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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0. 2020

6. <북촌방향>

감독: 홍상수
출연: 유준상, 김상중, 송선미, 김보경
제작연도: 2011

 영화감독이었던 성준은 서울에 올라와 북촌에 사는 선배 영훈을 만나려 한다. 하지만 만남은 성사되지 못하고 다른 이들과 우연한 만남 만이 이어진다. 다른 날 성준은 영호를 만나 술집에 간다. 술집의 주인은 성준의 옛 애인을 닮았다. 또 다른 날 성준은 영호, 그리고 전직 배우와 함께 또 그 술집을 찾는다. <북촌방향>은 이러한 반복이다. 서울에 올라와 북촌을 향한 성준은 북촌을 벗어나지 못한다. 북촌의 골목골목과 같은 술집을 데자뷔처럼 맴돌던 그는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술자리에 앉은 채로 깜빡 잠이 들기도 한다. 선배를 만나고자 북촌을 찾은 성준은 그만 지박령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북촌방향>의 시간 감각은 이상하다. 영화의 시작은 분명 성준이 서울에 올라와 북촌을 찾은 첫날이다. 하지만 영훈을 만나는 날이 그다음 날인지, 언젠가의 또 다른 날인지 알 수 없다. 성준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언제에 위치해 있는지는 모른다. 술과 잡담에 취해 시간감이 사라지는 술자리의 감각 마냥 그는 북촌을 벗어나지 못하고 헤맨다. 사실 홍상수 영화의 많은 인물들이 어딘가를 헤매거나 정처 없이 걷는다. 게다가 그의 영화에는 같은 배우들이 반복해서 출연한다. <북촌방향>을 감상했다 하더라도, 영화를 본 이후 성준과 영훈이라는 이름이 유준상과 김상중이라는 배우와 단박에 연결되지는 않는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명은 캐릭터 대신 배우의 얼굴을 부각한다. 성준이나 영훈 같은 이름 대신 유준상과 김상중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다른나라에서>의 유준상은 해변의 지박령이다. 조금씩 변주되며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유준상의 자리는 언제나 해변이다. <밤과 낮>에서 김영호가 머무는 한인민박과 파리의 관광지들, <첩첩산중>의 모텔이나 <리스트>의 펜션 또한 그러한 장소들이다. <북촌방향>의 북촌은 그 장소가 하나의 동네로 확장된 것이다. 관객은 유준상이 머무르는 숙소가 어디인지, 반복해서 찾는 술집 외에는 어느 식당과 카페에 들르는지 알 수 없다. 그는 북촌에서 우연히 옛 지인들을 만나지만, 그것은 그가 북촌을 찾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그가 북촌에 있기 때문에 벌어진다. 그 안에서 사라진 시간 감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폐곡선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벗어날 수 없는 우연과 인연의 그물망, 자기 연민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지질한 감정은 한을 품은 유령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붙잡고 구천을 떠도는 것 마냥 북촌에 속박된 유준상의 몸에 담겨 있다. 홍상수의 카메라는 그 몸을 매개로 공간을 넘어 시간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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