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이 선포되었다. 남쪽으로 피난 왔던 사람들이 연어 떼처럼 떠나온 곳을 향해 돌아갔다. 부산으로 피난 왔던 이화여중도 서울로 환도했으니, 나는 당연히 우리 가족도 따라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린 진해에서 서울 집으로 돌아가다가 청주에서 발을 멈췄다. 아버지가 계속 엉거주춤하고 있는 사이 해가 바뀌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이화여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럭저럭 지내는 동안 청주여자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때가 되면 꽃이 피듯, 전쟁 북새통 속에서도 14살이 되자 갑자기 발육이 눈부시게 빨라졌다. 가슴이랑 엉덩이가 봉긋해지고 뭉툭했던 코끝이 오뚝해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키는 더는 자라지 않아 맞바라보던 친구를 턱을 쳐들고 보게 되었다. 아버지를 닮아 골격 튼실한 것은 좋았는데, 어쩌자고 하필 날씬해야 할 다리가 코끼리같이 굵직해, 체육 시간에 입은 반바지 아래로 눈부신 허연 넓적다리가 터질 듯 미어져 나와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그런데도 시간은 잘도 흘러가, 청주여중에서 저 혼자 이화여중 배지 달고 건방 떨던 피난민 학생 딱지도 이럭저럭 떨어져 나갔고, 나는 다시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우리 반 담임은 국어 선생이었다. 총각인지 유부남인지 자못 헷갈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별명은 ‘사이다 펌프’였다. 문학이 전공임에도 함축의 미(美)를 경시하고 장광설을 즐기다 보니 그의 입꼬리에는 늘 거품이 매달려 있었다. 문 대통령 입꼬리에서도 가끔 보이는 것이니 요즘 같으면 입방아에 올릴 일도 아니다. 비교할 게 따로 있지 언감생심 대통령의 입꼬리를 들먹여 매를 버느냐고 하겠지만 별생각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고, 선생님 함자도 잊어버린 이 마당에 어쩌자고 불경스럽게 선생님의 침 튀는 모습만은 새삼스레 떠오르니, 그것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학생이라면 시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2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1학기 중간고사 답안지를 받던 날, 나는 반 친구들 앞에서 야단을 맞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던 그 일, 뭐 대단한 것으로 꼬투리를 잡힌 게 아니었다. 선생의 호명을 받으면 앞으로 나가 두 손으로 답안지를 받아들고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 다음 제자리로 돌아오면 되는데, 답안지를 받을 때의 내 태도가 선생의 레이더망에 딱 걸렸다. 불손하다고 했다. 졸지에 난 불량 학생으로 몰려 자리에서 일어나 벌을 서야 했다. 그냥 ‘잘 못 했습니다’ 하고 선생님의 선처를 구하면 풀려날 것을, 난 꼼짝 안 하고 서서 선생을 노려봤다. 낮게 나온 점수로 인해 내 표정이 일그러진 것은 사실이나, 남을 해코지한 것도 아니고, 답안지 채가는 손이 거칠었다고 하나, 선생 손에 상처 낸 것도 아닌데, 그게 뭐 그리 큰 잘못이라고 머리 숙여 빌겠는가? 난 선생의 부당한 처사에 묵비권으로 항의했다.
“네 이놈, 방과 후에 교무실로 와!” 선생이 교실을 나가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퇴근을 서두르는 교무실은 어수선했다. 나는 담임선생 책상 앞으로 가 섰다. 마주한 창밖으로 운동장이 훤히 보였다. 처음엔 아무도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더니, 차츰 교무실이 한산해지자 우두커니 서 있는 학생이 눈에 들어올밖에. 짓궂은 도덕 선생이 비죽이 웃으며 놀렸다.
“너 밤새도록 그렇게 서 있을 거냐?”
내가 미동도 안 하고 앞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어디 잘해봐라” 쐐기를 박고 나가 버렸다. 담임선생은 나를 세워둔 채 자기 볼일을 바쁘게 보는 척했다.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이 지금 건방진 녀석 하나를 꺾어서 반을 평정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사람을 잘못 골랐다. 나는 별로 또래에게 영향력이 없다. 이화 배지 단다고 미움 받던 게 엊그제다.
중2, 청개구리 시절
사실 담임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나를 벌씌웠다고 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한마디로 선생은 비주얼이 별로였다.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아귀가 안 맞게 틀어지고 쳐지고 했다. 입 거친 아이들이 선생을 “빙충이”라고 찧고 까불어도 난 선생을 함부로 흉보고 놀려대는 불량학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빙충이라는 두 번째 별명을 떠올리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선생 함자 중간에 ‘충’자가 들어간다. 물론 ‘벌레-충’이 아니라 ‘충성-충’자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의 황당한 요구에 줏대 없이 휘둘리며 수업 시간을 쓰잘데기 없는 얘기로 채우는 선생을 빙충이라고 놀린다고 해서, 그들을 욕할 마음은 없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선생님 말씀을 귓등으로 듣고 떠들어 대는 것을 아이들 책임으로 돌리는 건, 한창 기운이 거꾸로 뻗치고 엉덩이에 뿔이 솟는 무서운 14살 소녀들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짓이다. 짓궂은 아이들이 엉뚱한 질문을 하면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선생은 헤식은 웃음을 흘렸고, 이때 입꼬리에 매달린 거품이 제구실을 하는 바람에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이미 교무실은 텅 비고 운동장에는 땅거미가 졌다. 화장실도 급했고 빈 뱃속도 꼬르륵 소리를 내며 밥을 달라고 보챘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오기마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보니, 이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다. 창밖으로 빈 운동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멈춰지지 않았다. 그때 나와 마찬가지로 이 상황을 어떻게 끝내나 방황했을 선생님이 나를 흘끔 보았나 보다. 질겁하는 게 역력해 보였다.
“네가 .... 그래서... 내가 그런 건데.... 사실은 그게...”
선생님은 다시 주절주절 사이다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이제 가도 좋다”
아무 말 없이 머리채를 흔들며 발소리 요란하게 교무실을 나왔다. 내가 빙충이를 꺾었다고 으쓱했다. 한발 더 나아가, ‘선생님이 나를 좋아하는 거 아냐?’라는 앙큼한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선생님은 그냥 우리가 무서워서 쩔쩔맸던 신참내기였을 뿐이다. 열네살 사춘기 소녀보다 더 서툴렀던….