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고 자란 게토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게토라고 하면 “서울 한복판에서 컸으면서 무슨 게토냐”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게토는 어디에나 있다. 밖에선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내가 나고 자란 게토로 들어가려면 우선 길고 긴 비탈길을 올라야 한다. 뒷산 하나를 껴안듯 두른 비탈은 모험자의 마음가짐을 검증하는 도입부의 시련처럼 그곳에서 게토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길고 길게 오르고 올라 기어이 그 꼭대기에 도착해 가쁜 숨으로 허리를 잠깐 펴면, 이내 가파르게 내려가기 시작하는 그곳에 우리집이 있었다.
잠깐 집에 들러야 한다. 스케이트 보드를 챙겨가자. 그냥 다니면 심심하니까. 초등학생의 나는 늘 그걸 타고 게토를 누볐다. 족발집 전단지 일주일 돌려서 산 2만5천원짜리 보드. 그건 세상 가장 고소하고 향긋한 보드였다. 삐걱대고 끼익거려 윤활제를 발라야 했으나 그런 게 있을 리 없으므로 찬장에 있던 참기름을 잔뜩 발랐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간 길을 걸은 사람은 왠지 고소한 향이 좀 나는 것 같고 갑자기 허기가 왔을 것이다.
뭐 결국엔 그것도 누가 뽀려갔다. 내가 나고 자란 게토에선 서로의 도벽을 서로가 감당해야 했다. 그걸 또 훔쳐가서 타고 다닌 얘는 누구였을까. 참기름 냄새 오졌을 듯. 고소한 새끼 같으니라고. 개를 풀어서 잡을 걸 그랬다.
어디로 가볼까. 날씨는 화창하고 좋다. 역시 당시의 초등학생은 일단 놀이터겠지? 참기름 냄새 오지는 바퀴를 굴려 놀이터로 달려가자. 가장 먼저 슈퍼를 지나친다. 우리집 외상값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부턴 눈치보여서 들어가진 않는다. 슈퍼 아줌마가 나오기 전에 빠르게 지나가자.
정육점이 보인다. 내 친구네 집이기도 하다. 연체료 내지 않으려 밤늦게 만화책 반납하고 돌아오던 날, 정육점 한켠에 딸린 좁은 방에서 네 식구가 먹고 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랬는지 도중에 형편이 어려워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여하튼 빨간 불빛 가득이라 밤에 화장실 가긴 편했을 것이다.
자, 놀이터에 도착했다. 보드를 타고 다니면 이렇게 금방이다. 뭐가 보이는가. 가장 먼저 곳곳이 불에 탄 놀이기구들이 보일 것이다. 그을린 기둥들은 페인트칠 아래 숨겨져 있던 나무의 식스팩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다. 미끄럼틀 아랫 부분의 쇠도 그을려있다. 모래를 좀 파고서 그 밑에 불을 피우면 무언가 구워먹을 수가 있다. 실제로 그 놀이터에서 메뚜기를 구워먹은 기억이 있다.
내가 나고 자란 게토의 놀이터에선 주로 땅을 파거나 불을 피우고 놀았다. 지능과 돈이 거의 없는 애들이기 때문이다. 지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보더콜리보다 아래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만약 개가 불 피우는 법을 알았으면 우리랑 똑같이 놀았을 것이다. 그러기를 며칠 정도 반복한 후 그래도 얘네랑 노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싸한 느낌에 우릴 손절했을 것이다.
한번은 풀숲 쪽의 땅을 파다 쥐가 나왔다. 진짜 쥐. 라따뚜이나 뭐 그런 상상 속 귀요미 친구들 말고, 진짜 더럽고 사나운 야생의 새끼 쥐. 파헤쳐진 쥐는 눈이 벌게져서 온갖 짜증을 내고 쌍욕을 해가며 미친새끼처럼 손을 물어댔다. 그런데도 우린 좋다고 하루 종일 쥐를 가지고 놀았다. 지능이 더 있던 여자애들(주로 한발 떨어진 벤치에 앉아있는 편이었다)이 질색을 하며 우릴 무식한 야만인 일가의 어린 자손으로 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놀았는데 병 걸려 뒤지지 않고 성인이 된 게 불가사의다. 그중 누군가는 정말 뒤졌을 수도.
놀이터의 밤은 매일매일 캠프파이어였다. 불장난은 언제나 핫했다. 어느 가을엔 바짝 마른 외곽 풀밭에서 불을 피우다 불길이 순식간에 커져 정말 좃될뻔한 적도 있다. 멘탈이 나간 나를 제치고 친구가 믿기지 않는 침착함과 순발력을 발휘해 발을 넓게 벌리고 부채꼴로 슥슥 문질러 불을 꺼줬다. 내내 순하고 조용하던 그 친구가 달라보였다.
그러고보니 분수불꽃을 손에 들고 빙빙 돌리다 불에 녹은 플라스틱이 들러붙었을 때도 그 친구가 재빠르게 손을 문질러 떼줬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린이 답지 않게 용감하고 위기대처능력이 뛰어난 친구였다. 게토의 생존력이리라. 자랑스럽다. 그 친구가 자라서 소방관이 되었다면 좋겠다. 그때 분수불꽃에 덴 자국은 그대로 내 오른손등에 흉터로 남아있다.
불장난 실컷 했다. 배도 고프니까 이제 집에 돌아가자.
사실 우리집의 진짜 주인은 바퀴벌레였다. 우린 그저 달의 주기에 맞춰 세를 지불하고 잠시 머물다가는 객일 뿐. ‘진짜 자리잡은 바퀴벌레’를 본 적이 있는가? 진짜 자리잡은 바퀴벌레는 더 이상 숨지 않는다. 오히려 시위하듯 모습을 드러낸다. 죽을 땐 보란 듯이 사람 정면에 나와 탄탄히 포장된 패키지 같은 알주머니를 툭 뱉어놓고 죽는다. 한마디로 나가라는 소리다.
그래도 그 집도 귀했다. 이후의 집들은 그보다 훨씬 형편없었으니까. 뭐 가끔 빚쟁이들이 멋대로 들어와 집안을 헤집고 냉장고까지 열어보고 그러긴 했다. 냉장고에 우유 있는 걸 보고 “돈도 못 갚으면서 애들 우유 먹인다”고 뭐라 하고 그랬다. 그런 기억들 역시 내 마음 어느 곳에 흉터로 남아있다. 반면에 어떤 빚쟁이는 돈 받으러 와서 쌀팔아주고 가기도 했다. 나는 그 헷갈림을 통해 인간의 다양성을 배울 수가 있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나름 행복했다. 어린시절을 다 돌아봐도 그 집에 살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