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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02. 2020

0. 내가 좋아한 2010년대의 영화

 2020년이다. 2010년대가 지났다. 이제 20대 중반인 입장에서, n0년대라 불리는 한 10년의 기억을 거의 대부분 지닌 채 떠나보낸 경험은 처음이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시기인 90년대는 극단적으로 짧고 작은 기억들 밖에 나지 않고, 절반 이상을 초등학교에서 보낸 2000년대는 모교들이 변화하거나 사라진 것처럼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2010년대의 것들이다. 


 내가 처음으로 영화를 본 것은 5살이었던 1999년, 아마도 아빠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왔기 때문에 봤을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1993)이다. 처음으로 극장을 찾은 것은 2001년 겨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을 관람한 것이 처음이다. 사실 이것들은 내가 기억하는 '처음'들의 마지막 기억일 것이다. <쥬라기 공원> 전에도 집에서 비디오나 '주말의 명화'를 통해 영화를 봤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이전에 개봉한 수많은 전체관람가 영화를 봤을지도 모른다. 


 2010년대의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아직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때 기록해두고 싶은, 그러니까 2010년대 내내 썼어야 할 일기를 2020년이 되어서야 결심하고 몰아서 쓰고 싶은 욕구. 게다가 2010년대는 내가 이런저런 영화들을 자의적으로 찾아보러 다니기 시작한 시기이다. 극장에 갈 만큼의 용돈을 받지 못했던 초등학교 때와 노트북은 커녕 그 흔한 PMP마저 없었던 중학교 시절을 넘어, 노트북과 스마트폰, 아이패드를 갖추게 된 고등학생 시절은 오만 잡다한 영화들을 마구잡이로 보던 시기였다. 특히 동세대 중학생들이라면 다같이 모여서 봤을 법한 <새벽의 저주>(2004)나 <28주 후>(2007) 같은 좀비영화나 <쏘우>(2004)나 <호스텔>(2005) 같은 고어-호러영화들을 보며 나름의 취향 아닌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었을 때이기도 하다. 누군가 PMP에 담아온 영화를 함께 보는 중학생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된 나는 <성스러운 피>(1989)나 <데드 얼라이브>(1992) 같은 영화를 친구들에게 전파하는 다소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씨네21을 비롯한 영화잡지를 처음 접한 것도 2010년대이다. 기숙사 학교를 다녔던 중고등학교 시절, 특히 인터넷의 사용이 자유롭지 못했던 중학생 시절에는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씨네21과 무비위크였다. 서울에서 춘천에 있는 학교를 2주에 한번씩 오가는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버스 터미널 가판대에 걸린 영화잡지 들이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잡지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이런저런 창구를 통해 영화 이야기를 쓰는 욕구도 그때 처음 형성되기 시작한 것 같다. 학교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에 영화관이 있던 중학교 시절과 못해 영화관이 있던 건물이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문을 닫은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이런저런 우회적 경로로 잡다하게 영화들을 집어 삼키는 것이 그 당시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니 주변에 극장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못했던 영화제들은 201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시작으로 활발하게 다니기 시작했다. 2015년엔 (아마도 스탠리 큐브릭 회고전을 보기 위해) 한국영상자료원에 처음 가봤고, 2016년에는 미겔 고미쉬의 <천일야화>(2015) 3부작을 보기 위해 (지금은 더 이상 가지 않는) 서울아트시네마에 처음 갔다. 일반 개봉관, 독립영화관, 시네마테크가 곳곳에 위치한 서울에서 내 영화경험은 노트북을 벗어나 스크린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노트북의 작은 화면을 놓칠 수는 없었다. 2017년 넷플릭스가 한국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책상과 손에 있는 작은 스크린과 영화관의 큰 스크린을 바쁘게 오가며 이런저런 영화들을 봤다. 놓친 영화,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몰랐던 영화, 새로운 영화들이 쏟아졌고, 볼 영화를 고르는 일이 더욱 어려우며, 볼 영화를 고르는 일 자체가 '바쁜 일'이 되었다. 


 2010년대의 영화관람은 대충 이렇게 지나갔다. 해가 지나갈수록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와 그곳으로의 접근가능성은 점점 더 확대되었고, 그만큼 영화에 대한 정보도 더욱 쉽게 얻게 되었다. 그렇게 본 영화들 중 좋은 영화도 나쁜 영화도 있었고, 좋아하는 영화도 싫어하는 영화도 있었으며, 2시간이 30분처럼 느껴지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90분이 3시간 처럼 느껴지는 영화도 있었고, 모든 것을 상쾌하게 해주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영화도 있었다. 좋아하는 감독, 배우, 촬영감독, 제작사, 영화제, 장르가 생겼고, 그 반대의 것도 생겼다. [내가 좋아한 2010년대 영화]는 이러한 과정 중에 계속 떠오르는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이 2010년대 최고의 영화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몇몇 영화는 그러한 의미로 선정했지만, 대부분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다. 사실 수많은 이들이 선정하는 온갖 '리스트'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로튼토마토 지수나 흥행성적 같은 지표들을 기준으로 삼지 않은 개인들의 리스트(와 그것들이 모인 영화전문 언론들의 리스트)는 대부분 나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선정된 영화들의 집합이다. 어쨌든 2010년대를 기억하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한 이 [내가 좋아한 2010년대 영화]는 직접 고른 100편의 영화에 대한 리뷰, 단상, 추억, 트리비아 등으로 채워질 것이다. 


 브런치북의 분량제한 때문에 [내가 좋아한 2010년대 영화]는 4개의 브런치북으로 나누어 발행할 예정이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의 22편을 1권, 2015년부터 2016년까지의 29편을 2권, 2017년의 22편을 3권, 2018년부터 2019년까지의 23편을 4권으로 나눈다. 2010년대 초중반부의 작품 수가 적은 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중고등학생이었고 지방 기숙사 학교를 다녔기에 극장을 찾을 일 자체가 많지 못했다. 시네마테크나 영화제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홀로 한 권을 차지한 2017년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2020년 현재 나의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하는 한 해라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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