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의 <색, 계>
일제의 중국침략 당시를 그린 157분의 영화. 영화 전체를 기나긴 플래시백으로 구성한 영화의 구조는 영화의 비극성을 강조하며 3년이라는 시간과 홍콩, 상하이라는 배경을 넘나든다. 일제 배경의 암살극이라면 으레 등장할 것 같은 대형 액션도 없이 러닝타임을 이끌어간다. 오직 감정, 탕웨이와 양조위의 표정만으로 157분을 이끌어간다. 동시에 시대 속에서 나라를 위해 연기하게 된 어느 배우의 연기를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파격적인 성애장면으로 화제가 된 것과는 반대로, 영화 속의 거의 모든 애정은 배우들의 표정으로만 발현된다. 표정이 곧 감정이고, 카메라는 극 중 인물들도 헷갈려 하는 감정들을 포착한다. 대사로 길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클로즈업된 얼굴이 스크린에 가득 차면 별다른 설명 없이도 관객들은 그들의 상태를 알 수 있다. 배우의 연기가 만들어내는 표정을 포착하는 것만으로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색, 계>는 문자 그대로 영화적이다.
왕 치아즈(탕웨이)와 이 대장(양조위), 암살대상과 스파이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값비싼 6캐럿 다이아몬드 정도의 감정일까, 혹은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일까? 항상 확신에 차있는 것처럼,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다는 이 대장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왕 치아즈는 혼란스러워한다. 이것은 임무인가, 감정인가, 사랑인가. 기나긴 플래시백이 끝나고 영화가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오면 왕 치아즈의 눈빛은 이 대장만을 똑바로 쳐다본다. “가요.” 둘의 마지막 대화는 이렇게 끝난다. 왕 치아즈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이 대장의 눈빛은 열 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흔들린다. 이안 감독의 카메라는 혼란과 확신의 감정을 섬세하고 과감하게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