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미팅을 앞두고 두려움을 없애는 법

과연 이렇게 준비 안되었는데 미팅을 해도 괜찮은가?

by ownscale

공장을 만나러 가기 전에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처음에는 부족하다기 보다는 께름직한 느낌이었다. 이 상태에서 만나도 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지금 내가 준비한 상황을 회사 생활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다. 내가 회사에서 진행하는 일의 퀄리티와 지금 내가 이 가방을 진행하며 준비한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과연 이 기획안으로 이 가방 발주를 컨펌해 줄 것인가? 이 상태로 공장에 가서 샘플링을 당장 요청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다 생각했다. 지금 준비상황에서 공장에서 미팅을 할 때 중언부언하는 모습이 그려졌고 명확한 결과물 없이 시간만 낭비할 것 같은 예감에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회사에서와는 다르게 '온전히 나의 뜻대로 브랜드를 만들고, 상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여기에 쏟아 붓는 노력과 퀄리티가 회사의 중요 프로젝트에 쏟는 리소스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그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을 깨달으니 뒤통수를 쌔게 맞은 느낌이 들고 등에 오한이 살짝 느껴지기까지 했다. 무슨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데도 회사에서 하는 일의 2배, 3배는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를 이유와 함께 상세 디자인을 구체화를 시키는 작업, 그리고 상품패키지와 마케팅비까지 고려하여 이익 시뮬레이션을 미팅 당일 새벽 4시까지 돌렸다. 그리고 그날 아침 회사 연차를 내고 공장에 찾아갔다. 면목동쪽에 있는 공장 1개와 성수에 있는 프로모션 업체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가 어떻든 불완전 연소만은 하지 말자 생각을 했다. 반 타고 남은 반숯반목의 나무가 되는 게 아니라 까맣게 타버려 재가 되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 다짐했다.


IMG_8120.jpeg 정신을 차리잔 의미로 이름을 넣은 '대표' 명패를 주문했다


공장과 미팅을 하기 전 무엇을, 얼마에, 얼만큼, 언제까지 만들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의견을 정하려고 했다. 어떤 기능과 디자인을 가진 가방을 만들 것인지. 그걸 얼마에 만들 것인지. 수량은 최소, 최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필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했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이전에 어느 정도 구체화하긴 했지만 그건 개념적인 내용이 많았다. 공장에 말할 때 시시콜콜한 나의 포부를 말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술자리에서도 듣기 지겨운 이야기일 것이다. 심지어 당장 원단에 대한 지식도 없고, 직접 작지를 만들 수 있는 기술도 없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디테일을 가진 샘플을 3개 챙겼다. 1)원단 레퍼런스 샘플, 2)메인 디테일(수납방식, 밑판보강, 손잡이 등) 레퍼런스 샘플, 3)뒷면 디테일 레퍼런스 샘플. 내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실물로 보여주기 위해 레퍼런스 3개를 준비했다.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PPT에 원하는 부분들을 각각 정리했다. 정리하기 전에 가장 처음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어떤 가방'을 만들려고 하는지 원페이지 정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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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정리를 하면서 내가 타겟팅하고 있는 사람들은 "고급스러우면서도 실용적인 가방"을 원하는데 너무 격식을 차린 가방이거나, 너무 캐쥬얼스럽거나, 너무 비싸거나, 매일 들기 불편해 하는 불편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어느 정도의 작관도 있지만 타겟팅한 고객들에게 인기 있는 가방들의 리뷰를 하나 하나 읽어보며 내린 결론이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실용적인 가방을 만들자. 그럼 어떤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고급스러운' 가치를 주고, 어떤 부분에서 '실용성'을 줄 것인가를 결정할 일이 남았다.


'고급스럽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원단에서 올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일론 가방중 고급이미지를 가진 포터와 프라다가 모두 광택감 있는 소재를 쓰기 때문이다. 고시감이 느껴지는 고어택스 같은 광택이 덜한 원단은 기능성이라는 느낌은 들겠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장에 요청하는 원단은 '포터', '프라다' 가방의 원단과 비슷한 정도의 광택감을 가지는 나일론 원단이다. 이어서 붙는 것들은 짐이 안들어가도 쉐입이 유지되어야 하고, 무거운 걸 넣어도 마찬가지다. 이는 패드를 필요한 것에 넣고, 심지를 잘 써야할 것이다. 제봉하는 실도 일반 실을 쓸게 아니라 좋은 실을 쓰고 한국의 브랜드 공장에서 실을 찍어야 할 것이다.


'실용적이다'는 보다 복합적인 여러가지 것들이 섞여 있다. 나의 소지품을 (특히 노트북을) 잘 보호하고, 수납공간이 충분하고, 들고 다니기 편해야 한다. 이 니즈를 모두 만족해야 '실용적'이라고 사람들은 느낀다. 리뷰를 보다가 우스운 부분이 있었는데 15인치 노트북이 수납된다고 했는데 노트북 수납 가방쪽에는 13인치만 들어가고, 15인치를 넣으려면 노트북 보호 패드가 없는 일반 수납 부분에 넣어야 하는 가방이 있었다. 이건 절반의 사기에 가깝지 않나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내가 기획하는 가방은 16인치 맥북 프로가 노트북 전용 수납 가방에 들어가는 사이즈로 기획을 할 것이다. 디자인이나 코딩을 하는 사람들이 쓰는 전문가용 노트북의 이미지가 16인치 맥북 프로이기 때문에 이 정도 노트북은 충분히 수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에 추가로 바깥가방 포켓은 몇개로 할 것인지, 내부 포켓은 어떤 종류로 몇개를 할 것인지, 손잡이는 어떤 정도로 할 것인지, 외부 포켓에 이지 포켓은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지, 지퍼를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 컬러는 몇개로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정했고 관련된 것을 3개의 샘플로 모두 보여주고 PPT로 정리 했다. (이쁘게는 안했다. 머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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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만들까에 대해서는 이제 공장에 정리해서 말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실은 어떤 실을 쓸건지, 그 정도까지 디테일은 아직 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디테일링을 하려면 디자이너와 함께 작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 작지에는 이미 정한 원단 스와치를 붙이고, 실도 붙이고 해야할 것이다. 근데 그건 들이는 리소스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럴려면 디자이너를 공수해서 추가금을 또 들여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이중으로 들것이다. 그 정도는 공장에서 직접보며 그때 그때 결정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지식이 있는 디자이너라면 작지를 미리 100% 완성해서 가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이제 얼마에, 얼만큼, 언제까지를 정해야 한다. 이 영역은 시뮬레이션의 영역이라 엑셀, 계산기와 씨름하는 시간이다. 씨름하는 영역은 1)판매목표, 2)원가, 3)판매관리비, 4)기타비 크게 4개 영역으로 잡았다.


#판매목표

목표 원가를 가장 먼저 정하기 보다 우선 목표 판매가부터 정해야 한다. 이는 판매목표를 세우며 정해진다. 이 가방을 얼마에 팔 수 있을까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때 '이런 부자재고, 이런 기능을 썼으니까 이 정도는 당연히 받아야 해' 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이 가방을 어디에서 팔건지, 그 사이트에서 잘 팔리는 가방의 가격은 어떤지, 주로 얼마짜리 가방이 팔리는지, 경쟁 제품의 가격은 얼마에 형성되어 있는지, 시즌오프 세일 때 얼마에 할인해서 파는지 등에서 시작해야 한다. 합리적인 판매가격을 먼저 결정하고 거기서 원가를 역산하는 것이 좋다. 가격을 정 그렇게 정했으면 목표 판매량을 정한다. 가격 * 판매량 = 예상 매출이 된다. 그런데 발주량을 목표 판매량과 똑같이 하는 것보다 10% 정도 더 높은 수준으로 하는 게 좋다. 바꿔 말하자면 발주량의 100%를 다 판다고 하는 것보다는 90% 정도 판다고 하는 것이 좋다. (90% 판매율도 높은 수준이긴 하다)


#원가

판매목표를 정했으니 이제 원가는 역산하면 된다. 이 때 원가를 제조원가와 제조간접비 2개로 나누었다. 제조원가는 임가공비, 부자재, 원단비로 쪼갰다. 원단을 공수해서 공장에 맡기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택한 방식은 공장에서 한번에 원단, 부자재를 정하고 임가공도 그 공장에 맡기는 방법을 찾고 있다. 시간을 더 절약할 수 있고 처음 시도할 때 실행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예 공장에서 원단, 부자재, 패턴, 샘플링, 본물량 생산이 모두 공장을 소싱하고 있다. 다시 정리해서 말하자면 원가를 제조원가, 제조간접비로 쪼개서 보고 있는데 제조원가 = 임가공비 + 부자재 + 원단을 합친 값으로 공장에 물어볼 때는 다 합해서 얼마 정도 될까요를 물어본다. 제조간접비로 뺀 것은 샘플링, 상품을 포장하는데 드는 부자재 값이다. 샘플링은 공장에서 1, 2회 정도 받기 때문에 반복적인 비용은 아니고, 상품을 포장하는 비닐, 부직포 등은 발주량에 예상 단가를 곱했다. 이 제조원가, 제조간접비 2개의 합을 예상 매출에서 빼야 한다. 그리고 이 2개의 합을 총 발주액으로 나누면 그것을 원가율이라고 보면 된다.


#판매관리비

판매관리비로는 마케팅비, 플랫폼 수수료, 물류비 등으로 구성했다. 이 때는 정확한 단가를 쓰기 보다는 업계 평균으로 매출에서 몇 프로 정도를 할당하는지를 참고하여 예산을 산정했다. 마케팅비로 10~15% 정도, 플랫폼 수수료는 내가 판매 시작할 플랫폼의 수수료, 물류비는 보관비와 개당 운송료를 시뮬레이션 했다. 앞에 계산한 원가에 이제 판매관리비까지 빼면 된다. 이 때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뭔가 단단히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남는 게... 이것...?)


0aa5dabc-87e4-43e0-92d9-fac48eb5a3c2.jpeg?w=750&q=75&f=webp 비슷한 상황


#기타비

기타비는 1회성 비용을 모아서 넣었다. 행복회로를 돌린다면 초도 발주를 모두 팔고 리오더를 할 때 또 들지 않을 비용을 따로 빼놨다. 그러면 초도는 이익을 거의 못보더라도 리오더에서는 기타비의 비율만큼이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계산을 했다. 프로모션 업체를 끼고 할 경우에 드는 프로모션 비용, 상세페이지 제작 비용, 자사몰 홈페이지 제작 비용, 레퍼런스 샘플 구매 비용 등을 기타비로 구분했다.


판매목표에서 원가 빼고, 판매관리비 빼고, 기타비를 빼면 돈이 남는가? 정말 남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역마진이 되어 버렸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공장, 프로모션 업체 미팅 때 그쪽 수수료를 최대한 낮춰야 하거나 초도에서는 이익을 포기하고 리오더 때부터 버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 어둠이 무서운 것은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둠을 무서워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어둠 안에 무엇이 있든 그것으로부터 내 몸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다. 공장 미팅은 나에게 두려움이다. 대표로서 공장 사장님이나 프로모션 업체의 실무자를 직접 만나본 경험이 없다. 나의 요청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들이 어떤 요구를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하고, 어떤 원가 구조에서 이익이 나는지를 명확히 안다면 두렵지 않다. 감당 가능하다면 어둠속으로 들어가 눈을 번쩍 뜨면 되고, 감당 가능하지 않다면 다른 공장, 다른 프로모션 업체를 찾거나 아예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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