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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Sep 09. 2019

공정을 부르짖는 2030 청년들에게

조국을 향한 분노는 온당한가


지난 금요일 조국 후보자 인사청문회 직후, 조국 후보자 부인에 대한 검찰의 기소 사실이 속보로 전해졌다. 야당은 그동안의 의혹이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며 사퇴 압력을 가했고, 여당은 검찰기관의 묵시적 협박으로 보고 이것이야말로 사법개혁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양쪽의 해석이 이토록 첨예하게 다르다.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대립구도 중 어느 한쪽에 치우쳐 다른 한쪽을 비방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 대한민국의 2030 세대 중 한 사람으로서 진영논리를 떠나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 문제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많은 청년들이 분노하고 있는 지점인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공정함’에 관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언론에서 쏟아내는 의혹 보도에 처음에는 조국 후보자는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야당 입장에서 조국 후보자 개인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 훨씬 유리한 패일 텐데 애먼 조국 후보자의 딸만 집요하게 문제 삼았다. 기자간담회와 청문회를 통해 지켜본 조국 후보자의 모습은 흔들림이 없었고 진정성 있었다. 자유한국당이 왜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청문회 보이콧까지 선언하며 후보자 본인의 발언 기회를 박탈하려 했는지 짐작되었다. 조국 후보자를 지켜보며 '도덕성에 도대체 어떠한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는 동시에 조국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분야에 대한 조국 후보자의 실력과 소명에 대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물론 후보자의 딸이 문제가 있다면 후보자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100만 건 이상 쏟아진 조국 후보자 관련 의혹 보도 내용 중 사실로 밝혀진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부정적인 일방향 의혹 보도에도 불구하고 조국 임명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전 국민적 관심사라 이미 다들 알고 있을 테지만 청문회에서 오고 간 진실공방의 사례 중 한 가지만 들어보겠다.


자유한국당의 주장 : 조국 딸이 서울대 대학원 시절 생활비를 포함한 장학금을 두 번이나 받아갔는데 재산이 56억이나 되는 집에서 장학금을 받아가는 바람에 가난한 학생들에게 돌아갈 기회가 박탈되었다.

민주당의 반박 : 서울대 장학금 수혜율은 2015년 기준 학부생 79.9 퍼센트, 대학원생은 89.5 퍼센트이다. 서울대 재학생 중 74.75 퍼센트는 소득 9, 10 분위의 최상위층이다. 소득 9 분위는 월소득 893~1,170만 원, 소득 10 분위는 월 소득 1,170만 원 이상으로 이를 쉽게 말하면 서울대 재학생 대부분이 고소득층 가정이라는 말이다.


이 주장만 놓고 보면 자유한국당은 현재 대한민국의 2030 세대가 느끼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에 공감하고 있는 듯 보인다. 민주당에 의하면 조국 딸은 학교가 정한 제도 내에서 많은 장학생 중 한 명으로 선발된 것이다. 실제로 최상위층 가정의 재학생 비율이 높은 서울대 내의 특성을 알고나니, 가난한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는 자유한국당 주장의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그런데도 조국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이 되든 되지 못하든, 자신의 딸이 받은 장학금에 대해서 사회에 환원 조치하겠다고 했다.)


위의 예는 자유한국당이 주장한 논리 중 하나이지만, 그들의 지속적인 주장은 위 사례와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일반화하면 사회적 약자의 박탈감을 배려해서 부자는 외고도 가면 안 되고, 좋은 대학교도 가면 안 되고, 봉사상도 받으면 안 되고,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도 받으면 안 된다. 그래야 공평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발상이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정도 되는 사람들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단지 그들은 국민들의 뜻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앞세운 진영논리 뒤에서 조국 후보자를 향해 '가진 자'라는 것 자체에 분노하도록 국민들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언론까지 가세해 지난 4주간 100만 건이 넘는 의혹 보도를 쏟아내며, 우리로 하여금 교묘하게 변질된 형태의 분노에 대해 자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부르짖는 이 사회의 ‘공정함’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 문제는 이미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부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동원해 온갖 고급 정보를 선점하고 그를 통해 좋은 기회마저 독식한다. 부를 가진 자가 점점 더 많은 것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빈부격차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루트로 제공되는 정보로 동일한 출발선에 서서 오로지 능력으로만 평가받고 인정받는 세상을 원한다. 이것이 바로 2030이 원하는 '공정함'이다.

 

실제로 나 역시 대한민국의 흙수저로 살아오면서 좋은 정보나 좋은 교육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소위 가진 사람들과 출발선이 다르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기에 ‘기회의 공정함’에 대해 그 누구보다 공감한다. 가진 자들에 대한 부러움이나 시기심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당연한 감정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하는 감정을 넘어,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에 분노해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우리의 분노는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극심한 양극화를 야기한 국가의 시스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일방적인 분노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히 부를 이용해 위법적으로 누군가의 기회를 박탈했다면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조국 후보자의 의혹에는 드러난 위법 사실이 없다. 그런데도 서울대와 고려대는 조국 반대 촛불집회를 하고 (서울대 집회 주동자는 트루스포럼-최순실 태블릿 조작설 유포- , 고려대 집회 준비자는 자유한국당 청년부 대변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나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수의 청년들이 이에 상당한 영향을 받기도 하며, 한 번 시작된 분노의 감정은 주체할 길 없이 심화되고 있다.  

조 후보자의 입장에서 어쩌면 자신을 향한 청년들의 분노가 조금은 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조 후보자는 “저와 가족이 당연하게 받아온 혜택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겸허히 고백한다.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닌 태생적 혜택 자체가 사과해야 될 일인지도 의문이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세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두에게 불평등하다. 부모의 재력, 외모, 재능까지 누구는 더 가지고 태어나고 누구는 덜 가지고 태어난다. 삶의 시작부터 불공평한 것 자체가 바로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이다. 부자로 태어나는 것? 예쁘고 잘 생기게 태어나는 것? 남들보다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억울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다. 또한 보이지 않는 계급이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를 벗어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빈부격차와 상관없이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 도래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우리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에 시간을 쏟아야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과 무분별하게 권력을 남용하고도 당연한 듯 면죄부를 얻는 것이 가능한 이 사회적 시스템을 어떻게 견제하고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과연 우리사회의 어떤 금수저가 자신이 당연하게 살아온 삶 자체에 대해 조국 후보자와 같은 사과를 할 수 있을까




왜 조국 만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사회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분쟁도 있을 수 있다. 이 분쟁을 조정하고 통제하기 위해 제도와 절차를 포함한 법이 존재한다. 그게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법 위에 존재하는 집단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검찰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이다. 우리는 긴 세월에 걸쳐 자정작용이 불가능한 기관은 적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목도해왔다. 과거부터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자각해 왔지만 실행된 것은 없다. 좌우 진영논리를 떠나서 검찰개혁과 반부패는 시대적 요구이다.


조국 후보자의 주요 사법 개혁안 중 하나가 바로 공수처(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처) 설치다. 검찰도 당연히 수사대상이다. 이 견제장치로 음습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로비는 쉽지 않을 것이고, 권력형 비리는 줄어들 것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밥줄과 명줄이 달려있는 무소불위의 기득권을 뺏긴다는 의미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이례적 압수수색과 조국 후보자 부인 기소는, 조국 만은 절대 안 된다는 강한 피력으로 받아들이기 충분했다. 법무부 장관으로 왜 조국 만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걸까? 지난 4주간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조국 후보자가 극소수의 기득권 위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정말로' 개혁할 수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국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될 수도 있고 임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임명권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고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알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건, 한걸음 떨어져서 이성적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의 부조리함에 당연히 분노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진보한다. 단, 우리의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은 근본적으로 '공정함'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이 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뺏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빤한 진영논리에 휘말려 비틀어져버린 현재의 분노가 우리 스스로를 소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우리가 본질에서 벗어난 분노를 멈추고 균형 잡힌 관점을 견지할 때라고 생각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나왔네요!

9월 9일 0시 부터 임기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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