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에세이 01ㅣ 집에선 하릴없는 시간에 하릴없는 일을 할 수 있다
그가 물었다. 집에 혼자 있어서 외롭지 않냐고. 가끔 나가서 가끔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고 했다. 지금 나로 생각했을 때 적당한 선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 그런 일상이다 보니 요즘처럼 집에 오래 있는 날도 없다. 물론 코로나19가 단단히 한몫을 한 일상이다. 요즘 나는 방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 책상 앞에서 두 개의 모니터를 보고 일하며 퇴근하면 다시 침대로 널브러진다. 삶의 모든 일이 집 안에서 일어나는데 방을 좋아하고 추운 날을 견디지 못하고, 코로나의 두려움을 크게 느끼는 나에겐 이런 일상이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못 나가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 거 같은데, 나는 가끔 자연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산책으로 풀어주고 나면 집에 있는 게 답답하지 않다. 먹을 것만 충분히 채워준다면 몇 달, 몇 년이고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것도 같다.
집에서 일해서 좋은 점이라면 짧은 점심시간에도 내 공간에서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다는 것. 친구가 사준 모카포트로 매번 흘러넘치는 커피를 닦아내지만 그 부산스러운 시간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의자만 앉으면 일이 시작이니 여유롭게 음료를 들고 자리로 돌아온다. 밖에서 일하던 점심시간은 내겐 답답했다. 1시간 남짓한 점심시간에 메뉴 정하고 나가는 것으로 거의 반을 날렸고, 어색한 사람들과 동료라는 이유로 같은 밥상을 받았다. 어느 직장에서도 혼자 밥 먹는 걸 좋게 봐주지 않았다. 대놓고 함께를 외치거나 혼자 밥을 먹는 나를 흘끔거리곤 했다. 그게 불편해 웬만하면 동료들과 같이 밥을 먹으려고 했고 서먹한 사람과 저렴하지만 먹을만한 식사를 매일 찾아 나섰다. 게다가 나는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는 편인데 직장에서는 시간 준수가 근태관리라는 요소로 연결되면서 더욱 옥죄어왔다. 회사에서 말한 정해진 시간을 지키기 위해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부단히 애를 썼다.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오게 되는 날이면 도착할 때까지 심장이 쿵쾅거려 식은땀이 났다. 그렇다고 누가 뭐라 하는 건 아니지만 회사에, 직장 동료에 나를 깎아먹을 어떤 빌미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중에 시간을 지키는 건 내가 잘할 수 있고 스스로도 기본이라고 생각해서 더욱 노력했던 거 같다. 이건 회사에 몇 번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잘려버린 동료를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내겐 회사는 그런 곳이었다. 경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곳. 안 그래도 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집 밖에서 여러 사람과 매일 마주하는 직장생활을 하는 건 참 힘들었다. 지금은 그런 일이 가끔만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또 집에서 생활하니 출퇴근이 없어졌다. 경기도민으로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3시간을 보낸다는 것과 같다. 일주일이면 15시간, 한 달이면 60시간을 거리에서 보냈다. 덕분에 그나마 다리는 좀 튼튼한지 모르겠지만 길고 지루한 출퇴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항상 가방에 책을 넣었고 이어폰으로 여러 팟캐스트와 음악을 섭렵했다. 그게 익숙해서 고단한지는 몰랐는데 출퇴근이 없는 지금, 일을 위한 그 이동이 내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갉아먹었다는 걸 느낀다. 이제 재택이 안 되는 곳이라면 페이를 2배는 받아야 할 정도이다. 요즘은 눈앞에 노트북을 켜면 출근이고 닫으면 퇴근이다. 일을 마치면 산책을 하고 저녁을 만들어 먹고 입고 메일을 보내거나 가끔 이렇게 글을 쓴다. 남은 힘이 있어 하릴없는 시간에 하릴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살아도 시간은 잘 간다. 눈 뜨면 일할 시간이고 어느새 보면 잘 시간이다. 밖보다는 집, 유명한 곳보다는 동네, 외출복보다는 잠옷, 타인보다는 내 시간, 낯섦보다 익숙함. 이런 내게 엄마는 외롭지 않냐고 물었다. 누가 있어도 외로우니까 괜찮다고 했다. 이렇게 점점 사람보다 잣나무, 나비란, 디퓨저, 마우스, 검은 펜 같은 말 없는 존재들만이 날 기억해줄 거 같다. 인간보다 자연이 좋으니 이대로도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