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만한 파트너 하나 있었으면

나의 것에 도전할 때 준비물 '1번'

by ownscale


- 반년 동안 확정 샘플 0개

브런치에 'ownscale 브랜드 도전'과 관련한 첫 글을 쓴 것이 24년 9월이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라 샘플링 진도가 느린 건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원단 찾고, 업체 미팅하고, 설명하고, 피드백하고, 발주하고 그렇게 총 4개 업체를 만났다. 4개 업체와 미팅하며 지금까지 샘플은 2개를 냈다. 두 곳은 해보겠다, 해보겠다 하셨지만 결국은 못하겠다 하셨고, 두 곳은 샘플링은 했으나 샘플 디벨롭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열심히 했으나 목표보다 굉장히 느린 속도다. 열심히 했나? 네. 잘했나? 아뇨.


심지어 최근에 샘플링 의뢰한 4번째 프로모션 업체는 6월 3일에 샘플링 발주를 했는데 부자재 수급도, 샘플링 시작도 아무것도 안 한 채로 3주가 지나서야 바빠서 못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샘플 발주와 함께 전달드렸던 레퍼런스 샘플들을 어쩌다 보니 한 달 지나 돌려받았다. 그 한 달 동안 샘플링관련해서 아무런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망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6월 한 달 동안의 시간이 아까워 속이 쓰리다.


가방기획서 히스토리.jpeg 샘플링을 위해 혼자 생산한 문서만 한가득


- 능력 있는 좋은 사람이 보물

그러다가 최근에 평소 전혀 연락을 안 하던 첫 직장의 베테랑 생산 선배님들을 찾아뵈었다. 1년에 몇 백억의 물량 핸들링을 하셨던 분들이다. 성격상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기도 하고,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라 낯선 미팅을 어려워한다. 선배님들을 한분 한분 찾아뵙는 것은 낯선 미팅인 데다 거의 부탁을 해야 하는 터라 마음의 부담이 컸다. 그래도 선배님들과의 자리를 갖게 된 것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며 내 성격상 용납이 안되고,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냈었다. 나의 것이 아닌 남의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막상 내 것을 할 때는 그것보다 덜 열심히 하는 게 아닐까 되묻게 되었고 결국 이곳저곳 연락을 하며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뵈었다.


찾아뵙기까지 쉽지 않았지만(오직 나의 내적인 문제 때문에) 막상 뵙고 나니 왜 이제야 찾아뵈었나 싶을 정도였다. 1시간 남짓씩 만나 뵀을 뿐이지만 지난 여러 차례의 공장 미팅을 했을 때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느낌을 받고 심지어 속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전에 직접 찾아서 방문한 곳과 미팅이 끝났을 때는 어딘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거나, 싸-한 느낌이 있었는데 선배님들과의 미팅은 될 것 같은 느낌에 신이 났다. 가장 좋은 것은 가방의 퀄리티와 관련된 부분으로 의견을 나눌 때 고민하는 레벨이 비슷한 것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었다. 거의 10년 만에 얼굴을 뵌, 밥도 따로 먹어본 적 없는 선배님들께 지금 상황을 얘기드린 것인데 언제든지 연락하면 도움을 준다 말씀을 하셨다. 아직 도움을 받기 전이지만 나의 고민을 솔직히 말할 수 있고, 암묵적으로 퀄리티의 수준을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지난 반년 간 느끼지 못했던 안도감을 느꼈다.


맨 처음 "가방을 만들겠다", "내 걸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인생의 선배, 회사의 선배들에게 얘기했을 때는 "누구 함께할 사람이 있어?"라고 물어보셨다. 전 직장 대표님께서는 "팀은 세팅이 된 건가?"라고 물어보셨다.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속으로 '그런 게 굳이 필요한가?' 생각했다. 회사에서나, 회사 밖에서나 나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해내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 울타리에서 나오니 같은 도전이라도 회사에서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난이도가 높아진 현실을 만났다. 회사의 명함을 가지고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은 어느 정도 평균의 능력을 갖췄거나, 그 이상의 능력을 갖춘 업체들이다. 그것이 회사가 가진 힘 중 하나다. 그런데 회사를 밖에 나오면 말 그대로 야생이다. 야생에서는 이게 독버섯인지, 먹어도 되는 버섯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입에 넣어볼 수밖에 없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협력할 만한 수준을 갖춘 업체 후보를 리스트업 하는 것 자체가 1인 사업자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올 1월부터 샘플링 업체와 미팅을 시작했는데 반년이 지나도 아직 확정 샘플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사실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팀원이 나한테 "팀장님, 죄송한데 반년이 지나긴 했지만 아직 샘플확정을 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 상상도 하기 싫다. 명함 만드는 것에도 2주일이 걸렸다. 원하는 디테일을 잘 전달하는 것도 일이고, 잘 받고 피드백하고 그걸 빠르게 작업하도록 계속 푸시하는 것도 일이다. 회사야 가까우면 옆자리고, 멀어봐야 다른 층이라 직접 찾아가기라도 하지. 회사 밖은 그런 게 안된다.


명함 피드백.jpeg 자간, 장평, 여백까지 피드백하다 보니 명함 디자인만 1주 넘게 걸렸다.


가방을 만들며 일을 의뢰하는 업체들을 잘 컨트롤하지 못한 것은 당연히 내가 먼저 피드백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퀄리티 컨트롤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늦으면 늦는다고 미리 언급을 해야 하지 않나? 확정 미팅 없이 그냥 진행하는 게 말이 되나? 납기에 대해 왜 답변을 안 하나? 왜 하루가 지나도 카톡을 읽지도 않고 전화하니까 그제야 받는가? 이런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떠오르는 건 '회사의 리소스에 도움 받던 게 생각보다 아주 크구나. 평균, 혹은 평균 이상의 사람들을 한 군데 모아 놓는 혹은 그런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는 것이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구나'라는 것이다.


- 필요한 일을 끝까지 한다

지금은 스레드나, 네이버 카페 봉제네에서 샘플링해줄 수 있는 공장이나 프로모션 업체를 찾지 않는다. 오히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예전 직장의 선배님들에게 "저 이런 거 하고 있는데 도와주세요."라고 도움을 요청하며 다니고 있다. 다행히 선배님들에 좋게 봐주시고 있다. 아마 이렇게 철판을 깔고 연락이라도 해볼 수 있는 끈이 없었다면 더 아찔했을 것이다. 철판을 깔면 바텀라인이 평균 이상인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히 감사하는 요즘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필요한 일을 무슨 수를 써서든 끝까지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누군가 나처럼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그 도전은 오롯이 혼자 할 수 있는 건지, 중요한 부분 중 어느 하나는 직접 하지 못하고 위임해야 하는 것인지(의뢰해야 하는 것인지), 그 위임하는 곳(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인지(아는 사람인지)를 가장 먼저 물어볼 것 같다. 이를테면 지금 하고 있는 가방 프로젝트의 중요한 영역은 기획, 디자인, 생산, 판매(홍보), 물류다. 기획은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데 상품 실물 제작, 상세페이지 만들기, 광고컷 촬영, 작업지시서 등은 모두 의뢰해야 하는 영역이다. 이런 내가 직접 할 순 없지만 중요한 부분을 모두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길 순 없겠지만 최소한 가중 중요한 영역에는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만약 가방 샘플링-제작 분야에 능력 있고 믿을만한 파트너가 있었으면 지금 ownscale 브랜드의 준비 속도는 반년 정도 더 앞당겨져 있었을 것이다.


- 의미 없는 일은 없다

횟수로만 따지면 이번이 5번째 샘플링 미팅이다. 같은 업체와 여러 번 했던 것만 따지면 샘플관련해서 진행한 미팅이 10번은 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샘플 확정을 못했다. 이 과정은 의미 없는 실수에 불과했을까? 나의 목표가 가방을 만드는 것에서 그쳤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에게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과정을 겪고 있다. 어떤 것의 의미는 그 순간을 집중해서 세밀하게 보기보다, 몇 걸음 떨어져서 더 길고, 멀리서 봤을 때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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