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12. 2019

오링나버린 관객의 표값

<타짜: 원 아이드 잭> 권오광 2019

 허영만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이 추석 시즌에 맞춰 공개되었다. 화투에서 포커로 종목을 변경한 이번 시리즈 역시 전작들처럼 화려한 캐스팅과 노름판을 주름잡는 전설적인 타짜, 그리고 그 타짜의 어린 친척들이 자라서 노름판으로 뛰어들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전설적인 타짜 짝귀(주진모)의 아들인 도일출(박정민)은 동네 포커판에서 소문난 꾼이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마돈나(최유화)와 그의 애인인 이상무(윤제문)에게 포커로 모든 돈을 다 뺏기고 사채까지 쓴 일출 앞에 에꾸(류승범)이 나타난다. 에꾸는 일출에게 큰 건수가 있다는 제안을 하고, 까치(이광수), 권원장(권해효), 영미(임지연)를 모아 서천의 졸부 물영감(우현)에게 돈을 따내려고 한다. 

 <타짜: 원 아이드 잭>은 전작들보다 판은 작아진 대신, 다양한 캐릭터들의 팀워크를 보여주는데 집중하려 한다. 물론 최동훈 감독의 첫 영화만큼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진 못하지만, 전작인 <타짜: 신의 손> 속 납작하고 몰개성적인 캐릭터들 보단 조금 더 개성이 넘친다. 배신에 배신에 배신이 이어지는 타짜들의 노름판 이야기도 어느 정도 밀도 있게 진행된다. 문제는 영화의 감성이 허영만의 만화가 나왔을 시절에서 멈춰져 있다는 것이다. 물영감을 찾아간 까치와 영미의 의상부터 숨겨진 흑막으로 등장하는 ‘마귀’까지, 영화의 모든 인물들의 모습은 만화가 연재된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감성으로 가득하다. 일출이 이상무와 포커게임을 벌이는 장면의 괴상한 편집도 그렇다. 갑자기 배경이 어두워지며 인물들의 얼굴만 남는 화면과, 암전 된 화면을 둥둥 떠다니는 인물들의 바스타 숏은 그저 촌스럽기만 하다. 여성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방식도 그렇다. 영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짧은 치마를 입은 영미의 엉덩이를 카메라가 쫓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뿐이다. 첫 영화의 정마담(김혜수)처럼 개성 있는 캐릭터로 나아가는 대신, 처음 등장했을 때의 캐릭터가 영화의 마지막까지 유지된다. 물론 이는 영화의 거의 모든 캐릭터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출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유 없는 복수심(원인이 제시되긴 하지만 납득하긴 어렵다)을 품고 있고, 에꾸는 캐릭터들을 모으는 것 외엔 크게 역할이 없다. 까치, 영미, 권원장과 같은 조연 캐릭터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배신을 거듭하는 마돈나나 반전을 품고 있는 이상무 또한 모든 면에서 예측 가능하고 진부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사실 <타짜: 원 아이드 잭>의 전체 서사도 진부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타짜: 신의 손>이 지닌 것과 유사한 문제이기도 하다. 최동훈의 첫 영화 속 캐릭터들의 조카나 아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으면서, 그것으로 어떤 당위를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두 영화에서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주인공의 재능을 정당화하기엔 대사로만 언급되고 넘어갈 뿐이고, 복수나 배신의 명분으로 만들어내기엔 주인공과 위 세대 타짜들의 심리적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게다가 이번 영화에서는 도박판이 주는 스릴도 부족하다. 대신 도박의 결과로 등장하는 폭력의 자극적인 이미지만이 등장할 뿐이다. 지겹도록 이어지는 복수와 배신의 연쇄 끝에 오는 허무함 같은 것을 그려보려 시도했다고 최대한 선해하여 말할 수도 있었지만, 최동훈 감독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짧은 쿠키 영상은 그마저도 무마시킨다. 그야말로 <돌연변이>를 통해 나름대로 독특한 영화를 선보였던 권오광 감독이 두 번째 영화에선 완전히 충무로와 동화되었을 뿐임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정리가 덜 된 27년 간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