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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4. 2020

10. <휴고>

원제: Hugo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출연: 에이사 버터필드, 클로이 모레츠, 벤 킹슬리, 샤샤 바론 코헨
제작연도: 2011


 마틴 스코세이지의 <휴고>는 남성들의 이야기로 대부분이 채워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는 파리 기차역의 시계탑에서 생활하는 아이 휴고와 기차역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조르주 할아버지의 손녀 이자벨의 이야기이다. 휴고는 아버지가 남긴 자동 인형 기계를 고치려 조르주의 가게에서 부품을 훔치려다 도리어 그에게 아버지의 수첩을 빼앗기고 만다. 휴고는 이자벨의 도움을 받아 기계를 다시 고치고, 기계는 어떤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은 오래된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고, 이자벨은 도서관에서 그 그림의 정체를 찾자고 제안한다. 이들은 그림의 정체와 함께 조르주 할아버지의 과거까지 알게 된다. 조르주 할아버지의 풀네임은 조르주 멜리에서, 자동 인형 기계가 그린 그림은 <달세계 여행>(1902)의 한 장면이었다. 휴고와 이자벨의 추리를 돕던 영화학자 르네 타바드는 조르주 멜리에스 회고전을 열고자 한다. 영화는 조르주 멜리에스가 만들어낸 마술과 환상의 세계, 마법사와 모험가들의 역할을 수행하는 영화 제작자들에게 헌사를 보내며 마무리된다.

 영화 속 조르주 멜리에스의 회고전이 시작되기 앞서, 조르주가 직접 자신의 영화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조르주는 기계를 고쳐 자신의 과거를 발굴한 휴고에게 감사를 표하고, 영화를 제작하는 모든 이들을 마법사, 모험가, 여행자, 마술사로 지칭한다.

 "제가 여기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용감한 소년 덕분입니다. 그 소년은 망가진 기계에 불과했던 것을, 누구나 '못 고친다' 했던 것을 고쳤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마술 중 가장 친절한 마술이었습니다. 오늘 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역할을 드려 호명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니까요. 마법사 여러분, 인어 여러분, 여행자와 모험가 여러분, 마술사 여러분. 저와 함께 꿈을 꿉시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마술사였다. 그는 영화를 마술의 장치로 처음 사용했으며, 영화에서 마술을 구현하고자 했다. 극 중 조르주는 무대인사를 마치고 중절모를 쓰며 담배를 입에 문다. 그리고 그가 프레임 한켠으로 이동하자 화면이 흑백으로 변하며 실제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가 등장한다. 재현된 조르주 멜리에스와 과거의 실제 모르주 멜리에스가 뒤섞이는 마법. 그 뒤로 <달세계 여행>을 비롯한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들을 몽타주한 장면이 이어진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 영화를 3D로 제작했다. 50년대 처음 개발되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가 사장되었고, 2009년 <아바타>를 통해 다시 부활한 3D 기술은 영화의 환영성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휴고>의 3D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처음 접했을 20세기 말~21세기 초 사람들의 충격을 재현하려 한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를 연상시키는 선로를 탈주해 역의 대합실로 질주하는 기차의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도서관 장면에서 <열차의 도착>이 삽입되기도 한다. 동시에 자동 인형 기계라는 소재는 영화를 만드는 기계적 특징을 드러낸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용하던 마네킹과 자동 기계가 뒤섞인 기계는 휴고가 머무는 시계탑, 그리고 휴고를 쫓아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역 검사관의 의족과 대비된다. 역의 모든 이들은 기계관리자인 휴고의 삼촌이 사망한 것과 휴고가 시계를 관리중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에게 역 시계탑의 시계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이다. 반면 상이군인인 역 검사관의 의족은 계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의 절뚝이는 발걸음과 함께 옷 속에 감춰져 있지도 않은 채 자신을 드러내는 의족은 기계이다. 영화는 기계장치를 통한 마법이자 환영이며, 마법은 기계장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열차의 도착>부터 3D 기술까지 아우르는 영화를 제작한 것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눈에 띠는 일이지만, 크게 특별한 일이 아닌 이유이다. 어쩌면 2010년대의 할리우드에서 이런 영화를 연출할 수 있는 것은 스코세이지 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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