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째 샘플링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타협은 없다.

by ownscale

커뮤니케이션과 신뢰의 문제로 1차 샘플링 공장(A업체)을 뒤로 하고 새로운 곳을 찾기로 했다. 새로운 곳을 찾겠다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결정이었다. 지금 공장과 쌓은 관계와 투입한 자원(시간, 샘플링 비용)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 사장님과 어느 정도 적당히 타협하고 본물량을 생산할까? 잘 말씀 드려서 2차를 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내가 왜 가방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고 싶어했는지를 떠올렸다. 나의 기준과 회사의 요청을 적당히 타협하며 월급쟁이로서 낸 성과에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에 직접 해보려 하는 것이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에 대한 대답으로 '그래 내가 직접 뛰어볼게'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시험해보려 도전하고 있는 와중이다. 그러니 적당히 타협할 순 없었다.


이번엔 공장이 아니라 가방 전문 프로모션 업체(B업체)를 찾았다. 네이버카페 '봉제네'를 통해서 알게 된 곳이다. 포트폴리오를 보니 디자인 감도가 높은 여자 가죽 가방이나 에코백등을 전문으로 만드는 곳처럼 보였다. 규모도 있어 보이고 샘플실과 상담 실장님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 공장 보다는 훨씬 체계적일 것이라 기대했다.


프로모션 업체를 끼고 하면 아무래도 공장과 직접 하는 것보다는 수수료가 추가로 발생한다. 그래도 원단, 부자재 등에 대해 전문가의 조언을 더 쉽게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프로모션 업체를 통해 샘플링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샘플이 나온다면 물량을 늘려 중국 공장에서 본물량을 생산하면 프로모션 수수료는 어찌 되겠다 생각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작업지시서를 열고 수정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A업체에서 제작한 샘플을 오리지널 샘플로 삼다보니 작업지시서를 만드는 것이 더 수월했다. 제작 샘플이 없었을 때는 3개의 서로 다른 브랜드의 레퍼런스에서 따오고 싶은 부분을 짜집기 하여 작지에 넣다보니 작지 자체가 굉장히 복잡했었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성수의 프로모션 업체(B업체)에 미팅을 갔다. 실장님이 젊어 보이셨는데도 이미 여러차례의 프로모션 경험이 있으신 것 같아 믿음이 갔다. (*프로모션 업체는 에어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조공장과 판매하려는 사람을 잇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유명 인플루언서가 프로모션 업체를 통해 공장과 소통하여 상품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원단, 부자재, 박음질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제안을 해주셨다. 그런데 샘플링 하려는 가방에 대한 요청사항을 말씀드릴수록 "가방이 복잡해서 샘플실에서 안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샘플비도 엄청 비쌀 것 같은데...", "이전에 샘플링 하시는 곳도 잘하는 곳인데 차라리 거기서 하시는 게 낫지 않으세요?"라고 말씀을 하셨다. 이런 질문이 오면 뭐라 대답할지 어렵다. 샘플링이 명확하게 안된다는 말씀은 아닌 거 같고, 샘플링 비용이 비싸다는 것도 얼마인지를 모르겠고, 이전에 공장에서 할 수 있으면 거기서 했을터이니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어 가만히 듣고 있었다. 샘플링이 불가하다면 돌아오려 했는데 다행히(?) 샘플링을 진행해보시겠다고 하셔서 오리지널 샘플을 놔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샘플링으로 나올 가방이 기대되기도 하고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며칠이지나 B업체에서 대략적인 원가를 알려주셨다. 그런데 또 며칠동안 얘기를 나누다 결과적으로 샘플링을 B업체에서는 못하게 되었다. 샘플이 난이도도 높고, 원가도 매우 높은 편이라 진행하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판교에서 회사 다니면서 성수까지 가기 위해 반차도 쓰고 연차도 써가며 이래저래 시간과 마음을 많이 썼는데 허탈했다. 그래도 샘플링을 진행했다가 막상 이상한 걸 받는 것보단 다행이다 여겼다.


안됐다가, 됐다가, 안됐다가


이제 두번째 샘플링을 위해 다른 업체를 찾아야할 판이다. 봉제네 카페에서 이전에 쪽지를 주셨던 업체나, 괜찮은 곳이라고 눈여겨 보았던 곳에 다시 연락을 돌렸다. 이번에는 프로모션 업체가 아니라 공장으로 보이는 곳에 연락을 드렸다. 프로모션 업체가 대부분 디자인 감도가 있는 여성 가죽 가방이나 에코백 중심으로 가방을 다루는 것 같아서 복잡한 가방을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공장이 낫겠단 생각을 했다. 첫번째 샘플링을 한 곳은 그런 면에서는 가방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나의 무지와 애매한 태도가 오히려 좋은 제조공장을 선택지에서 없애게 한걸까?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C업체를 찾아 면목동까지 갔다. 사장님이 적극적이셨고 소통이 잘 되었다. 이전 포트폴리오를 보니 수납공간이 많이 달린 탄탄한 캔버스 가방을 만들어 보신 경험이 있는 것 같아 찾아 뵙게 되었다. 첫번째 찾아갔던 곳은 공장 한켠에서 미팅을 했었고, 두번째 찾아갔던 곳은 위워크 느낌의 깔끔한 오피스 같은 곳에서 하고, 이번에는 사무실이긴 한데 1층이 상가인 빌라에 딸려 있는 사무실이었다. 외형과 내부 인테리어가 뭐가 중요하겠냐만 지금 생각해보니 첫번째와 두번째를 반반 섞은 애매한 포지션이었던 거 같긴 하다. 공장이 아니라 사무실이니 직접 가방을 생산하시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프로모션을 전문적으로 한다기엔 성수 프로모션 업체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그래도 점잖으신 태도와 적극적으로 일정 제안 등을 해주시기도 했고, 진행하셨던 가방 중에 완성도가 좋은 가방이 있는 것을 보며 여기서 샘플링을 해보 생각 했다.


이번에도 부자재와 원단 등을 내가 직접 수급하지 않고 사장님이 제안해주시는 것을 검토하려 했다. 오리지널 샘플을 들고 이것과 같은(혹은 비슷한) 원단, 부자재가 무엇인지를 역으로 물어보았다. 지금 생각하니 아쉬운 건 첫번째 샘플링할 때 원단, 부자재 정보를 하나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샘플링을 할 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해서 난감했다. 가방을 만드는 분들이라면 원단만 보면 척하니 어떤 원단인지 쉽게 아시리라 생각했다. 근데 사실 원단도 종류가 너무 여러가지고 미묘하게 다른 것들이 많아서 똑같은 원단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A업체에 다시 연락해서 정보를 물어보는 것도 어려웠다. C업체 사장님께서 한번 최대한 찾아보겠다 말씀하셔서 잘 부탁드린단 말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어느새 늦은밤이 되었다. 깜깜한 고속도로를 거슬러 집으로 돌아가며 사장님께서 잘 찾아주시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사장님께서 아예 원단 업체, 부자재 업체를 같이 돌자고 하셨다. 회사를 다니며 진행하고 있는터라 원부자재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 경우 시간이 또 많이 늘어나기에 맞는 말씀이셨다. 직접 신설동을 한번 둘러보는 게 이후에도 도움이 되겠다싶어 흔쾌히 좋다 말씀 드렸다.


평일 오전부터 일찍 면목동 사장님 사무실에 들렀다. 하필 비가 주륵주륵 왔다. 사장님이 알고 계신 업체에 들러 원단 스와치를 둘러봤다. 부자재도 둘러보았다. 완전히 딱 마음에 드는 건 찾지 못했지만 괜찮아 보이는 것들을 골랐다. 혼자 하려고 했으면 어디를 둘러봐야하는지 알아 보는 시간도 꽤 걸렸을텐데 사장님과 함께 다니며 좋은 경험을 했다. 샘플 원단을 한번도 구매 해본적이 없으니 혼자였다면 어마어마하게 시간낭비하며 헤맸을 것이다.


사장님과 함께 수납에 쓸 메쉬 원단, 메인 원단, 내부 원단, ykk 지퍼, D형 고리 등 여러가지 것들을 샀다. 원부자재를 구매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사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게 흠칫했었다. 내가 하고 싶다는 일을 하는 과정인데 귀찮다는 마음이 들다니? 하지만 다행히도 가방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 하나 찾아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다.


ykk지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에서 지퍼를 샀다

부자재를 다 사고 C업체 사장님과 함께 샘플실을 찾아갔다. C업체는 주로 여기서만 샘플링을 진행하시는 것 같았다. 나이가 꽤 있으시고 딱봐도 가방 외길인생으로 30년은 하신 것 같은 분이어서 믿음이 갔다. 오리지널 샘플과 구해온 원부자재를 보여드리며 가방에 대해 설명을 드렸는데 샘플실 사장님께서 "도대체 무슨 소리인줄 모르겠네"라고 하셔서 순간 멍했다. 이거 다른 곳을 찾아야하나 싶었지만 내가 대접받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 다시 한번 차근차근 설명을 드렸다.


설명을 끝마치고 나서 작지도다시 수정해서 드렸다. 정말 필수적인 설명 빼고는 다 작지에서 지웠다. 왜 이런 디테일을 하려고 하는지 의도를 설명한 부분도 없앴다. 이를테면 '그립감을 좋게 하기 위해서 솜 본딩을 핸들 부분에 넣습니다' 라는 것을 뺐다. 사실 이런 코멘트들을 넣었던 것은 혹시 더 좋은 제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샘플링만 전문적으로 하시는분이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냥 모두 삭제했다.


원단, 부자재를 직접 구매해서인지 이전보다 기대가 더 되었다. 그러나 결론은 1차 샘플과는 다른 방향으로 처참한 2차 샘플이 나왔다. 1차 샘플은 가방 만듦새는 괜찮았는데 기획서와 다른 가방이 나와버려서 문제였고, 2차 샘플은 기획의도는 맞는데 만듦새가 별로였다. 그리고 이번에 함께한 C업체도 이제야 생각해보니 프로모션 업체였다. 직접 공장을 운영하시는 것도, 샘플링을 직접하시는 것도 아니고, 나일론 원단이나 부자재에 대한 지식도 생각보다 부족하셨던 거 같다. 사전 조사나 미팅 과정에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안목이 원인이었다.


이번 2차 샘플의 문제는 여러가지다. 일단 원단이 프라다 나일론 원단처럼 빳빳한 느낌을 줘야 하는데 사장님과 상의해서 고른 원단은 만들고 보니 부드러운 원단이었다. 작은 스와치로 봤을 때는 빳빳한 줄 알았는데 가방으로 만들어보니 말랑하고 폭신했다. 가방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내가 의도한 것과 아예 다르게 되었다. 가방 혼자 세웠을 때 설 수 있어야 하고, 탄탄한 느낌을 주어야 하는데 지금은 항공점퍼 같은 원단이라 포터 탱커 가방과 다를바가 없었다. 앞 포켓은 잘못 재단되어 몸판과 비율이 맞지 않아 얄팍한 느낌이 났다. 가방 내부의 컬러 매치에도 문제가 있었다. 내부 메쉬 수납 부자재의 녹색컬러와 안감 베이스 컬러의 녹색 톤이 미묘하게 달라서 저렴한 느낌을 주었다. 내부수납에 달린 지퍼나, 해리 부분이 녹색이 아니고 검정색이다 보니 내부 색배합이 균일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왼쪽이 2차 샘플, 오른쪽이 1차 샘플


2차 샘플이 아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들고 다니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1차 샘플은 첫 샘플이어서 못난 자식일지라도 정이 갔는데 2차 샘플은 아니었다. 그래도 들고 다니며 더 피드백 해서 3차에 반영하자는 마음에 한달 정도를 들고 다녀봤다. 들고 다니다 보니 처음엔 발견하지 못했던 피드백 포인트를 찾은 것은 다행이었다. 이를테면 지퍼 슬라이더 (손잡이)가 너무 작아서 지퍼를 열고 닫는데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큰 지퍼 슬라이더를 찾아야 한다. 앞주머니 찍찍이를 떼는 것이 번거로울정도로 잘 안 떼어진다.(이건 지금 어떻게 개선 해야할지 모르겠다.) 계속 사용하다 보니 알수 있었던 개선 포인트였다. 들고 다니며 발견한 가장 큰 문제는 노트북을 넣고 가방을 들어보면 형태가 심하게 찌그러진다는 것이다. 이건 샘플실 사장님과 C업체 사장님께 아쉬운 마음이 든다. 가방을 많이 만들어보신 전문가분들이시니 충분히 조언해 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싶다. A업체에서 만든 1차 샘플링에 이런 문제는 없었다.


이거 보고 속이 상했다.


2차 샘플이 완전 무의미 한 것은 아니었다. 완성도나 퀄리티가 기대 이하였던 것이지 의도했던 기능 거의 90% 구현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샘플을 들고 다녀보니 가방이 주는 편의성이 흡족했다. 내부 메인수납 부분이 캐리어처럼 180도로 활짝 열려서 가방 내부를 정리할 때 편했다. 가방을 조금 열어서 이어폰 등 작은 소지품을 넣을 때 메쉬쪽에 바로 똑 떨어트려서 넣을 수 있다는 점도 편리했다. 내부 수납이 메쉬망과 PVC로 되어 있다 보니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가방 후면 부분은 3개의 작은 포켓을 두어서 이동하다가 핸드폰을 바로 넣다 뺐다 하기가 간편하다. 이 후면 3포켓의 활용도가 가장 높다. 가운데에는 핸드폰을 넣고, 왼쪽에는 사원증, 오른쪽에는 차키를 넣는데 가방 지퍼를 열지 않고 바로 넣고 뺄 수 있다는 것이 참 편했다.



2번째 샘플링의 실패를 통해 깨달은 것은 '적당히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타협하지 말자고 해놓고 원단과 부자재 셀렉을 하는 과정에 타협을 했더니 결국 탈이났다. 돌이켜보니 대표님에게 중요 보고 할 때보다 덜 치열하게 고민하고, 덜 절박했던 거 같다. '내 것'을 하기에 당연히 가장 절박하고,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할 거 같았는데 막상 그러지 않는 내 모습을 돌이켜보며 반성을 많이했다.


그래서 세번째 샘플링을 진행할 때는 직접 동대문 시장, 신설동 시장에 들러서 만족할만한 부자재, 원단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너무 요구하면 예의가 아니겠지?'라는 한심한 생각들로 적당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세 업체와 샘플링을 진행해서 2개의 샘플링을 해보았는데 얻은 것이 많다. 당장은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내지 못했어도 성공할 때까지 멈추지 않으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는 말을 나는 잘 안다. 세번째 샘플은 더욱 더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것을 믿는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을수록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하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것은 아니구나라는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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