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06. 2020

4. <엉클 분미>

원제:  ลุงบุญมีระลึกชาติ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출연: 삭다 카에부아디, 젠지라 퐁파스
제작연도: 2010

 자크 오디아르의 <디판>(2015)부터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루벤 외스틀룬드의 <더 스퀘어>(2017),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2018), 봉준호의 <기생충>(2019)로 이어지는 지난 5년 간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리스트는 영화적 성취 보단 전세계적인 계급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시사한다. <트리 오브 라이프>(2011), <아무르>(2012),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 <윈터 슬립>(2014)는 매해 더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 있었음에도 다소 관성적으로 선정된 작품들이다. 지루한 2010년대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리스트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2010년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일 것이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새로운 10년을 열어젖히는 해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여러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2000년 <정오의 낯선 물체>를 발표하며 장편 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했으며, 그와 거의 동시에 각종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무빙-이미지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엔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별자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핏차퐁의 작품들은 무빙-이미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를 넘나든다. 필름에서 비디오, 디지털 촬영을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영화관뿐만 아니라 갤러리와 미술관, 심지어 광주 국군병원에서의 퍼포먼스로도 이어진다. 2020년의 시점에서 아핏차퐁의 커리어 중간 즈음에 위치한 <엉클 분미>는 그의 전작들이 담아온 테마를 가장 집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친애하는 당신>(2001)에서 어느 커플은 정글의 강가로 향하고 그곳에서 관계를 가진다. 강물을 비롯한 액체들과 사람들이 뒤섞이는 이 장면은 강의 유동성을 국경, 분쟁, 퀴어, 사랑, 재탄생 등의 주제와 연관시킨다. <열대병>(2004), <메콩 호텔>(2012), <열대병>(2015)으로 이어지는 그의 장편영화들은 모두 이 주제를 공유한다. 인물들은 정글 속 강가나 개울로 향하며, 그곳에 몸을 담그고 어떤 마술적인 힘의 출현을 기대한다. <엉클 분미>는 아핏차퐁 영화에서 드러나는 정글 속 물가의 신비함과 마술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인 엉클 분미가 심장병으로 인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생이 시작된 동굴을 향해 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죽은 아내가 가족의 식사 자리에 나타나기도 하고, 실종됐던 아들이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정글을 거쳐 동굴로 향하는 여정을 떠난 그는 정글 한가운데 놓인 어느 개울가에 당도한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갑자기 메기와 공주에 연관된 설화를 보여준다. 개울가에 몸을 담군 공주에게 메기가 다가오고, 둘은 성관계를 가진다. 이 기이한 이야기는 전생과 현생, 현재와 설화를 가로지르는 아핏차퐁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다. 이 장면은 갑자기 끼어든 것이 아닌, 엉클 분미가 개울가에 당도했기에 등장한다. 아핏차퐁의 영화에서 정글 속 물가는 과거와 현재, 국가와 국가가 마주하는 공간이며, 물 속에 들어가는 인물은 이쪽과 저쪽의 이분법적 경계를 흐리고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한다. 물가는 인물의 분열과 인물(들)의 봉합,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유동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엉클 분미>가 2010년대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거의 유일하게 유의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엉클 분미>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라는 작가의 세계관을 압축하고 있으며, 일렁이고 반찍이며 한 공간에 정착하거나 어딘가로 흘러가 경계를 만들어내는 정글의 물가는 그 세계관의 중심이다.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촬영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세계의 어느 시공간을 카메라의 프레임으로 경계짓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엉클 분미>의 개울가를 중심으로 한 아핏차퐁 영화의 물가들은 표면과 이면으로 공간을 양분하고, 공간에 따라 흘러가며 경계를 만들고, 유동적이기에 경계를 흐리기도 하는 물의 속성을 일종의 마법적인 순간으로 끌어 올린다. <엉클 분미>가 앞서 언급한 다른 수상작들과 구분되는 뚜렷한 성취를 보여준 지점이 여기에 있다. <엉클 분미>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자신의 커리어 내내 이어왔고 이어갈 주제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전 04화 3.<나잇&데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