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내일을 기대하며 미소 짓는 것
올해로 10년차 직장인이 되었다. 10년 동안 총 세 곳의 회사를 다녔다. 회사의 필요로 다양한 TF와 직무를 경험하였지만 이것 저것 '중략'하면 상품기획자로 10년을 보냈다. 지금은 세번째 직장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일 욕심이 있는 편이다. 어디서건, 어떤 일이건 항상 평균 이상의 평가는 받았다. 회사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고, 주로 경영자에게 일의 성과를 직접 보고하다 보니 고과도 괜찮았다. 이달의 사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비교적 인정받는 직장생활을 보내왔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온전히 '나의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회사의 컨펌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 타협하고, 납기를 맞추기 위해 포기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이 팔기 위해 기획 의도를 수정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나의 것'에 대한 욕심이 쌓였다.
나에게 '기획'은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설계하고, 그대로 실행을 하고, 성공할 때까지 피드백하여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끝까지 실행하는 것이다. 상품기획자는 그 문제해결의 도구를 '상품'으로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을 설계해서, 제작하고, 출시하여, 그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매출을 살펴보고 피드백했던 것들을 다음 시즌에 적용하는 것이 상품기획자가 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좋은 성과도 거둬 보았고, 보통의 성과도 거둬 보았고, 아쉬운 적도 있었다.
상품 외적인 이유 때문에 매출이 좋기도, 저조한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유니클로 불매 운동이 한창 벌어질 때 마침 내가 기획한 상품은 날개 돋힌 듯이 팔렸었다. 상품을 잘 만들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불매 운동의 영향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떨 때는 잘 기획한 상품이 제조 과정에 문제가 생겨서 불량품이 생기고, 출시가 밀려서 판매가 굉장히 부진했던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드는 의문은 '나는 얼만큼 잘하는가?', '나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밥을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등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힘들 때는 매출이 안 나올 때가 아니었다. 이 상품이 왜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는지, 가격은 왜 이 가격이 적정한지, 디자인은 왜 이 디자인이 좋은지, 수량은 왜 이 수량이 적절한지를 PPT를 만들어서 회사를 설득해야 할 때였다. 사실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상사도, 동료도 모두 나의 고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아실현이 아니라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월급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의 자원을 쓰려면 응당 설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설득의 과정이 내가 느끼기엔 너무 지난했다. 내 능력의 문제인가, 아니면 필요보다 더 많은 설득의 거리들을 요구하는 회사가 문제인가.
상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기획자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격, 디자인, 물량, 메인 셀링 등에 대해서 기획자는 잘 설계해야 하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회사가 그 과정의 엉성함, 모순, 나태함 등을 지적하고 예산의 한계를 잘 알려주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기획자가 아닌 사람이, 사실 그 상품의 고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품에 대해 본인의 직관에만 의존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본인의 직관을 '고객'이 실제로 그렇게 느낄 것이라 가정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상품기획자보다 고객과 비교적 더 먼 사람이 상품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기획자가 자신의 상품을 위해 기획자답게 일을 제대로 했다는 것이 전제이긴 하다.
의사결정자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상품 기획의 가설이 부족하거나, 고객조사가 미흡했던 점이 드러나는 경우는 감사한 일이다. 결국 그 미흡한 점을 디벨롭 하는 과정에서 상품의 퀄리티가 올라가고 사람들이 더 좋아할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정인(주로 지위가 높은 특정인)의 호불호, 취향 때문에 "이건 별로네요"라는 단 몇 글자 안되는 피드백으로 기획자의 가설이 묻혀 버리는 것은 매우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발주 직전에 예정에 없던 품평회를 들어갔다가 '내가 보기엔 별로 같은데?'라는 이유로 드랍됐던 경험이 있다.
삶의 절반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그 일에서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을까 스스로 되묻게 된다. 과정이 즐겁고, 그 결과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묻게 된다. 나의 관심은 큰 성공,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것이 아니다. 옳은 과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것을 알아봐 줬으면 하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내가 만족시키고 싶은 사람들(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 좋은 제안을 하며 그들에게 영감을 주고, 나도 그들에게 영감을 받으며 사는 삶을 산다면 행복하면서도 떳떳한 삶이 될 것 같다. 가슴 뛰는 일이다. 단단하고 진솔한 브랜드를 만들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 사람들과 좋은 가치를 공유하고 싶다.
사람들이 내 브랜드의 제안을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하고, 믿고 구매하게 된다면.
출근하는 동료들이 매일 아침 기대하는 마음으로 회사 문을 열고,
퇴근 할 때는 뿌듯한 마음으로 퇴근할 수 있다면.
그런 브랜드를 내가 만든다면 아주 멋진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다고 한다. 회사 다니며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좋은 것만 할 순 없다. 싫은 걸 해야 하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 거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즐겁고,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삶을 위해 노력조차 안 해보는 것은 너무 아쉽다.
나는 어쩌다 행복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매일 행복하고 어쩌다 좀 짜증나는 일들이 있는 하루, 그런 일이 있어도 하루를 되돌아 보면 행복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다. 그게 인생의 목표다. 그래서 퇴근 하고 CEO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브랜드를 만들고, 상품을 만드는 시도를 해보자. 잘 안 될 수도 있겠지만, 후회 없이 노력하고,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서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보자.
우리는 매일 식사에서 편식을 하면서도, 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묵묵히 견디고 반복하는 걸까? 왜 시도조차 하지 않는걸까? 오만한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후회 없이 태워보잔 생각을 한다. 망한다면 피드백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된다. 가슴 뛰지 않는 아침을 보내기에는 아직 너무나 많은 아침이 남아 있고, 너무나 소중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