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첫 샘플이 나왔는데

나오긴 나왔는데

by ownscale

새벽 4시까지 미팅 준비를 하고 공장을 방문했다. 면목동에 있는 곳이 공장 사무실이었는데 그곳은 회사에서든 우리집에서든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게다가 공장 사무실이 서울이다 보니 운전하러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회사 출근하면서 공장 가는 길이 힘들기 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이 과정을 지나면 드디어 첫 샘플이 내 눈앞에 나올 것을 생각하니 드디어 뭔가 해내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샘플 요청사항을 정리해둔 PPT와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가방을 3개를 들고 갔다. 작업지시서는 결국 쓰지 못했다. 공장 사장님에게 실물과 열심히 준비한 PPT로 잘 설명을 드리면 작지가 필요 없을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머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이전에 한번 사전 미팅을 했던 공장 사장님이어서 소통하는 것에 따로 어려움은 없었다. 공장 사장님마다 성향이 다양한 편인데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사장님은 원단과 제조과정에 대해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는 분이었다. 가방의 만듦새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신 분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가방에 필요한 원단, 제조방법 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공장 사장님께 공유 받고 그것을 상세페이지 등을 통해 고객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장 사장님의 성향이 매우 중요했다. 반면에 피하려고 한 성향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믿음이 가지 않는 성향을 피하려고 했다. 무조건 된다고 하거나, 확실히 정해야 하는 것을 애매하게 답변하거나, 나중에 가서 말이 달라지는 것을 몇번 반복해서 보게 된다면 아무리 실력이 좋으셔도 이후에 거래는 안하겠다 마음을 먹었다. 팀장으로서 면접을 몇 번 보고 실제로 그 사람들과도 일을 해보니 어느 정도 쌔한 느낌 정도는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공장에 도착해서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준비해둔 PPT와 레퍼런스 샘플을 가지고 가방의 외양, 끈, 원단, 내부수납, 외부수납, 가격대, 손잡이, 지퍼 등을 꼼꼼히 말씀 드렸다. 작지가 없다 보니 사장님께서 메모를 하셨는데 메모 내용을 보며 약간 불안하긴 했다. 이를테면 안감 색깔을 '틸 그린'을 띤 이미지를 보여 드렸는데 메모에 '녹색'이라고 적으셨다. '틸 그린'이라고 적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단 스와치를 보고 하나 하나 확정한 것이 아니라 걱정이 들었다. 나중에 저 메모로 지금 결정한 색깔이 샘플에 그대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외에도 지퍼의 크기, 길이나 손잡이의 모양 등이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런식으로 할게 아니라 작지를 가지고 그 작지에 원단 내용이나 부자재 내용마다 스와치를 붙였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한 그 때 실제 부자재나 원단을 확정했어야 했는데 어련히 사장님께서 잘하시겠지란 생각을(뭘 믿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했다.


어쨌든 1시간이 조금 넘는 미팅 시간동안 설명을 드리고 사장님의 메모지와 레퍼런스 샘플을 놔두고 공장을 나왔다. 홀가분한 마음이 컸다. 샘플비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들었다. 35만원을 샘플비로 드리기로 했는데 부자재도 YKK를 쓰겠다고 했고, 수납 등 공임이 들어갈 곳이 많아서 그려려니 했다. 사실 처음엔 40만원까지도 말씀 하셨는데 그건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내려간 가격이다.


KakaoTalk_Photo_2025-02-23-15-23-31 006.jpeg
KakaoTalk_Photo_2025-02-23-15-23-30 004.jpeg


중간 중간 샘플링 하시는 사진을 보내주십사 말씀을 드렸는데 사진 뿐만 아니라 동영상도 보내주셔서 감사했다. 그런데 진행하다 으악 싶었던 부분은 메모를 도중에 잃어버렸다고 전화로 샘플에 대해서 물어보셨을 때다. 작지 없이 진행되는 샘플이라 사장님께서 직접 적으신 메모가 곧 작지인데 그걸 잃어버리시다니. 샘플 제작 가능하시겠냐 여쭤보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씀을 주셔서 반신반의로 알겠다 대답은 드렸었다.


샘플하는 과정에서 지퍼의 반사광이 너무 눈부실 정도라 부식 디테일을 요청 드렸었고, 안감 색동 틸 그린을 요청 드렸는데 샘플 단계에서 모두 맞추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럼 샘플단계에서 못 맞추면 나는 무엇을 보고 의사결정을 해야하나. 너무 리스키 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맞나? 다른 공장은 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나에겐 이건 너무 이상한 과정이었다. 돈이 얼마 들든 본 물량 들어가기 전에 샘플은 확실히 내야하지 않나 싶다. 이 부분에서 사실 공장 사장님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지긴 했다.


2주 정도 지나서 샘플을 받을 수 있었다. 원래 말씀하신 샘플링 일정보다 1주 정도는 밀리긴 했다. 그래도 1주 정도면 샘플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미뤄질 수 있는 일자라 생각을 했다. 샘플이 완성 됐다는 말씀에 기대되는 마음에 회사일을 아주 열심히 해서 이른 시간에 끝내고 분당에서 면목동으로 차를 몰았다. 출근으로 인한 피로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몇번 방문해서인지 이제 서울 길도 눈에 익어가기 시작했다.


사장님을 뵙고 샘플 완성된 가방을 봤을 때 만듦새 자체는 만족스러웠지만 사실 내가 의뢰했던 부분과 큰 부분에서 많이 다른 샘플이 나왔다. 이 샘플 가지고는 대량생산 의사결정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샘플이었다. 가방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메인 수납과 노트북 수납 공간의 지퍼가 아예 서로 바뀌어서 달려있었다. 메인 수납 부분은 캐리어가 열리는 것처럼 180도처럼 열리도록 지퍼를 다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노트북 수납 공간 부분에 지퍼를 바꿔 다셨다. 요청 드린적 없던 확장형 지퍼가 가방 하단에 달려 있었다. 짐이 많이 들어가면 지퍼를 풀어서 수납 공간을 넓히는 디테일이다. 무엇인지 알지만 내 가방엔 전혀 기획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안쪽 매쉬 수납에는 지퍼를 달아 달라 말씀 드렸는데 달려있지 않았다. 하하.


추가로 가방의 무드 자체가 너무 각지게 나와서 캐쥬얼한 느낌이 아니라 서류가방 느낌의 격식 갖춘 느낌만 너무 드는 것도 문제였다. 이 부분은 전체적인 가방의 쉐입 부분과 앞에 달린 큰 주머니 2개의 쉐입이 너무 네모 각져서 그런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디자인적인 부분이라 명확하게 작지로 소통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있다.


KakaoTalk_Photo_2025-02-23-15-31-02 002.jpeg
KakaoTalk_Photo_2025-02-23-15-31-02 003.jpeg
KakaoTalk_Photo_2025-02-23-15-31-01 001.jpeg
의뢰 했던 것과 중요한 부분이 다른 샘플


샘플이 다르게 나올 순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신뢰할 수 있는 사장님과 일할 필요가 있는데 샘플링 과정과 앞으로에 대해 사장님이 말씀 해주신 내용들에 실망을 많이 했다. 샘플은 우선 이렇게 나오긴 했는데 우선 대량생산 본 생산이 들어가고 그 때 다 바로 잡겠다는 말씀이었다. 즉 2차 샘플은 하지 말고 그냥 바로 본 생산에 들어가자 말씀하셨다. 그리고 가방에 대한 나의 기획의도를 말씀 드렸을 때 기술적인 어려움이나 원가적인 어려움에 대해 의견을 주시는 게 아니라 기획 자체에 반대를 하시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도로 가방을 만들려고 하는데 단순히 의견을 주시는 게 아니라 이 의도는 이래서 안 좋고, 저래서 안 좋고 말씀하시니 뭐 어떻게 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세모로 만들어 주세요 라고 말씀 드렸는데 "아뇨. 요새 세모는 아무도 안 들어요. 네모가 유행이라 네모로 해야해요"라고 말씀 하시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나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2차 샘플 비용을 적절하게 지불하고 샘플링을 한번 더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사장님께서 워낙 오랫동안 가방을 전문적으로 만드신 분이셔서 가방 자체의 만듦새는 준수했다. 우리나라에서 꽤 규모 있는 SPA 브랜드에서도, 리빙 브랜드에서도 기획MD를 하면서 대량 생산 들어가기전 샘플은 오히려 본품보다 더 신경써서 만든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감안하더라도 만듦새가 좋았다. 하지만 가방의 전체적인 무드, 무게, 수납의 메인 컨셉, 지퍼 등이 너무 달라서 지금 샘플로 이후 과정을 진행하는 것은 넌센스인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사장님은 바로 본 물량 발주하자고 하시니 앞으로 함께하긴 어렵다 생각했다.


2차 샘플은 다른 공장에서 해야겠다고 가장 결정적으로 마음먹게 된 이유가 있다. 사장님께서 미팅 시에 본인이 진행하셨다는 가방 레퍼런스들이 꽤 있었는데 몇 개는 자료 조사를 할수록 사장님이 하신 게 아닌 것 같았다. 사장님이 만드셨다고 말씀하신 가방의 인터넷 상세페이지에 제조업체 인터뷰가 있어서 들어가 보니 다른 공장 사장님이 인터뷰 하신 게 있었다. 그리고 처음 사장님을 뵈었을 때부터 이전에 만들었던 다른 가방에 대한 사진 자료를 엄청나게 가지고 있다 하셔서 나중에 공유해주시기로 하셨는데 공유 날짜를 3차례 정도 미루시더니 본물량 발주 들어가기 전에는 보여줄 수 없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곧 보내주겠다고 하시고, 다음엔 바빠서 나중에 보내주겠다고 하시고, 이제는 본 물량 발주가 들어가야 보내줄 수 있다고 하시니 뭐가 맞는지 모르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겪고 나서 나는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1차 샘플이 나왔고 이 과정을 잘 피드백 삼아서 2차 샘플을 잘 만드는 기회로 삼는 것이 지금으로서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다. 다음 가방 공장 혹은 프로모션 업체를 찾을 때 아래 조건을 충족해줄 수 있는 곳을 찾아 보겠다.


☑️ 완성한 1차 샘플을 가지고 원단, 부자재 등의 디벨롭 포인트를 말씀 드렸을 때 어떤 원단이면 좋겠다, 어떤 부자재면 좋겠다 제안 가능하신 곳.

☑️ 가방에 들어가는 나일론 원단, 부자재 등에 대해 각 원단과 부자재가 타 브랜드 어디에서 잘 쓰고 있는지, 다른 소재보다 어떤 점이 강점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는 곳

☑️ 샘플 들어가기 전에 샘플 제작할 모든 원단과 부자재에 대해 실물을 보고 확정하고 샘플링을 할 수 있는 곳

☑️ 본 생산 들어갈 때 원단, 부자재비, 임가공비를 구분해서 견적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곳


1차 샘플 하는 과정이 회사일을 하는 것보다 어설프게 진행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첫걸음을 했다. 상심하지 말고 뚜벅 뚜벅 돌쇠처럼 잘 전진해서 끝은 봐보자고 다시 다짐하게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