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독립은 싸움으로 시작된다. 타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부터. 부모에게서의 독립은 단순히 집을 나오는 일이 아니다. 경제적 자립보다 더 어려운 건, 그들이 내 안에 심어둔 기준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부모의 “그게 너를 위한 길이야”라는 말에 의심을 품는 것, 그 순간부터 진짜 독립이 시작된다.


직장에서의 독립은 사직서에 있지 않다. 정해진 틀 안에서도 스스로의 생각을 유지하는 사람, 지시와 효율 사이에서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미 독립한 사람이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반항이 아니라, 자기 보존이다.


사회로부터의 독립은 더 어렵다. ‘정상’과 ‘성공’이라는 단어에 너무 오래 길들여져 있어서, 그 기준을 거부하는 순간 왠지 모를 죄책감이 따라온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정상’이란 말 자체가 누군가의 이익에 맞게 만들어진 틀일 뿐이다. 그 틀을 벗어난 삶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복구다. 나라는 원래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복구.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의 속박을 안고 산다. 그러나 속박을 인식한 사람만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상이 말하는 자유란, 대부분 소비가 허락된 자유일 뿐이다. 하지만 진짜 자유, 진짜 독립은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다.

그건 가진 것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잃어도 흔들리지 않을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든다.

독립이란, 결국 ‘고독을 감당할 용기’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의견이 다르다고 손가락질받을 때,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갈 때 홀로 남는 순간, 그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로 독립한다. 그래서 독립은 화려하지 않다. 조용하고, 느리고, 때로는 아무도 모르게 완성된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인정을 갈망하며 산다. 그러나 언젠가 깨닫게 된다. 그 인정이 내 존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순간이 바로 독립의 순간이다.

독립은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경계를 그리는 일이다.

나와 세상을 완전히 끊어내는 게 아니라, 무엇이 ‘나’이고 무엇이 ‘나 아닌가’를 구분하는 일. 그 선을 스스로 긋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진짜로 자신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게 어쩌면, 현실 속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독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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